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교실 중국어 가르치며 보람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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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교실 중국어 가르치며 보람느껴요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6.2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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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7>

홍성읍 월산리 한영란
한영란 씨는 기회가 닿는대로 열심히 배워서 딴 자격증을 통해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할아버지는 넓고 비옥한 땅을 찾아서 조국을 떠나 만주로 갔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조국은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영영 돌아갈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대신 손녀가 훗날 조국 땅을 밟았다.

지금 홍성읍 월산리에 살고 있는 한영란(42) 씨는 18년 전 대한민국에 왔지만 아직 할아버지의 핏줄을 찾지는 못했다. 할아버지가 청주 한 씨라는 것과 청주가 고향이라고만 전해 들었을 뿐 그 많은 종씨들 속에 촌수가 가까운 혈족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국생활 3년째였던 2002년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지금은 외롭지 않은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2000년 취업 연수생으로 왔던 그녀는 처음에 식당 일부터 했다. 고향인 중국 도문에서 대학까지 졸업을 한 엘리트였지만 한국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옛날 할아버지가 낯선 만주 땅에 와서 온갖 설움을 받으며 농사를 지었듯이 영란 씨는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만 찾아서 열심히 했다. 그러던 중 좋은 남자도 만나게 됐다. 홍성에 사는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1년간 교제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2003년 결혼한 남편은 그녀보다 5년 연상으로 홍성에서 형제들끼리 공구점을 차려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가 남편을 따라 홍성읍에 내려와 신혼생활을 시작한 곳은 원룸이었다. 남편도 가난했고, 그녀도 가져온 살림살이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했기에 좁은 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살아도 마냥 행복했다. 그러나 2년 후 첫 아기를 출산할 때가 되자 좁은 집을 먼저 걱정한 것은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의 배려로 당시 완공을 앞두고 있던 부영아파트 임대 신청을 해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2004년 9월 8일 입주하고 9월 14일 첫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23평 넓이의 아파트가 그 때만 해도 우리한테는 엄청 큰 집이었습니다.” 새 아파트에 어울릴 만한 가구나 가전제품 하나 없었으나 시댁 가족들이 십시일반 하나씩 장만해줬다.

“저는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 없었어요. 어머님이 세탁기와 김치냉장고를, 고모가 냉장고를, 남편 형님네가 TV를 해 주셨습니다.” 영란 씨는 지금도 시어머니와 남편의 오누이들이 잘 해준다며 정말 고마울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특히 시어머니는 요즘도 김치를 담가 주신다고 했다. 남편은 여전히 형이 운영하는 공구가게에 나가 월급제로 일하고 있다. 영란 씨는 중학교 2학년생 딸과 초교 5학년생 아들이 잘 자라고 있어 처음에 넓었던 아파트가 이젠 좁아서 걱정이다.

어릴 때부터 중국어를 배웠고, 연변대학에서 중어중문과를 다녔던 그녀는 요즘 전공을 살려 2중언어 교사로도 활동한다. “2007년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문화 강사 연수를 받고 2008년부터 다문화거점학교로 파견 나가 다문화 수업을 했습니다.”

한서대학교에서 어린이 중국어 강사 자격증을 딴 후에는 홍성군내 각 초·중·고 방과후학교 교실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는 각 학교마다 방과후 교실 지원 예산이 줄어들면서 다소 한가해졌다. 그녀는 수입이 줄었지만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으니 한 가지라도 더 배우려고 애를 쓴다.

“올해는 한국전래놀이 강사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자격증이 나오면 다문화와 함께 한국전래놀이도 같이 가르칠 계획입니다. 이렇게 배우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니 성격도 밝아지고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아직 친정어머니는 중국에 혼자 남아 계시는데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연변 가는 비행기 표가 제일 비싸요. 청두나 중국의 다른 지역은 반값밖에 안되는데 연변에 한번 가려고 하면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요.” 그래서 남편은 남북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며 북한 땅을 통과해서 달릴 수 있는 고속철도가 뚫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했다. “철도가 연결 되면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죠. 우리는 교통문제가 해결되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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