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홍주순교성지 ‘신비한 기적의 우물’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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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홍주순교성지 ‘신비한 기적의 우물’을 아시나요?
  • 글=한관우/자료·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10.0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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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4>
▲ 홍주성 옥터 앞에 복원된 신비한 기적의 우물이 지역주민들과 순교성지 순례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홍주성 안의 옛 부터 ‘신비한 기적의 우물’ 다시 뚫려 복원
홍주성 샘물, 수질검사 통해 46가지 항목 먹는 물로 ‘적합’
1872년의 ‘홍주지도’에도 같은 우물 모습이 확인되고 있어
홍주성 샘물에 대한 기록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와


 

충청남도 서북부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으며, 내포지역의 정치, 행정,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으로도 서해안 방위의 핵심 역할을 담당해 온 홍주는 관할 범위가 넓었던 만큼 순교자들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홍주부를 두어 관찰사가 주재했던 홍주는 관할 구역만 해도 북으로는 경기도 평택이남, 동으로는 경부선의 서부지역, 남으로는 금강 이북의 22개 군현에 이르렀다. 홍성읍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홍주성은 성(城)전체가 순교의 현장이다. 특히 홍주성의 관아시설은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형벌이 집행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순교 터로는 목사나 진영장의 동헌 앞, 옛 저자거리, 홍주옥터(옛 검찰청 및 법원이 있었던 자리) 등을 들 수 있다. 이밖에도 홍주성 북문 밖의 생매장 터로 사용되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월계천변,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부근도 있다. 이렇듯 홍주성을 중심으로 구석구석이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처형지로 사용됐던 곳이다. 그곳엔 지금도 무심하게 서있는 고목들과 함께 당시 천주교 교우들이 받았던 엄청난 핍박의 실상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는 듯 말이 없다. 하지만 이곳엔 옛 부터 ‘신비의 우물’ 또는 ‘기적의 우물’로 불리던 홍주성 안의 샘물이 다시 뚫리면서 지역 주민들은 물론 천주교홍주순교성지 순례자들이 이 물을 물통에 담아가는 등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어 화제다.
 

■홍주성 옥터 앞 옛 우물 다시 뚫렸다
홍성군은 홍주성 옥터 앞의 옛 우물터에 130m깊이로 샘을 다시 뚫었다. 이 우물터를 뚫던 중 암반을 만나면서 펌프를 설치하고 동력 장치를 해서 샘물을 지상으로 올릴 수 있도록 연결시켰다. 그리고 공주시 소재 우솔환경연구원에 의뢰 46가지 항목의 수질검사를 통해 먹는 물로 ‘적합’ 판정도 받았다. 옛날부터 있던 이 우물은 지난 2005년 홍주성 복원계획에 따라 대전지검 홍성지청과 대전법원 홍성지청이 월산리로 이전하면서 폐공됐다가 지난 2012년 역사공원 조성에 따라 외형을 복원한 것이며, 먹을 수 있는 물로 확인되면서 우물을 개통했던 것이다. 이 우물에서는 하루 100여 톤의 물을 취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에는 ‘재판소 물’로 불리던 이 우물은 옛 부터 맛이 특별히 좋을 뿐만 아니라 병을 치유한다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애용했던 우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에는 지역주민들이 아침마다 줄을 서서 물을 길어갔으며, 이 물을 담아다가 판매하는 장사꾼들까지 생기는가 하면 이 물로 음식과 커피를 끓이면 맛이 있다며 홍성읍내 식당과 다방에서 많이 길어다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몸에 상처라도 나면 이 물로 씻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홍주성 감옥 터 앞의 샘물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 149권에는 “홍주읍성 안에 샘이 하나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아니한다”고 기록돼 있다. 또 1481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홍주읍성 안에 3개 우물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1872년 제작된 ‘홍주지도’에도 같은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우물에 대한 기록은 성서에서도 나타나는데 “우물 역시 매우 귀하였다. 그래서 우물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창세) 옛날의 우물 파는 노래가 전해지며(민수), 야곱 선조가 팠다는 우물이 천수백년 뒤까지 내려온 것이다(요한). ‘우물’도 지명으로 쓰인다. 예컨대 브엘세바(창세)에서 ‘브엘’이 우물이라는 말이다. 지하수가 많지 않아 우물은 주로 평지에만, 그것도 때로는 상당히 깊게 파야 했다. 샘은 그대로 적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나라와 같은 땅과 비교하면 귀한 편이었다. 그래서 흔히 샘이 있는 곳에 촌락이 생기고 그 촌락 이름에 ‘샘’이라는 말이 들어가게 된다. 예컨대 엔게디(여호), 엔도르(시편), 엔로겔(사무) 등의 지명에서 ‘엔’은 샘이라는 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홍주순교성지 ‘신비한 기적의 샘물’ 영험

▲ 1872년의 홍주지도에서 확인되는 우물터.

홍주성 샘물과 관련해 지역의 이번영 기자는 “이 샘물은 옛 부터 물맛이 좋아 시내의 식당과 다방에서 사용했으며 물장수들이 길어다 판매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또 병을 치유한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신비의 물’로 불려오기도 했다. 특히 병인박해 때 홍주감옥에서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은 1000대가 넘는 매를 맞고도 죽지 않고 상처가 빨리 회복되곤 했는데, 이 우물로 씻었기 때문이라고 전해 내려오기도 했다”며 “1860년대 병인박해 당시 홍주의 순교자들이 1400대를 맞는 등 아무리 매를 쳐도 죽지 않아 교수되거나 동사했는데, 죽기 전이나 후에 맞은 상처가 금새 회복되는 등 기적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기적은 순교자들이 갇혀있는 동안 먹고 세수한 우물의 물 때문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 같은 이야기들은 이탈리아인으로 홍주에서 순교한 다블뤼(A. Daveluy)주교가 자세하게 정리해 교황청에 보낸 ‘홍주순교록’과 안흥렬·최석우가 쓴 ‘한국 천주교회사’에도 기록돼 있다”고 보도하면서 “충청도의 첫 순교자 원시장 베드로는 1793년 12월 17일 새벽닭이 세 번 울자 목숨을 거뒀다. 나이 61세, 몸에 끼어엊은 찬물이 밤새 얼어 동사한 것이다. 1년 전부터 홍주옥에 가두고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아 동사시킨 것이다. 죽은 뒤 시체에 얻어맞은 흔적이 다 사라지고 광채가 났다.”

“1812년 11월 말 이여삼(바오르)이 홍주감옥에 들어왔다. 관장이 포졸들을 시켜 아무리 몽둥이질을 해도 죽지 않았다. 그는 일어나 앉아 물을 달라더니 자신의 머리에 붓고 스스로 세례를 주었다. 그는 관장에게 자기는 때려서 죽지 않으니 옆구리를 치라고 알려줘 죽임을 당했다. 그 시각 세 젊은이가 멀지 않은 곳을 지나는데 한줄기 광채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중 천주교 신도가 하나님의 기적이라 말하며 찬양하였다” 이상은 이탈리아인으로 홍주에서 순교한 다블뤼(A. Daveluy)주교가 정리해서 교황청에 보낸 ‘홍주순교록’의 내용 일부다.

“1798년 8월 19일 피신했던 박취득 라우렌시오가 홍주관아로 가서 스스로 잡혔다. 홍주옥에서 8일 동안 16 차례에 걸려 1400대를 맞았다. 죽은 줄 알고 옷을 벗겨 물을 부어 밖에 내던졌다. 그런데 몇 시간 후 그가 스스로 걸어서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11명의 교우가 목격했다. 옥사가 다시 힘을 다해 내리쳤다. 죽은 줄 알고 옥사가 지쳐서 잠시 잠들었다 깨어보니 그가 일어나서 교우들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처는 흔적도 없어졌다. 놀란 옥사가 덤벼들어 목을 매어 죽였다. 1799년 2월 29일 오전 11시였다” 안흥렬과 최석우가 쓴 ‘한국 천주교회사’의 기록이다. 이 같은 기적적 이야기들에 포함된 공통점은 순교자들이 옥에서 사용했고 고문 과정에서 이용됐던 물이다. 10여 년 전, 천주교 홍성성당은 전국에서 온 1500여 명의 신도가 참여한 가운데 홍주성 안에서 첫 선양대회를 열었다. 당시 홍성성당 나기순 신부는 홍주성 우물의 우수성을 설명해 많은 이들이 물을 먹었다. 며칠 후 나 신부는 온양의 한 성도로부터 “그 물 마시고 아픈 허리가 낳았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실제로 ‘금산에 살고 있는 나기순 신부는 최근 홍주성의 샘물이 다시 나온다는 말을 듣고 반가워하며 홍성에 와서 물을 길러갔다’는 설명이다.

홍주성지성당 최교성 신부는 “홍주성 옥터 앞의 우물이 개통된 이후 이 우물로 가글해 입 속의 염증, 머리에 난 버짐을 고치고 위가 깨끗해 졌다고 말하는 신도들이 있다”고 전하면서, 또 “전임 나기순 신부님은 홍주성 순교자들의 기적은 우물과 연관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프랑스 루르드 기적의 샘물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며 현재 금산에서 홍주성의 우물을 받아 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천주교 순교성지 중에서 물과 관련된 스토리는 홍주성지가 유일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간 2만여 명에 이르는 홍주성지 순례객들에게 세례에서도 그렇듯 물이 큰 역할과 기능, 구실을 하기를 기대한다. 물은 우리 일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생명의 바탕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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