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하고 살가운 공주 판소리… 충청사람 심성 잘 반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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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고 살가운 공주 판소리… 충청사람 심성 잘 반영 [3]
  • 글=전상진 전문기자/사진·자료=한기원 기자
  • 승인 2016.09.2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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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역 중고제와 한성준의 맥, 그 소리와 가락의 복원 <4>
▲ 판소리 완창을 몸소 실천한 국창 인당 박동진 명창.

 ■ 글 싣는 순서
 1. 홍주(홍성·결성)지역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2.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1 (서천)
 3.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2 (서산)
 4.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3 (공주)

 5. 판소리 동편제·서편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1 (전북 전주·익산·고창)
 6. 판소리 동편제·서편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2 (전남 구례·보성)
 7. 판소리 소리제(대가닥) 기록 자료를 찾아서 (서울, 경기도 양평)
 8. 전문가에게 듣는다 (중고제의 맥, 그 소리와 가락의 복원 가능성)



중고제 ‘춘향가’, 동편제 ‘적벽가’, 서편제 ‘심청가’ 등 명창 더늠 장기
판소리 사설 정리 ‘도처춘풍’ 정춘풍 명창… 홍성 출신 밝히는 일 시급
황호통·김석창·박상도·박동진 명창소리, 공주 중고제 판소리 계승발전
‘박동진판소리전수관’, 중고제 판소리의 고장, 공주지역 홍보에 기여


 

■중고제 ‘춘향가’ 더늠에 장해… 투박하고 살가운 맛 느껴져
서편제 명창이 ‘심청가’에, 동편제 명창이 ‘적벽가’에 장하듯 중고제 명창은 ‘춘향가’에 장하다. ‘춘향가’의 남자 주인공 이몽룡이 서울 사람이기 때문에 경기창(京畿唱)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춘향가’는 실제로 중부지역 출신 8명창들 더늠(판소리 창자 개인이 사설과 음악 등을 새롭게 짜 넣은 소리 대목, 또는 특정 창자가 다른 창자들에 비해 월등히 잘 부르는 소리 대목을 지칭하는 말이다)이 알알이 들어와 박혀있다.

경기 여주(또는 충남 예산 덕산) 출신인 염계달 명창의 경조(京調, 경드름·경토리라고도 한다. 경기도 민요의 성조를 많이 도입한 창법)는 말할 것도 없고, 충남 서산 해미 사람으로, 공주에서 활동한 고수관 명창의 ‘잦은 사랑가’며, 경기 진위(또는 죽산) 출신의 모흥갑 명창의 ‘이별가’ 더늠 등은 투박하면서도 살가운 중고제 옛 소리의 독특한 맛을 담고 있다. 충남 서천 출신 이동백 명창의 ‘이별가’를 풀어내기 위해 강원감영의 특산물인 강릉 백청이 바닥났었다 하고, 주렴 안에서 그의 ‘십장가’를 들은 상궁 나인들이 흐느낌을 그치지 못했다고도 한다.


 

▲ 공주시 무릉동에 위치한 ‘박동진판소리전수관’ 전경.

■공주지역 소리판, 민요제와 판소리제 혼재… 충청사람 심성 잘 표현
투박하면서도 살가운 소리제가 중고제라면, 충청사람의 심성과 닮아 있다. 충청사람의 심성이 투박하고 의뭉스러워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듯이, 충청소리는 그 속내를 알 길 없다. 하지만 속정은 깊어 인정 많기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표현하는 방법이 서툰 탓인지, 도대체 재미없고 덤덤한 것도 사실이다. 홍성(홍주), 서천, 서산지역이 충청소리의 맥을 이었다며, 또 한곳 공주의 판소리 중고제 맥도 충청의 다른 지역 못지않게 충청소리의 맥을 도도히 잇고 있다.

공주지역의 소리판은 민요권인 경기지방의 소리와 판소리권인 남도소리가 혼재돼 있다. 공주는 관찰사가 있던 고장으로, 호서지방의 부자들이 집결되어 있던 지역적 특성이 있다. 이러한 배경이 공주를 동편제나 서편제와 같이 중고제라는 평성의 소리제의 중심지가 되게 했다. 이러한 음악적 배경은 후기 8명창에 속하는 황호통 명창과 현대 판소리계의 거장인 박동진 명창을 배출한 토양이 됐고, 민요제와 판소리제가 섞인 소리의 토양은 어느 마을을 가든지 옛 소리가 보존돼 쉽게 불리는 형태로 존재하게 만들었던 밑거름이 됐다.

 

■판소리 사설 정리한 충청도의 ‘도처춘풍’, 정춘풍 명창
정춘풍(鄭春風)은 판소리 하나로 ‘도처춘풍(到處春風)’이라는 말을 유행하게 했던 명창이다. 그는 조선시대 헌종 때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이른바 후기 8명창에 속하는 인물이다. 충청도(특히 홍성 출신이라는 설이 있으나, 아직 확인 할 길은 없다.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에서 태어나 만년에 전북 익산시 여산면으로 이주했다고 하나,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정춘풍은 동래 정씨 양반 가문 출신(비가비 광대)으로 헌종 때 소과에 합격해 진사 벼슬을 얻었으나, 판소리를 익혀 명창이 됐다. 학식이 있어 구전으로 전해지던 판소리 사설을 정리하는 업적을 남겼다. 따로 소리 스승을 두지 않고 독공으로 일가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동편제 명창 박기홍이 그의 수제자이며, 조기홍과 유공렬, 유성준도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가 공연을 하면 인기가 좋아 소리하는 곳마다 사람이 몰려 ‘남(전라도)의 신재효’, ‘북(충청도)의 정춘풍’으로 일컬어졌다. 그에 대한 대원군의 애호가 각별해 운현궁을 마치 자기 사랑처럼 드나들었다. 그는 명창의 반열에 올라 서울에서 활동하기 이전에는 대부분 공주지역에서 활동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서는 그를 동편제 명창으로 분류했으나, 스스로는 동편제나 서편제와 같은 어느 한 유파로 귀속되는 것을 매우 꺼려했다고 한다. 그는 ‘적벽가’를 특히 잘했으며, ‘적벽가’ 가운데 제갈공명이 비를 부르는 대목에서 축문을 사용한 첫 번째 명창으로 유명하다. 단가 ‘소상팔경’과 ‘심청가’ 가운데 ‘화초타령’, ‘수궁 풍류’는 그의 대표적인 더늠이다.

 

▲ ‘박동진판소리전수관’ 앞 들에 세워진 중고제 명창비.

■호통 치는 듯 우람한 목소리로 명창 반열 올라, 중고제 황호통 명창
황호통(黃浩通)은 공주 출생으로 조선 고종 때 활동한 판소리 명창이다.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본명은 전하지 않고 평상 시 목소리가 호통을 치는 것과 같이 우람하다 하여 얻은 별명이 ‘호통’이라 한다. 본래 그는 계룡면 신기리 소재고개 아랫마을에서 나무를 해다 팔아 연명하던 가난한 사람이었으나, 목소리가 좋아 김문소리의 김정근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이날치·정창업 명창 등과 교류하면서 견문을 넓혀 중고제 판소리를 완성했다고 한다. 백점택, 이창운 명창과의 우의도 두터웠다.

그가 공주지역에서 노래를 할 때, 선화당에서 노래를 하면 계룡면까지 30리 안 모든 사람이 소리를 들었다는 소문이 있다. ‘춘향가’와 ‘심청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특히 ‘춘향가’ 가운데 ‘만복사 불공’ 대목을 잘했다. 아들 황운열은 아버지에게 판소리를 배워 소리꾼으로 활동했으나, 명창의 칭호는 얻지 못했다.



■중고제 판소리 마지막 지킨 김석창 명창과 박상도 명창
김석창(金碩昌)도 공주 출생으로, 조선 순종 때의 판소리 명창이다. 아들인 김덕순 역시 화성·안성의 재인청에서 예인들을 가르친 판소리와 춤의 명인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도살풀이춤’의 명인 김숙자의 조부이기도 하다. 이동백보다 20년 정도 연상으로 1840년대 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동백 명창과 함께 서천 비인현에서 공연했는데, 공연 후 김석창에게는 100냥을 주고 이동백에게는 15냥을 주자 이동백이 분을 이기지 못해 100일 독공을 하게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특히 그는 ‘춘향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아니리’를 잘하고 판소리의 가락 변화 기법의 하나인 부침새에 능했다. ‘조선창극사’에서는 김석창을 중고제 명창으로 분류했다. 중고제 소리의 마지막 명창으로 꼽힌다. 또한 박상도(朴尙道)는 김석창 명창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순종 때의 판소리 명창이다. 공주에서 태어나 1850년대를 전후해 활약했다고 하나, 정확한 출신지와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조선창극사’에서는 박상도 명창을 중고제 명창으로 분류했다. 그는 ‘적벽가’를 장기로 삼았다고 한다.



■‘놀부 제비 몰러 나간다’로 유명한 판소리 완창의 박동진 명창
공주지역이 중고제 판소리의 중심지가 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명창이 인당(忍堂) 박동진(朴東鎭, 1916~2003) 명창이 있어 가능했다. 그는 공주 장기면에서 1916년 출생해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판소리 ‘적벽가’)로 지정된 명창이다. 조부가 줄광대였으며 숙부는 또랑광대였다. 그는 김창진·정정렬·유성준·조학진·박지홍에게 사사하고도 오랜 독공으로 소리를 익혔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문화 말살 정책을 피해 판소리를 지켜내는 데 기여했다. 강정자, 이정일, 김양숙 등이 박동진 명창의 제자들이다.

그는 마디소리로 불리운 대부분의 판소리를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완창을 몸소 실천했다. ‘홍보가’(5시간), ‘춘향가’(8시간), ‘심청가’(6시간), ‘변강쇠 타령’(5시간), ‘적벽가’(7시간), ‘수궁가’(5시간) 등을 완창, 후학들이 완창을 목표로 판소리를 부르는 풍토를 창시했다. 또한 그는 창작 판소리에도 많은 심혈을 기울여 성서 판소리 4시간을 비롯해 ‘숙영낭자전’, ‘성웅 이순신 장군’, ‘팔려간 요셉’, ‘옹고집전’ 등을 판소리로 노래해 현대적인 의미의 판소리 중흥을 이루어낸 인물로 국창(國唱)의 칭호에 부끄럽지 않다. 특히 77세에 TV 광고에 출연해 ‘흥보가’ 가운데 ‘놀보, 제비 몰러 나가는 대목’을 불러 크게 유행시킴으로써, 일반인들이 판소리를 친숙하게 느끼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83세에 ‘박동진판소리전수관’을 개관했다.

 

   
   
▲ 박동진판소리전수관에서 진행되는 판소리 체험모습.

■‘박동진판소리전수관’, 판소리 전승 맥 잇기 위한 후진 양성 매진
올해 국창 박동진 명창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1998년 공주시 무릉동에 ‘박동진판소리전수관’이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우리 전통소리인 판소리의 전승 맥을 이어가기 위한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박동진 판소리를 전수하고 있다. 2016년 8월 현재 ‘박동진판소리전수관’에는 관장 1명과 유물전시관 실장 1명, 전수관 관리자 1명이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판소리 교습’과 ‘박동진판소리전수관 판소리 체험’이 있다. ‘판소리 교습’은 판소리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판소리를 전공하고 싶어 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유아부, 중·고등부, 대학생부 및 일반부로 분류하여 일주일에 1일 1시간씩 한 달에 4회 집중적으로 교습하는 프로그램이다.

박동진판소리전수관 ‘판소리 체험’은 각 기관 및 단체의 각계각층을 불문하고 40~80명을 대상으로 1~2시간 판소리에 대하여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두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평소 판소리에 관심이 있었지만 판소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일반인들에게 전통적인 소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전문적인 판소리 국악인을 양성하고 있다. 김양숙 관장은 “박동진 명창의 업적을 기려 우리의 전통소리인 판소리의 맥을 현대적 상황에 어울리는 예술로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소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적인 혜택과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중고제 판소리의 고장, 공주를 홍보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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