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의 참혹한 순교현장 홍성·월계천 합수머리 ‘생매장터’
상태바
신자들의 참혹한 순교현장 홍성·월계천 합수머리 ‘생매장터’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6.12.09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14>
▲ 천주교 홍주순교성지는 생매장터 인근(홍주의사총 건너)에 순교공원이 조성돼 순례자들의 미사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홍성천과 월계천 합수머리 순교자들의 생매장터로 추정되는 곳
홍주 최대 생매장 순교자 9명으로 추정, 유례없는 잔인한 형벌 자행
1868년 생매장 순교자들 안장된 장소 전통적인 매장지인 숲거리
천주교홍주순교성지, 충청 최초 순교자가 승천한 곳의 숭고한 넋


참수 터에서 월계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홍성천이 만나는 곳에 또 모래가 쌓인 곳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생매장 터다. 길 건너 ‘홍주의사총’과 마주하고 있다. 홍주순교성지 생매장 터는 1868년 무진박해 당시 내포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여도 수용할 옥사가 부족해지자 그 대응책으로 최법상(베드로)과 김조이(루치아), 김조이(마리아), 원 아나타시아 등을 생매장한 참혹한 순교의 현장이다.
생매장터는 지난 2008년 3월에 이르러서야 순교성지로 재조명됐고, 최근엔 조각가 고영환(토마스) 작가가 3년여에 걸쳐 제작한 십자가의 길 14처가 생매장 터에 세워져 순례자들의 기도 공간이 되고 있다. 이곳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주변이 순교자들의 생매장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생매장 된 순교자들은 물론 옥사나 교수형으로 죽은 순교자들이 안장된 장소로 전통적인 매장지인 숲거리와 그 인근, 즉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인근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대전교구에서 펴낸 홍주·해미성지 자료집에 따르면 홍주순교자들의 순교 형식은 오직 교회의 순교자 증언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데, 여기에 생매장 4명, 참수 2형, 미상 8명 등으로 나타난다. 1868년에 이루어진 유 마르타의 순교는 참수형인지 혹은 교수형인지 불확실하다. 1868년 5월에는 홍주 원머리 출신의 신자들 4명이 천주교 신앙 때문에 동시에 생매장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홍주에서의 최대 생매장 순교자는 9명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홍주순교자들은 참수형보다는 교수형이나 갖가지 남형으로 순교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천주교 박해시대 때 홍주에서는 생매장을 당해 순교의 영광을 얻은 신자들이 탄생했는데, 그것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잔인한 형벌이었던 것이다.
 

■ 생매장 추정 순교자 최대 9명 순교해

1868년 5월 최법상 베드로, 김조이 루치아, 김조이 마리아, 원 아나스타시아를 비롯한 생매장 추정 순교자 최대 9명이 순교한 생매장터는 지금까지 명확하게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교회 증언록에는 당시 생매장을 했던 이유를 “많은 교우들을 죽이기 어려우매라는 데 있었다”고 한다. 물론 순교자들은 홍주성 안이 아니라 홍주성 밖 어느 장소에서 한 구덩이에 생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옥사하거나 교수형을 당한 순교자들의 시신이 안장된 장소도 이 생매장터와 거의 같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최근 증언에 따르면 ‘홍주의 옛 숲거리는 홍주에서 희생된 동학군과 의병들의 시신을 안장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천주교 순교자들이 생매장을 당한 장소도 이 부근이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지금은 없어진 홍주의 숲거리는 1871년의 ‘홍주목 지도’에도 홍주성의 동문 밖을 흐르는 홍성천 동쪽 건너편에 자세히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왼쪽 지역이다. 이 숲거리가 홍주성 밖의 전통적인 매장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물론 홍주의 천주교 순교자들은 동학농민군(1894년)이나 홍주의병(1906년)들보다 적어도 25년 이전에 처형됐으며, 한 번에 순교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순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시신을 홍주성 밖 여기저기에 묻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따라서 1868년의 생매장 순교자들은 물론 옥사나 교수형으로 죽은 순교자들이 안장된 장소를 전통적인 매장지인 숲거리와 그 인근, 즉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인근으로 보는 견해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조양문으로 끌려 들어온 많은 천주교신자들은 당시 관청이었던 안회당(현재의 홍성군청)의 뜰 안에 있는 느티나무에 묶여 있다가 동헌으로 끌려가 심한 문초를 받아 죽기도 했으며, 홍주 옥에서 굶어 죽기도 했다는 증언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렇게 죽은 시체는 홍주성 밖으로 내다 버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홍주 원정리에 사는 원시장(1732~1793, 베드로)은 이곳 홍주관아에서 모진 혹형을 받고 홍주성 밖에 버려져 얼어 죽었다는 기록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 홍성·월계천 합수머리 생매장터

■ 월계·홍성천 만나는 합수머리 생매장터

1866년, 병인박해가 계속되던 해에 원머리(현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 출신 최법상 베드로, 김조이루치아, 김조이 마리아 원 아나타시아 등은 한날한시에 체포돼 홍주성으로 끌려온 후 혹독한 고문과 문초를 당했다. 홍주순교성지의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형을 받은 장소는 홍주성의 북문 밖, 지금의 홍성읍 오관리 북문교 인근의 월계천변으로 추정되고 있다. 소향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지점에서 죄인들을 처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이곳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합수머리가 나온다. 이곳이 생매장터로 추정되는 곳인데, 월계천변 북쪽의 홍주의사총과 연접한 생매장터 옆에는 성당처럼 제대가 마련된 잔디 광장이 조성돼 있다.
홍주순교성지에는 따로 홍주성지성당이 있지만 비좁은 관계로 홍주성 안회당 주변의 잔디밭이나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는 형편이다. 홍주순교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을 위한 미사장소가 필요한 이유다. 이곳 천주교 홍주성지비가 있는 광장이 일종의 야외 성당인 셈이다. 이곳에 세워진 순교비 앞면에는 ‘천주교 홍주순교성지’라 썼으며, 뒷면에는 ‘이곳 홍주골은 믿음을 지킨 성지로 충청 최초 순교자가 승천한 곳 이 숭고한 넋은 평화의 빛이 되리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아울러 순교비 옆 표지석에는 ‘이곳은 순교의 정신으로 내 나라 내 고장 홍주의 얼을 견고히 하는 거멀못이 될 것임에 삼가 순교자를 현양하는 마음으로 이 비를 세운다’고 적혀있다.
특히 천주교 신자들의 생매장터는 홍주순교성지와 이웃한 해미순교성지에도 있다. 해미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에 1000여명 이상의 ‘천주학 죄인’들이 생매장당한 곳에 조성돼 있다. 많은 숫자의 신자들을 한꺼번에 죽이면서 시체 처리의 편리함을 위해 생매장형이 시행됐던 것이다. 신자의 수가 적을 경우에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개울 한 가운데의 모래사장이나 둠벙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형이 집행됐던 것이다. 해미성지의 경우 천주교인들을 빠뜨려 죽인 둠벙이라 해서 ‘죄인둠벙’이라 불리다 지금은 ‘진둠벙’으로 이름조차 바뀌어 불려져 내려오고 있다. 수많은 이름 모를 신자들의 유해가 홍수로 유실됐다가 1935년 일부 발굴된 뒤 1975년 16m 조형물인 해미순교탑이 세워지고 2003년 기념성전이 완공됐다.
홍주성지 전담사제로 사목하고 있는 최교성 신부는 “홍주성지는 홍주읍성 주변 한 곳에 순교 터와 증거 터, 매장 터까지 있는 특색 있는 성지이다. 이 거룩한 성지를 통해 박해시대 순교자들의 삶을 증거하고 은총의 성지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문제는 순례객들을 위한 미사장소가 없어 아쉬움이 큰데 홍성읍사무소가 이전할 계획으로 있어 읍사무소를 철거하지 말고 홍주순교성지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홍성의 홍보관을 겸한 홍주순교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을 위한 미사나 쉼터공간으로 활용되길 소망한다”는 기대를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민 김안젤라(홍성읍)씨는 “홍주성을 복원한다고 해서 홍주성 안에 있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건물까지 헐어내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고 지적하면서 “홍성읍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쫓아내는 방향보다도 사람들이 머물 수 있고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복원사업이 이뤄져야 하고 건축물도 활용돼야 할 것이다. 홍주성 안에 있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포함해 리모델링이 가능한 주택들은 그대로 보존하고, 홍성읍사무소의 경우도 홍성을 알리고 천주교홍주순교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을 포함한 홍성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소 등이나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장소로 활용하여 오히려 홍성의 랜드마크로 부각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해마다 수천 명의 순례객들이 찾고 있는 천주교 홍주순교성지는 이제 천주교 신자들만의 성지가 아니다. 홍성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매김 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주교대전교구는 지난 2008년 3월 홍주의사총 하천변, 생매장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사제단, 신자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주교 홍주순교성지비 제막식을 갖고 홍주순교성지를 부활시켜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기로 다짐하기도 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