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한 송이마다 마음을 담아 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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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한 송이마다 마음을 담아 작업합니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09.3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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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잇는 청년, 청년CEO, ‘농촌에서 삶의 가치를 찾다’ <9>

수플라워 김규식 대표
축하화환으로 나가기를 기다리는 화분들 사이에 선 김규식 대표.

홍성읍에서 21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금마면이다. 죽림마을 들어가는 입구 대로변에 위치한 수플라워의 빛바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하지만 수줍게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있는 수천가지 꽃들을 상상하며 들어선 가게는 조금 낯선 풍경이다.

입구에 비어 있는 화분들과 사무실, 그 옆으로는 검은 양복들이 잔뜩 걸려있고 바닥에는 이런저런 폐기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사무실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쪽 창고에 수 천 송이 국화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늘 15도로 맞추어져 있는 창고 안은 오로지 국화의 집으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창고를 나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햇빛을 가득 머금은 화분들이 축하 화분으로 나갈 순서를 기다리며 초록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야 조금 꽃집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김규식 대표(34)는 사무실 안쪽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고, 그 옆으로는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니고 있다. 어머니가 2009년에 시작한 화훼 사업을 2011년부터 같이 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김대표는 졸업하고 바로 화훼 사업에 뛰어들었다. 굳이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아예 해보지 않았다.

“졸업하고 이 일을 하겠다고 바로 마음먹으면서 서울에서 영정 재단 장식을 배웠어요. 충남 지역에서 이 일을 하는 곳이 거의 없어 특히 환절기에 많이 바빠요.”

인간이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가는 길, 우리는 그들의 삶을 기억하며 애도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 하얀 국화를 바친다. 요즈음 디자인 콘셉트를 적용해 영정재단장식을 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히말라야 등반 시 사망한 분들의 영정을 기리기 위해 산봉우리 모양을 따라 국화가 장식되거나,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파도 모양의 영정재단 장식이 들어가는 경우다. 국장이나 기업장의 경우에 적용이 되기도 한다.

이 일은 일반적 장식보다 두 배의 시간과 노동력이 들어간다. 먼저 디자인 콘셉트를 잡고 디자인을 한 후 틀을 제작해 사람이 일일이 국화를 꽂아준다. 꽃들의 크기나 모양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경험이나 노하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영정재단장식은 김대표가 직접 한다. 

“처음 이 일을 하면서 4~5년 정도는 휴일 한 번 없이 일했던 것 같아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어떻게든 제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중입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명사화되면서부터 그 일은 스트레스와 고난의 길이 되고 만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치지 않도록 긴 호흡을 가지고 천천히, 꼼꼼하게 그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을 흠뻑 머금은 오아시스에 내가 원하는 꽃들을 잘라 바구니에 조화롭게 꽂혀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저 꽃들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피고 지는 꽃들처럼 우리네 인생도 그럴지니 흰 국화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이 생을 떠나가는 이들의 홀가분함과 보내는 이들의 슬픔이 함께 존재하는 것만 같다. 오늘 김대표가 꽂는 국화 한 송이에도 그런 마음이 가득 담겨 누군가의 가는 길을 밝혀줄 것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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