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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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10〉
  • 글=조현옥 전문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5.10.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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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보내는 공소行 편지
▲ 고덕공소 전경.

늦은 출발입니다. 오전 10시 10분에 집을 나와 오늘은 홍주성지를 거쳐 덕산 쪽으로 나가려고 길을 잡았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천주교인이 홍주목 안에 생겨났어도 설마 홍주목사와 홍주진영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홍주성 안에서는 교우촌을 형성하지는 않았겠지요?

홍주성 안으로 오가던 사람들 틈에 잠시 섞여있던가 형리에게 잡혀서 문초를 받거나 옥 터에 갇혀 있다면 모를까 그래서 지금의 홍성군청 자리에 있던 동헌에서 아주 먼 곳에 신앙촌을 이루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주로 합덕, 당진에 천주교 신앙촌이 유독 많아 오래된 성당은 거의 그쪽에 자리 잡고 있지요. 옛 경찰서 자리에서 잠깐 쉬었습니다. 저자가 있던 곳인데 박해 시절 천주교인들을 조리돌림 했던 장소입니다.

지금은 자동차가 즐비하게 주차돼 있는데 그 당시엔 사람들이 저리 많았을 것입니다. ‘사학죄인’은 이렇게 처참하게 죽는다는 일종의 교육이라고 할까요? 그 모습을 보고 많은 토박이 홍주성 근방 사람들은 “절대로 사학만은 안 믿겠다”고 다짐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하게도 얼마 전까지 한국 천주교 신자 전파율 중에서 이곳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하니 조리돌림의 여파가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홍주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홍성여고 방향으로 몇 걸음 걸으니 홍주성의 북문이 있던 자리가 나옵니다. 몇 년 전 땅 아래에 묻힌 성벽 돌들을 조사한 이후로 빠르게 북문 근처 가옥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홍주천년여행길’이라는 길이 이쪽으로 연결돼 있어서 많은 걷기여행자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근처 오래된 적산가옥도 전국의 여행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지요. 저도 작년 가을 단풍잎이 아름다울 때 내부구경을 했는데 정원과 부엌에 있던 우물이며 좁은 복도를 끼고 있는 창들이 대단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고 모두 없애야 한다는 의식보다는 오래된 고도에 함께 내려앉은 지층과 같은 ‘기억의 켜’로써 그 장소가 꾸준히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여름 방문한 영국의 바스지방은 로마제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도시 전체가 로마의 분위기를 아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로마인들은 없지만 바스 특유의 역사와 ‘기억의 켜’를 지니고 있어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수많은 인파가 그 곳을 찾습니다.

북문 근처의 마을이 있었던 기억은 이제 사라질 것입니다.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 장사를 했던 사람들, 그곳을 거쳐 홍성 시내로 들어오던 홍북쪽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마을의 하나하나를 둘러보다 굴뚝이 예쁜 집이 있어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누군가 있어 사라지는 이 마을의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사진을 찍어 아카이빙 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북문교를 지납니다.

북문교 우측의 대교공원으로 몇 걸음 옮기다 백정 출신 황일광(시몬)이 참수된 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보았습니다. 서울 어느 본당에서 답사를 하러 왔다고 하는군요. 소돼지를 잡던 백정으로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던 황일광이 당대의 조선 선비 정약종집안에서 ‘형제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천국을 경험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양반과 평민, 그리고 하층민으로 나뉘어 평등하지 않던 시대에 똑같은 사람으로 ‘평등함’을 경험했다니요? 그의 일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지난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시 시복식 날 회자됐답니다. 이제 곧은길로 계속 걷기만 합니다. 홍성의 두 산, 월산과 용봉산을 훨씬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걸으니 예전 두 산에 대한 이야기를 재밌게 들은 기억이 납니다.

대략 월산은 음하고 여성스러우며 용봉산은 양하면서 남성의 기상을 보이는 산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위가 많은 용봉산이 우락부락하게 느껴지는군요. 용봉산에 자주 오르던 때가 있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도로에서 멀리 바라보노라니 감회가 새롭군요. 충남도청이 옮겨오면서 길이 넓어져 용봉산 입구가 약간 변했군요.
 

▲ 덕산성당 내부 모습.

다리도 쉴 겸 입구에 위치한 공원 벤치에 앉았습니다. 오가는 사람도 없어 모자를 덮고 대자로 누웠습니다. 살랑이는 바람과 내리쬐는 햇빛이 꿀맛입니다. 12시 15분 다시 출발합니다. 새로 생긴 마을 내포신도시를 지나갑니다.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고 골목길보다는 대로만 보이니 어디 딴 곳에 온 듯합니다. 충남도청 건물의 위세에 눌려 잠깐 섰다가 길을 재촉합니다. 용봉산의 기상이 급하게 내려와 넓은 홍북 땅을 휘감고 있군요. 오래된 느티나무가 길 한 가운데 있던 그 곳을 지나니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이미 홍성과 예산의 경계를 넘은 것일까요? 우측에 예산국수를 파는 국수집 옆에서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반 정도 먹고 바로 옆집의 커피점에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십니다. 일종의 호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빗방울이 떨어지는군요. 살짝 가랑비이면 오히려 걷기에 좋겠다 싶어 다시 출발합니다. 덕산의 곧게 뻗은 옛 도로를 걸어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덕산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교통의 요지에 있어 저처럼 걸어다니는 여행객들에게 묵어갈 수 있는 중요 포인트입니다. 솔뫼성지에서 걸어 와 여기서 묵고 홍주성지를 들려 갈매못으로 가는 이들에게, 또 해미로 넘어가는 이들에게 휴식의 장소입니다.

조용한 성당에 들어가 잠시 기도하며 쉬어가기로 합니다. 땀으로 젖은 양말을 벗고 맨발로 앉아 눈을 감으니 잠이 절로 옵니다. 옆에서 기도하던 수녀님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내심 걱정이었습니다. 비도 맞았고 행색이 말이 아니어서요. 그곳을 나와 아직도 장이 서는 덕산 시내를 관통해 고덕 쪽으로 향합니다. 덕산은 온천이 있어 전국적으로 유명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덕산시내는 고즈넉합니다.

1시간가량 걷다가 잠시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한잔 마시고 붉고 파란 지붕을 가진 70년대식 집들을 구경합니다. 초가집에서 지붕의 형태만 바꾼 집들은 아직도 흙벽을 유지하고 뼈대로 삼은 나뭇장들이 삑삑 나와 멋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시멘트로 양옥집을 지어, 마치 한집에 두 저택을 갖고 있는듯 하군요. 차들이 지나며 쏟아낸 먼지들이 묻어 더욱 예스러운 집들을 따라가다 보니 벌써 고덕이 보입니다. 

오늘의 도착지는 고덕 공소입니다. 당진 면천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이 거쳐 가는 길 초입에 넓은 땅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공소 건물을 만나니 6시입니다. 덕산 성당 신부님의 추천으로 공소 이야기를 잘 기억하고 있는 분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고덕의 여러 공소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 이곳의 이야기를 전할 때까지 그대의 영혼이 건강하기를.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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