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직관에 따라 내 안에 들어온 이미지 옮기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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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직관에 따라 내 안에 들어온 이미지 옮기는 과정
  •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09.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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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이다>홍성의 인맥-홍성출향인을 찾아서 <14>

이윤학 시인

서부면 양곡리 고향,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 
유년 시절 무인도 찾아 나룻배 타고 떠나기도 
동국대 재학 한국일보 신춘문예 ‘제비집’ 등단
삶의 풍경 그린 신간 시집 ‘짙은 백야’ 출간해 
 

 

▲ 이윤학 시인.

백합이 품은 짙은 백야를
필사적으로 걸어온 자
물소리를 틀어놓고
자갈을 뒤집는 잠이 들었다

최후의 툰드라를 틀어놓고
잠이 들어버린 자
바가지에 틀니를 벗어놓고
옛날 맛 그대로인 김치 씹은 물을 오물거렸다

                   짙은 백야 中 (하략) 

이윤학(52) 시인의 신간 시집 ‘짙은 백야’가 5년 만에 출간됐다. 그동안의 작품이 묘사 위주로 쓰였다면 이번 작품은 진술묘사 방식으로 유년시절 봐왔던 풍경들이 들어갔다. 직업을 가리키는 말 중에 사람 인(人)자가 들어가는 ‘시인’을 상상하며 이윤학 시인에게 인터뷰 요청 전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 수줍은 소년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 강화도에서 함민복 시인과 함께.

어느 오후, 굵은 뿔테에 아무렇게나 사방으로 뻗은 머리카락이 자유를 갈망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카페문을 열고 이 시인이 들어왔다. 인터뷰 내내 시인의 언어는 마치 시 낭송과 같이 행간이 느릿느릿하게 이어졌다가 충분한 호흡을 한 뒤 끊기기를 반복하며 한 문장씩 말을 이어나갔다.

“시는 ‘쓰다’라기 보다 내 안에 들어온 어떤 것을 ‘옮기다’의 과정입니다. 기억에 남아있는 이미지가 어느 순간 발현될 때가 있지요. 그것을 잘 포착해 직관에 따라 옮겨 적는 과정을 거치면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이죠.”

이 시인은 서부면 양곡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양곡리는 남당리와 2km 떨어진 지역으로 반농반어 지역이자 동네 산에 올라가면 안면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시인은 유년시절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고향에서 모험을 즐기는 개구쟁이 소년이었다.

▲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와 함께한 어린시절의 이윤학 시인.

시인은 4학년 때 무인도로 모험을 떠났다. 얼마간의 비상식량과 칫솔 등을 챙겨 친구 집에 있는 나룻배를 친구와 몰래 타고 무인도를 찾아 힘차게 출발했다. ‘톰 소여의 모험’ 의 주인공같이 나룻배를 타고 떠난 두 소년은 망망대해를 향해 낯선 땅에서의 설렘을 안고 노를 저어갔다. 육지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시인은 한가로이 낮잠에 빠졌다. 새로운 섬에 도착할 꿈에 젖어있던 시인은 친구의 비명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배에 구멍이 나서 물이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배 안에 하나 있는 바가지로 부지런히 물을 빼내고는 기억이 안나요.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바닷물에 퉁퉁 불어서 육지로 떠밀려 왔더라고요. 친구와 죽다 살아나니 물 한 모금이 절실했죠. 마을의 우물가를 향해 전력질주를 해 물을 서로 먼저 마시겠다고 다투었던 장면들이 유년시절 추억으로 떠오르네요.”

시인의 유년을 강렬한 색채로 장식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어느 날 마을에 30대 후반쯤 되는 여자가 포대기를 하고 가슴에는 보자기를 안고 왔다. 항상 웃고 있었던 여자의 보자기를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풀어보려고 하면 화를 내며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혼잣말을 하다가도 정신이 돌아오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들판의 볏집을 쌓아놓고 잠을 자기고 하고 마을 산에서 지내기도 한 여자는 2년 간 마을에 머물렀다. 어느 날 짓궂은 친구가 보자기를 끄러보자 아기의 배냇저고리와 기저귀 등 유아용품이 나왔었다. 시인은 아기를 잃은 여자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강렬하게 자리 잡았다.

▲ 김수영문학상 뒤풀이에서 동료들과.

“어렸을 때 배를 타고 모험을 떠났던 것처럼 지금도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고 싶은 소망이 가슴 속에 있어요.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있는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없이 2년 간 마을에 머물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아주머니야말로 진정한 수도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눈 뜨면 웃고 노래하고 춤추던 아주머니의 모습은 직접적이진 않지만 작품 곳곳에 스며들었지요.”

시인이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때다. 소설을 하루에 원고 100매 이상 쓰기도 했던 시절이다. 마무리를 하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문학청년이었던 시인은 동국대학교 문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1990년도 대학시절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본격적인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제비집’이라는 작품이었다. 

제비가 떠난 다음날 시누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헐었다. 흙가루와 함께 알 수 없는 
제비가 품다 간만큼의 먼지와 비듬,
보드랍게 가슴털이 떨어진다. 제비는 어쩌면

떠나기 전에 집을 확인할지 모른다.
마음이 약한 제비는 상처를 생각하겠지.
전깃줄에 떼지어 앉아 다수결을 정한 다음날
버리는 것이 빼앗기는 것보다 어려운 줄 아는

제비떼가, 하늘 높이 까맣게 날아간다.
                         (제비집 전문)

▲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상식(맨 오른쪽).

제비집은 시인의 첫 시집인 ‘먼지의 집’에 실려 1992년 출간됐다. 지금까지 9권의 시집을 내며 모든 작품들에 애정이 가겠지만 특별히 아끼는 시에 대해 물었다. 시인은 ‘이미지’라는 시를 소개했다.
“사람들은 뱀을 보면 징그러워하잖아요. 우리는 아름다움에 세뇌가 되었는데 추함 역시 사람 안에 있는 모습이지요. 자신의 모가지를 찔러버려 피를 흘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삶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잊어버리는 삶. ‘가야한다 가야한다 잊으러 가야한다’고 마무리 되는 시는 우리가 태어난 것도 다시 태어나는 것도 잊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지요.”

삽날에 목이 찍혀 뱀의 머리통이 떨어지자 피가 호스처럼 방향 없이 내둘러지는데 고통을 잠글 수도꼭지가 없자 뱀은 자리를 떠나고 고통을 잊고자 한다. 계속해서 인생의 답을 찾는 시인은 인생의 답을 찾으면 재미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영원한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시와 가장 많이 닮은 부문이 동화라는 시인은 3권의 동화책을 출간했다.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 엄마 딸 맞아?’ 동화는 작가가 5년 동안 작품을 썼다. 수도 없이 교정을 본 시인은 “산문이 가진 가장 악마적인 요소는 그것이 결코 완성되지 않음에 있다”고 말했다. 교정을 아무리 봐도 다시 읽으면 고칠 곳이 생긴다고. 

그럼에도 시인은 동화에 매력을 느껴 여전히 동화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늘 어딘가로의 떠남을 갈망하는 시인의 바람대로 캠핑카를 타고 자유로이 떠나 다음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 불교문예작품상 시상식에서 제자들과.

이윤학 시인…
1965년 충남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에서 태어나 천수초등학교, 결성중학교,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동국대학교 재학 중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제비집’시로 당선돼 등단했다. 시집 ‘먼지의 집’,‘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그림자를 마신다’,‘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나를 울렸다’,‘짙은 백야’9권을 출간했다. 장편동화로는 ‘왕따’, ‘샘 괴롭히기 프로젝트’, ‘나 엄마 딸 맞아?’가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불행보다 먼저 일어나는 아침’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등을 수상했으며 동국대, 서울예대, 우성대에서 문예창작 강의를 한 바 있다. 현재 안도현, 나희덕, 박형준, 이병률, 이대흠, 김선우, 문태준 등과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평에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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