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보성, 대명창 ‘소리 법제’ 따라 동·서편제 분화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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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보성, 대명창 ‘소리 법제’ 따라 동·서편제 분화 뚜렷
  • 글=전상진 전문기자/사진·자료=한기원 기자
  • 승인 2016.10.0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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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역 중고제와 한성준의 맥, 그 소리와 가락의 복원 <6>
▲ 구례 동편제판소리전수관.

고창 판소리…신재효 ‘소리 법제’ 잇는 동편제·서편제 판소리 명창 다수 배출
전남 구례·운봉(남원)·순창·흥덕 등 가왕 송흥록 ‘소리법제’ 따라 동편제 전승
전남 보성·광주·나주·강진·해남 강산제일 박유전 ‘소리법제’ 따라 서편제 전승
근대 5명창 송만갑 판소리 기리는 ‘구례동편제소리축제’, 7일부터 3일간 열려


 

▲ 고창출신 신재효 선생.

■고창 판소리… 신재효 발탁한 최초 여성 명창 진채선의 삶 ‘도리화가’에 고스란히 남아

고창읍내 흥문거리/ 두춘나무 무지기안/ 시내위에 정자 짓고/ 정자 곁엔 포도시렁/ 포도 끝에 연못이라./ 너도 공부하량이면/ 어서어서 찾아오소… 신재효 작 ‘자서가’ 中에서

신재효의 판소리 연구 업적은 ‘고창 신재효 고택’과 ‘판소리박물관’에 고스란히 남겨져 전승되고 있다. 특히 판소리박물관은 지난 2001년 6월 신재효와 아울러 고창지역이 배출한 많은 판소리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의 유·무형 자료 수집과 보존, 전시해 일반인에게 판소리 예술의 재교육과 감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내 유일무이한 판소리박물관으로 설립돼 일반인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신재효의 판소리 연구 업적은 고창의 많은 명창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김수영과 그의 아들이자 전기 8명창인 김찬업, 후기 8명창인 김창록·김토산·김성수 명창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최초의 여성 명창인 진채선과 허금파·김여란·김소희 명창 등으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여성 명창이 있다. 먼저, 진채선(陳彩仙, 1842~?)은 판소리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최초의 여성 창자이다. 어린 시절 무당인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신재효에게 발탁돼 소리를 배웠다. 그녀는 1867년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 참여해 소리했으며, 이 공연을 계기로 6년간 운현궁에 머물며 대령기생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 신재효는 그녀에 대한 연정과 그리움을 담아 ‘도리화가(桃李花歌)’를 지었다. 2015년 11월 류승룡·수지·송새벽 주연으로 ‘도리화가’라는 영화가 제작 상영되기도 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서는 그녀를 동편제 명창으로 분류했다. 여성이었으나 남성 창자 못지않게 성음이 웅장하고, 기량도 대단했다고 한다. 특히 ‘춘향가’ 가운데 ‘기생점고 대목’을 잘 불렀다.

 

▲ 고창출신 국창 김소희 명창.

■고창 판소리… 국창 김소희 명창, 배움의 갈망 통해 ‘만정제 춘향가’ 판소리 구성 정립
또 하나의 고창지역 출신 여성 명창은 김소희 명창. 만정(晩汀) 김소희(金素姬, 1917~1995) 명창은 본명이 김순옥(金順玉)으로, 고창 흥덕면에서 태어나 활동한 여성 명창이다. 그녀는 15세 때 송만갑 문하에서 ‘심청가’와 ‘흥보가’를 익히며 판소리에 입문했다. 18세 때 정정렬에게 ‘춘향가’와 ‘수궁가’를 배웠으며, 22세 때 박석기의 주선으로 담양 남면의 지실초당에서 박동실에게 ‘심청가’·‘수궁가’·‘흥보가’를 학습했다. 그녀는 또 30대에 정응민, 정권진, 박록주, 김여란, 박봉술 등을 찾아가 소리를 학습하기도 했다. 안향련, 한농선, 박초선, 박송희, 김동애, 오정숙, 안숙선, 성창순, 남해성, 이일주, 신영희, 박양덕, 오정해 등이 그의 제자이다.

그녀는 천부적인 목을 타고난 명창으로 평가된다. 청아하고 미려한 목을 지녔으며, 극한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절제미를 잘 발휘해 우아하고 유장한 창을 구사하며, 섬세하면서도 지나친 기교를 멀리하는 창법을 지향했다. 그녀는 여러 스승에게 배운 소리 대목 가운데 좋은 대목을 적절히 조합해 새롭게 구성한 ‘만정제 춘향가’는 동·서편 소리의 특성을 고루 갖춘 소리로 판소리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됐다. 그녀는 국창(國唱) 칭호를 얻었던 명창으로, 우아함을 추구하는 여창 판소리의 한 정점을 이뤘다고 평가된다. 여성국악동호회와 국악예술학교 설립에 참여하는 등 국악계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판소리 유파 구분, 전승지역 중요하지만 ‘소리 법제’ 따라 구분되는 게 정설
판소리의 유파를 나누는 우선적인 기준은 전승지역이다. 특출한 명창이 사는 지역이 자연스레 판소리 전승의 중요 거점이 됐다. 전통 사회에서는 명성과 교육적 능력을 가진 명창이 사는 집에 학생들이 와 함께 기식하면서 오랜 시간 학습했다. 같은 스승에게 배우다 보니 배우는 이들의 소리 스타일도 거의 같게 됐다. 이것이 일가(一家)를 이뤄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과정을 거치면 동일한 지역에서 불리는 동일한 스타일의 판소리가 된다. 하지만 명창이 이사를 해 사는 지역이 바뀌기도 하고, 이사한 명창을 따라 필요에 의해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유파의 구분은 자연스레 이전의 지역적 기준보다는 명창 자신의 기준에 따라 유파를 나누게 됐다. 동편제나 서편제가 전승지역보다 ‘소리의 법제’에 따른 구분이라는 그동안의 사정을 말해준다.

 

▲ 진채선 명창.

■전남지역 판소리, 동·서편제 분화 뚜렷… 송흥록과 박유전 명창 법제 따라 구분
충청·경기지역과 전라북도 지역이 중고제와 동·서편제의 혼재 속에서 신제인 동편제가 우세하다면, 전라남도는 동·서편제의 분화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대명창이 활약한 지역을 중심으로 운봉(남원)·구례소리, 보성소리, 광주소리 등으로 나뉘고, 그 중심에는 운봉(남원)·구례소리 송흥록 명창과 보성소리 박유전 명창이 있다. 먼저 동편제의 음악적 특징은 웅건청담(雄健淸淡)한 우조(羽調)로 웅장하고 씩씩하며, 기교를 부리지 않고 선천적인 음량을 소박하게 그대로 드러내어 소리하는 특징을 지녔다. 동편제는 아니리가 길게 발달하지도 않았고, 발림도 별로 없으므로 오직 목에서 내는 통성에만 의지하는 소리제이다. 동편제는 지역적으로 전라도 섬진강의 동쪽인 운봉(남원)·구례·순창·흥덕 등지에서 발원했으며, 송흥록 명창이 중시조라 했다. 동편제에는 김세종제·정춘풍제, 그리고 송흥록제 등이 있다.

 

▲ 구례출신 근대 5명창 송만갑 명창.

■동편제, 운봉(남원)·구례 등 중심… 가왕 송흥록 명창 소리 법제 이어져
동편제의 가장 큰 본령을 이루는 송흥록제는 전라도 섬진강의 동쪽인 운봉(남원)·구례 등지를 중심으로 발전해간 유파이다. 송흥록 명창은 “모든 가조(歌調)를 집대성” 해 판소리를 완성했으므로 ‘가왕(歌王)’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송흥록(宋興祿, 1800~?) 명창은 순조·헌종 때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이른바 전기 8명창에 속한다. 그의 출생지는 전북 남원시 운봉읍 비전리와 전북 익산시 함열읍 곰개 등이다. 특히 운봉은 1842년 안민영이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던 곳으로, 날씨가 궂은 밤이면 송흥록의 혼이 나타나 “내 소리 받아가라”라고 외친다는 그의 무덤이 있다. 그는 판소리 고수 송첨지의 아들이자, 판소리 명창 김성옥의 처남, 판소리 명창 송광록의 형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이 명창으로 유명했으며, 철종으로부터 통정대부 벼슬을 제수 받았다.

그는 매부인 김성옥이 창안한 ‘진양조’라는 매우 느린 장단을 판소리에 도입해 속도 변화의 폭을 넓혔고, 설움조와 호령조를 구사해 슬픈 조와 화창한 조, 그리고 장엄한 조로 판소리 조성 변화의 폭을 확대시켰다. 또 가곡성 우조를 판소리에 도입해 장중미와 비장미의 음악적 표현을 용이하게 했다. ‘조선창극사’에서 ‘송흥록 조’에서 “여산폭포 호풍환우의 송흥록”으로 소개한 데서도 그가 속도나 조의 변화를 다채롭게 구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귀곡성(鬼哭聲)을 잘 구사한 명창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날 진주 관찰사의 부름을 받은 그가 진주 촉석루에서 ‘춘향가’ 가운데 ‘옥중가’를 불렀다. 소리가 귀곡성을 발하는 대목에 이르자, 갑자기 바람이 일면서 수십 개의 촛불이 일시에 꺼지고 하늘로부터 귀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좌중들은 이 일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는 ‘춘향가’ 가운데 ‘옥중가’와 ‘변강쇠타령’, ‘적벽가’ 등을 장기로 삼았으며, 단가 ‘천봉만학가’가 그의 대표적인 더늠이다.

 

■동편제 판소리 계승 위한 ‘구례동편제소리축제’… 우리 소리 만끽하는 기회 마련
웅장하고 호방한 판소리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동편제 판소리 한마당인 ‘구례동편제소리축제’가 ‘대한민국 소리를 잇다’는 주제로, 오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구례실내체육관 일원에서 펼쳐진다. 올해 8번째 맞이한 구례동편제소리축제는 동편제 판소리의 정통성을 이어가고 대중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짜였다. 소리꾼들의 등용문인 제20회 송만갑 판소리·고수대회도 같은 기간에 개최한다. 구례군 문화관광과 정성임 문화예술담당은 “이번 축제에서는 전승되는 동편제 판소리를 점검 및 선양하고 음반으로 남아있는 동편제 판소리를 복원해 새 생명을 갖게 한다”며 “주변의 다양한 관광 인프라와 연계해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한국의 소리축제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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