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 소리와 가락 복원, ‘예향 홍주’ 자긍심 높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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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 소리와 가락 복원, ‘예향 홍주’ 자긍심 높이는 일
  • 글=전상진 전문기자/자료·사진=한기원 기자
  • 승인 2016.08.2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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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역 중고제와 한성준의 맥, 그 소리와 가락의 복원 <1>
▲ 한성준 묘터.

 ■ 글 싣는 순서
 1. 홍주(홍성·결성)지역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2.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1 (서천)
 3.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2 (서산)
 4.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3 (공주)

 5. 판소리 동편제·서편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1 (전북 전주·익산·고창)
 6. 판소리 동편제·서편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2 (전남 구례·보성)
 7. 판소리 소리제(대가닥) 기록 자료를 찾아서 (서울, 경기도 양평)
 8. 전문가에게 듣는다 (중고제의 맥, 그 소리와 가락의 복원 가능성)



중고제, 충청·경기지방 판소리… 현재 그 소리 명맥 끊어져
최선달·김창룡·한성준 등 홍주지역
“중고제는 충청도 사람 슬픔과 기쁨 모두 간직한 충청도 문화”
올해 홍주지역 소리와 가락 복원 연구사업 첫발 내디뎌


중고제(中高制)는 조선시대 헌종 때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충청·경기지방을 중심으로 전승된 판소리 유파이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서 “대가닥에는 중고제, 동·서편제, 호궐제가 있다”며 “중고제는 비동비서(非東非西)의 그 중간인데 비교적 동편에 가깝다”고 했다. 배연형 동국대학교 한국음반아카이브 연구책임자는 “중고제는 충청·경기지방이라는 지역적 개념과 함께 ‘중고(中古)’라는 시대적 개념도 내포하고 있는, 초기 판소리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는 ‘고제(古制)’ 소리”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 견해에 따라 판소리 대가닥을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고제(古制)-중고제(中高制)-신제(新制/동·서편제)로 나눌 수 있다. 시대적·지역적으로 고제와 중고제는 충청·경기지방을 중심으로, 신제인 동·서편제는 전라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 최선달 묘터.

판소리 효시 명창 최선달, ‘결성농요’에 소리 명맥 이어져
판소리 고제-중고제를 시대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정노식의 ‘조선창극사’를 다시 언급해야 한다. “광대의 효시는 하한담과 결성의 최선달이다. … 하·최 양씨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의 후배인 권삼득이 영말정초 사이 인물인즉 하·최 양씨를 조선조 숙종 이후 영조 이전 그 중간시대의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결성의 최선달(崔先達)이다. 조선 영·정조 때 하한담(전북 전주 또는 익산 출신?)과 함께 판소리 효시이자 고제의 창시자로 이름을 남기고 있는 최선달(본명 최예운(崔禮雲)·1726년~1805년)이 바로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된 ‘결성농요’로 유명한 홍성군 결성면 성남리 사람이며, 현지에서는 지금의 결성농요를 최선달이 창시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그의 후예들은 농사짓는 곳엔 언제나 함께 있었던 농요소리를 즐겨 부르며 대물림했다.

최선달은 어려서부터 글공부와 함께 예악에 관해 깊이 연구했다. 그는 18세 이후 악서(樂書)·악음(樂音) 익히기에 열중했다. 20세가 되던 해에 득음 수도하기 위해 명산대천을 찾기도 하고, 고향의 석당산과 누에산을 오르내리며 소리공부에 전념해 득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영조 때 전주신청에서 춘향무굿을 하면서, 하한담과 함께 판소리로 ‘춘향가’를 불렀다. 이때 부른 춘향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처음이 됐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최선달의 직계 8대손이자 결성농요 선창 예능보유자인 故 최광순(결성 금곡리·2002년 별세) 옹은 생전에 당시 세계일보 문화부장인 이규원 씨와의 인터뷰에서, “아, 이 근처서야 다 아는 일이지유. 전(예)부터 소리꾼은 ‘무당’이라며 천시허니께, 말을 않구 나타나질 않했지유. 얼마 전까지만 해두 지사(제사) 때 모여두 말두 뭇허게(못하게) 햇슈”라고 밝힌 바 있다.
 

▲ 김창룡.

명창 김창룡, 결성지역 기반 판소리 중고제 전성시대 이끌어
최선달의 판소리 고제 못자리인 결성지역을 기반해 충청·경기지방을 중심으로 한 중고제 전성시대에 등장한 걸출한 명창이 있다. 판소리 근대 5명창의 한 사람이자 ‘김성옥-김정근-김창룡-김시준-김차돈(김채돈)’으로 이어지는 김문(金門) 중고제 명창인 김창룡(金昌龍, 1872년~1935년, 서천 또는 결성면 용호리 출생?)이 42세(1913년) 때 결성면 용호리 두지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용호장터에는 그의 소리 공연이 이어졌다고 한다.

‘매일신보’(1935년 1월 25일자)에 실린 김창룡의 약력을 살펴보면, “김창룡은 충청도 태생으로 그의 특장은 ‘적벽가’이다. 쾌활한 적벽가의 우렁찬 목소리가 아직도 원기 왕성함을 말하고 있다”는 기록대로, 김창룡은 목을 아주 잘 타고 났다고 한다. 그의 음반을 들어보면 냉면 맛처럼 시원해 마치 서도소리를 듣는 것 같다고 하는데, 그래서 충청·경기지방뿐 아니라 이북 지역에서도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그가 특히 능한 노래는 적벽가와 심청가 가운데 ‘꽃타령’이다.

김창룡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던 결성면 금곡리 故 최광순 옹, 최용권·최용환 형제, 결성면 성남리 故 최양섭 옹, 정학재, 박복순, 최환섭, 이인환 씨 등이 중고제 판소리 대신에 순수한 우리의 가락이고 농경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결성지역 들노래인 ‘결성농요’를 사라진지 50여 년 만에 완벽하게 되살려냈다. 이처럼 결성지역이 판소리 효시 최선달과 근대 5명창 김창룡 등 판소리 명창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결성지역 사람들의 심성이 예술에 관심이 많고, 전문 예술인을 배출할 수 있을 만큼 지역사회의 경제적 여력과 문화적 환경이 성숙되었음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 한성준.

한성준, 고수로 판소리 발전 기여, 전통춤 선구자 업적
또한 명창 김창룡과 함께 동시대 판소리 명고수(名鼓手)로, 갈산지역을 기반해 충청·경기지방의 중고제 판소리 명맥을 지키고 판소리 음반 기획의 선구적 업적을 남긴 명고명무 한성준(韓成俊, 1874년~1941년)이 활약했다. 그는 “뼈 삼천마디를 움직여 춤을 춰야 진정한 춤이 되느니라”며 당시 흩어져 있던 조선의 전통춤을 반듯한 예술의 자리에 올려놓고 평생을 가락과 춤에 흠뻑 취해 살다간 우리 시대 최고의 예인이었다.

명고명무 한성준은 갈산면 신안리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7세 때 외조부 백운채로부터 춤과 북장단을 익히고 남다른 재능을 보여 ‘어릿광대’라는 별명을 얻고, 17세 때 첫 번째 아내와의 사별 후 수덕사에 입산, 독학으로 북장단을 연마한다. 3년간의 공부 끝에 “소리에는 장단이 그 생명일진대 장단을 낳은 춤은 모든 가락의 어머니”라는 장단과 소리의 조화에 대해, 춤이 모든 장단의 시작이라는 귀중한 원리를 깨닫는다.

명고명무 한성준은 30대 중반 박순조에게 고법을 익히고 박기홍의 수행고수로 따라다니면서 서울무대에 등장, 당대 최고 명창들의 북장단을 도맡아 치면서 명고수의 반열에 오른다. 명고수로 참봉 벼슬을 하사받은 그는 1934년 설립된 ‘조선성악연구회’의 일원으로 국악 대중화 운동을 펼쳤고, 이후 명고수의 길을 넘어서 근대 전통춤 교육의 산실인 1938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해 전통춤을 창작하고 복원함은 물론 후진을 양성하는데 남은 여생을 바쳤다.


 

▲ 한성준 춤비.

중고제, 덤덤한 음악적 특징…현재 그 소리 명맥 끊어져
명창 최선달, 명창 김창룡, 명고명무 한성준의 흔적은 현재 홍주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책을 읽듯이 덤덤한 맛으로 노래 부른다’는 중고제의 음악적 특징으로 인해 명맥도 끊어진 상태이다. 소리에 감정이입이 잘된 전라도 판소리인 동·서편제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형편이다. 명창 최선달의 소리 맥(脈)은 ‘결성농요’의 메김소리 속에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명창 김창룡의 소리 맥은 그가 남긴 판소리 음반 속에 남아 있다. 또 명고명무 한성준의 소리 맥은 그가 고수로 참여한 판소리 음반에 명창들의 소리 속에 묻혀 있다. 다만 승무와 태평무, 살풀이 등 그가 창안한 전통춤이 제자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을 뿐.
 

▲ 한성준 고수 참여 춘향가 음반.

올해 홍주지역, 중고제 연구사업 본격적으로 나서
홍주지역에서 올해부터 판소리 중고제의 명맥을 살리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이미 서천, 서산, 공주, 충남문화재단 등에서 중고제 연구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처럼, 명창 최선달과 김창룡, 명고명무 한성준을 배출한 고장인 홍주지역에서도 중고제 연구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이 ‘충청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중고제는 충청도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 등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우리(충청도)의 문화”라며 “충청도 사람이 우리의 문화를 외면하고 다른 지역 문화를 따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홍주지역의 소리와 가락을 찾기 위해 첫 단추를 꿰기 시작한 것.

판소리 중고제 연구 및 복원사업은 ‘홍주지역의 소리와 가락’ 복원뿐만 아니라 ‘예향(藝鄕) 홍주’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일이며, 더 나아가 ‘충청 소리와 가락 복원’, ‘전통문화 중고제의 문화콘텐츠화(化)’를 실현하는 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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