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방황 끝에 찾은 답은 사랑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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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방황 끝에 찾은 답은 사랑이라네
  • 장나현 기자
  • 승인 2016.07.2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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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이다>홍성의 인맥-홍성출향인을 찾아서 <11>

박인옥 한국화가

‘나는 누구인가’ 답을 찾기 위해 철학책 탐독
붓으로 하나하나 세세히 표현하는 실경산수화 
자신을 사랑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과 얼 화선지에 담고 싶다

운희(雲稀) 박인옥 화가

지난 23일 미술인들이 자주 찾는 서울시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한국화 작가인 박인옥 화가를 만났다. 어떻게 본인을 찾아왔느냐며 환하게 기자를 맞이하는 박 화가는 편안한 음성으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차분하게 풀어냈다. “중학교 때부터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하는 생각이지만 저는 사춘기를 남들보다 조금 오래 겪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고민하고 괴로워한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단단한 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운희 박인옥 화가(64)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소녀’였다. 학창시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긴 방황의 시간을 거쳤다. 누구나 한번쯤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곧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에 집중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박 화가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 괴로워했던 시간이 있었다. 800페이지가 넘는 50권짜리 철학책들을 파고들어 소크라테스, 플라톤부터 들어가기 시작해서 사상가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갈증을 풀려했다. 당시 그것들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굵직한 철학가들의 사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이어나가야 할지 계속해서 철학공부를 해야 할지 방황하던 시기, 그의 안에 묵향이 훅 끼쳐 들어왔다. 은은한 먹물 냄새는 마음을 평온하게 해줬으며 하얀 종이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됐다. “나라는 사람을 일단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살다 어떻게 가야겠다’는 자신을 알고난 후의 부수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먹을 만났지요. 먹물이 너무나 좋더라고요. 서예쓰기를 시작으로 문인화, 채색화, 산수화 등을 하나하나 채워나갔어요. 그림으로 자신을 알고 많은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끌고 싶었답니다.”

박 화가는 그림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음반을 내기 위해 레코드사를 직접 찾아다닌 적도 있다.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행복으로 이끌려면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합리적인 생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그 부분이 음악이었기에 시작하게 됐다. 박 화가는 옥암리 4구 출신으로 홍주성 밑에 살았다. 어린 시절 큰집과 작은집이 한집에 살았으며 그가 기억하는 큰집에는 꽃들이 많아서 꽃 속에 살았던 기억들이 선명하다. 큰집의 정원이 늘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정원집이라고도 불린 집이었다. 정원 향나무 밑의 꽃들을 큰 아버지가 가꿨고, 할머니의 집안일을 도와주고 아이들과 고무줄놀이와 사방치기를 했던 추억들이 생생하다고 한다.

명절 때는 어른들 앞에서 노래하고 장기자랑을 했던 기억도 있다. 유년기는 남들과 같이 평범한 놀이를 하면서 보냈으나 사춘기에 찾아온 ‘나는 누구인가’의 물음에 그의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다. 철학책을 탐독하고 다향한 예술분야를 경험하면서 박 화가가 진정 얻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방황 후 궁극적인 답을 찾았느냐는 물음에 박 화가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네. 찾았지요. 그 당시 제가 찾은 정답은 결국 나를 사랑해야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싶었는데 스스로를 먼저 돌보고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일인걸 깨달았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화는 여백을 중시한다고 하는데 박 화가의 작품들을 보면 여백보다 나뭇잎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들에 눈길이 간다. 박 화가가 추구하는 미술세계는 실경산수화로 붓으로 실제풍경들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생생하게 화선지에 그려내는 기법이다. 화가의 작품은 마치 만다라를 보는 듯하다. 산트크리트어인 만다라는 본질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세세하게 표현한 무수한 무늬 앞에 깨달음의 안내도라는 만다라의 느낌이 박 화가의 그림에 나타난다. 이는 박 화가가 지난날 방황하면서 얻은 답은 아닐까. 박 화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해보라고 조언한다. 스스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부딪쳐 느껴야만 본인의 것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박 화가는 지금까지의 전시 중 홍성문화원에서의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서양화가인 동생 박인자 화가와 아버지 기일에 맞춰 2010년 전시를 하였다. 전시 작품 중 ‘봄의 속삭임’은 어머니와 박 작가가 화사한 분홍빛 매화나무 아래서 밭일을 하고 있는 기억을 더듬어 담은 작품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실제로 보면 굉장히 화려하다. 박 작가는 내년 전시도 홍성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고향 땅에서의 전시가 의미가 깊다고 말한다. 

박 화가가 작품에 임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사항은 이 땅의 아름다움이다. 세계 여느 나라를 돌아다녀보아도 우리나라만큼 아름다운 강산이 없다고 말한다. “중국에 가서 웅장하게 솟은  산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을 했지만, 우리나라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우리 강산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가 제가 매일 생각하는 부분이지요. 우리나라의 얼을 더 표현하고 간직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답니다.” 

박 화가는 무분별한 개발로 파헤쳐지고 있는 강산에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우리나라 위치가 좋고 기후가 좋아 예로부터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많이 받고 살았잖아요. 지금은 우리 스스로 강산을 훼손하고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10년 전 갔던 곳이 지금 찾아가보면 너무 많이 변해있어요.”
스스로 다독이며 긴 시간을 붓을 잡고 살아온 박 화가의 다음 전시회가 기대되는 이유는 사색의 깊이 때문이다. 

운희(雲稀) 박인옥 화가는 …  

운희 박인옥 한국화가는 1953년 홍성읍 옥암리 4구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서울시 은평구에 거주하고 있다. 홍성초, 홍여중, 홍여고를 졸업하고 20살 때 서울로 올라와 40년 넘게 붓을 잡았다. 지금까지 2005년 고양시(호수갤러리), 2010년 홍성군(홍성문화원), 2013년 홍성군(한스갤러리)에서 3회의 개인전을 연 바 있다. 단체전으로는 1996~2010년 홍현회 회원전(공평아트, 경인미술관, 모로미술관, 하나로갤러리 등), 1999년 전통과 현대미술 만남전(서울시립미술관), 2005년 고향아트페어(고향시국제미술관), 2000~2012년 은평미술협회전(서울미술관, 인사아트프라자, 은평문화예술회관), 2005~2010년 산채수묵회원(조형갤러리, 공평아트, 인사아트 크라자 갤러리), 2007~2009년 한국 전업미술가 협회전(세종미술관), 2009~2012년 한국미술협회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쌔택, 킨텍스), 2009년 KPAM대한민국미술제 Look HERE(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등 다수 참가했다. 수상경력으로 제3회 은평미술상 수상, 세계평화미술대전 최우수상 11회, 우수상 10회(단원미술관),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29회(킨텍스), 서울미술대전 특선 10회(서울시립미술관),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특선 11회, 입선 10회(서울시립미술관), 목우공모미술대전 연3회 43,42,41회(과천국립현대미술관), 행주미술대전 특선(호수갤러리), 서울미술전람회 특선 8회(서울시립미술관), 전국회룡미술대전 특선(의정부 문화회관)이 있다. 현재 서울미술협회 회원으로 은평지구 감사를 맡고 있다.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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