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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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라
  • 장나현 기자
  • 승인 2016.05.20 0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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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이다>홍성의 인맥-홍성출향인을 찾아서 <6>

신경섭 KBS PD

은하면 장척리 고향…시골서 보낸 유년기
하루 볼펜 한 자루씩 써가며 KBS 시험준비
‘퀴즈! 대한민국’ 전국에 퀴즈열풍 일으키다
마라톤 40회 완주, 국토 종주…끈기와 열정

▲ 신경섭 KBS PD.

냉철한 머리를 지녔으나 푸근한 사람 냄새가 풍기는, 빈틈 없이 꼼꼼하지만 넉넉한 여유를 지닌, 정적인 취미를 즐길 듯 보이나 국토대장정을 다닐 정도로 활동적인 신경섭(58) PD를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어느 오후, 여의도 KBS 본관에서 만났다.

“성실하게 진실을 다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거짓말 시키지 말고 최선을 다하면 정말 됩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그동안 증명을 했지요. 좀 구태의연하지만 해서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면 된다죠.”

신 PD는 은하면 장척리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장척리는 은하면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광천 독배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는 27살 때부터 빨간 고무대야를 머리에 이고 장항선 열차에 올랐다. 독배포구에서 새우젓, 조기, 갈치 등을 사다가 홍성, 예산, 서산, 태안으로, 멀리는 평택까지도 가서 어물을 팔았다. 신 PD가 중3 때 처음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기 때문에 시골에서 물 긷고 나무하고 모내기 하는 일은 시골마을의 일상이었다.

▲ 상하이필름 페스티벌에 참여한 신경섭 PD(2006).

어릴 때부터 정의감이 투철했다는 신 PD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친구들 중 체구가 가장 작았던 그에게 키가 가장 큰 친구가 본인 대신해 청소를 하고 가라고 시켰다. 친구와 싸움이 붙고 힘에 부쳤던 신 PD는 옆에 있던 짱돌을 들어 친구머리를 찢어놨다. 친구들이 아무리 말려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담임선생님이 오고 나서야 두 사람은 떨어졌다. 떨어진 두 친구 중 신 PD만 혼이 나고 일주일간 교무실에서 무릎 꿇고 있으면서도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

신 PD는 중학교까지 광천에서 다니고 고등학교는 경기도 수원의 수성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중학교까지 10% 밖으로 성적이 떨어진 적이 없었던 그는 수성고 1학년 기말고사 때 60명 중 59등을 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즈음 수성고에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은 그의 평생 은사다. 교장선생님은 취임사에서 “선생님들이 공부를 도와줄 수 없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다. 그러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은 다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면서 야간 자율학습, 보충수업을 폐지했다. 한번 들으면 웬만해선 잊어버리지 않는 특출난 기억력을 지닌 신 PD는 전학년 참고서를 모두 한 권씩 사서 외웠다.

▲ VJ 특공대 제작할 당시 황정민 아나운서와 함께한 신경섭 PD(2006).

신 PD의 일생에 3번 전환기가 있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잠을 3시간 이상 자지 말자해서 새벽 2시에 자서 5시에 일어났다. 그렇게 하면 몸이 못 버티니 매일 아침 일어나면 줄넘기를 30분 했다. 30분 동안 씻고 밥을 먹고 6시 10분 첫차를 타 학교에 가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무조건 잤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고등학교 졸업할 때는 전교 16등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전환기는 대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과대표를 하겠다고 지원한 점이다. 신 PD는 손을 들어 본인을 과대표로 추천했다. “친구가 추천의 변을 들어보자 해서 나갔는데 진짜 가슴이 콩닥콩닥 떨리고 미치겠더라구요. 나 지금 가슴이 뛰어서 말이 안 나온다. 나 이정도로 내성적이다. 내가 성격을 고치지 않으면 내가 어른이 돼서도 할 일을 못 할 것 같다. 내가 성격을 고칠 수 있게 친구들이 도와달라고 말했죠." 2년 동안 과대표를 하면서 모든 일에 앞장서다보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은 적극적이고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마지막 전환점은 KBS 입사시험에서 떨어진 점이다. 85년 KBS 필기시험에 붙고 면접 시간을 잘못 알아 제때 도착하지 못해 떨어졌다. 졸리면 무조건 자고 깨어있을 때는 맑은 정신에 무조건 공부를 하자 해서볼펜으로 쓰면서 공부를 했다. 4시간 자고 4시간 일어나서 6개월간 집안에 있으면서 밤낮없이 공부를 했다. 6개월 동안 집밖으로 한 번도 안 나갔다. 전지를 잘라서 16절지에 6장을 앞뒤로 빽빽하게 쓰면 모나미볼펜 한 자루가 닳는다고 한다. 신 PD는 그렇게 모나미 볼펜 200자루를 하루 하나씩 써가면서 공부해 87년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다.

▲ KBS 2TV에서 일요일 7시 30분에 방영 중인 영상앨범 산.

방송국 PD로 일하면서 유년시절에 고향의 기억이 도움이 무척 많이 됐다. “시골에서 사람 사는게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구요. 도시에서 살던 피디들은 시골주재 취재 나가면 저게 도대체 뭐하는 건가 하는데 우리는 금방 알잖아요. 그러니까 카메라 감독들한테 어떻게 찍어달라 제안도 하죠.” 신 PD가 제작한 ‘여섯시 내고향’, ‘시장의맛’, ‘체인지업 도시탈출’, ‘체험! 삶의현장’ 등의 프로그램은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정서가 없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6시 내고향’을 맡을 때 해마다 1년에 두 번씩 광천토굴 새우젓을 방영해 새우젓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제가 제작한 수많은 프로그램 중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은 ‘퀴즈! 대한민국’ 입니다. 고3이었던 이창환 학생이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어머니가 남의 집 살림살이를 하며 공부를 시켰는데 서울대를 갔어요. 서울대 합격하기 전에 퀴즈 대한민국에 출현해 퀴즈영웅으로 등극해 학비도 해결하고 어려운 살림도 해결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퀴즈! 대한민국’은 이공계 육성 프로그램으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총 509부작으로 방영했다. 퀴즈영웅에 등극하면 적으면 3000만원에서 많으면 5000만원까지 상금이 주어지고 그 중 절반은 이공계 장학금으로 지원됐다.

▲ 이화령 정상에서 신경섭 PD(2015).

가장 힘들었을 때는 대전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할 때였다. “교통사고건을 취재한 적이 있어요. 차와 오토바이가 부딪힌 사건이었는데 오토바이 탄 사람이 하반신마비가 됐어요. 제가 보기엔 오토바이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고 중앙선 침범도 하며 잘못이 많았어요. 우리가 그 사람 편을 들어 준다고 나중엔 칼 들고 와서 죽이겠다고 협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신 PD는 끈기로 마라톤을 즐기기도 한다. 담배를 끊고 살이 쪄서 입맛이 좋아 살이 급작스럽게 불어 학교 운동장 뛰던 것이 성에 안차 마라톤이 되었다. 마라톤뿐만 아니라 자전거 종주와 둘레길도 걷고 있다. 지금까지 종주한 거리가 지구 반 바퀴정도 된다고. 친구가 지어준 별명은 장천(長川)이다. 긴 강물처럼 흘러가라는 의미다. 무엇을 하더라도 진득하게 오래간다고 지어준 별명처럼 유유히 흘러가길.

▲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출발 준비 중인 신경섭 PD(2015).

신경섭 PD는...
신경섭 PD는 은하면 장척리가 고향으로 광동초(25회), 광천중(27회), 수원의 수성고등학교(21회),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KBS 대전방송총국 편성제작국 PD로 입사, 1999년 본사 심의평가실 1라디오 심의, 2002년 심의평가실 2TV 심의, 2003년 편성본부 외주제작국 제직, 2009년 대전방송총국 편성제작국장, 2011년 정책기획본부 방송문화연구소 공영성평가부, 2012년 콘텐츠본부 외주제작국, 2013년 편성센터 외주제작국에서 근무했다. 담당프로그램으로 퀴즈! 대한민국, 체험! 삶의현장, VJ 특공대, 주주클럽, 행운의 영수증, 생방송 무한지대, 청포도, 체인지업 도시탈출, 영상앨범 산 등이 있다. 수상내역으로 1992년 KBS 우수프로그램상 지역 1 라디오 작품상(공주방송국 개국 5주년 특별기획 아! 황산벌), 1996년 KBS 우수프로그램상 지역 TV 작품상(백제), 1998년 KBS 우수프로그램상 지역 TV 작품상(김덕수의 사물 이야기), 2004년 TV 우수프로그램상 우수작품상(퀴즈! 대한민국), 2012년 교육부장관 표창(특성화 고등학교 교육홍보 유공)이 있다.

글= 장나현 기자/사진= 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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