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섬 제주, 빈집을 채우는 문화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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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섬 제주, 빈집을 채우는 문화예술가들
  • 취재=한기원/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8.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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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빈집에서 도시재생의 길을 찾다 <4>
제주도의 감귤농장인 중선농원의 창고와 빈집이 갤러리와 도서관 등 새로운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빈집프로젝트 운영 문화예술 공간 탈바꿈
제주도 농어촌의 빈집 읍면으로 귀촌한 예술가들 창작 둥지
제주도 내 문화예술 공간들 네트워크 형성의 필요성도 제기
변화를 받아들인 제주건축물 옛 모습 지키며 새로이 태어나


제주도에 이주하는 문화예술가들의 발길이 머문 곳은 상당수가 빈집이었다. 제주도에는 지금 작은 마을들,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리(里) 단위 마을에 문화예술 공간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운영하는 빈집프로젝트라는 지원 사업 덕분이다.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예술 공간 지원사업인 빈집프로젝트는 시골에 놀고 있는 감귤 창고 등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시작됐다고 한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2014년까지 유휴 시설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빈집 프로젝트 방식의 사업만 해도 이주민들의 몫이 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 정책적 지원과 맞물려 제주도 농어촌의 빈집들은 읍면으로 귀촌한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창작 둥지가 됐다고 한다. 문화예술을 충전하는 장소가 된 이들 빈집은 한결 같이 지역과 만나려 애쓰고 있다. 마을 곳곳에 흩어진 생활문화유산, 제주의 숲과 바다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가치를 창작을 통해 알리고 지역주민과 나누는 일을 벌여왔다. 빈집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온기를 더하듯 나 홀로 작업만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와 걸음을 맞추려는 노력들이 꾸준하다. 제주도에 귀농·귀촌이 열풍이 된 시대, 섬의 자연과 문화를 창작 텃밭으로 삼으려는 예술가들의 이주도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지금도 제주도 어느 곳에선 빈집에 깃들어 이 땅에서 길어 올린 사연을 창작물로 빚어내는 이들이 많다.

■ 문화예술 공간 제주도의 모습 바꿔
마을에 문화예술 공간이 생겨나는 것은 의미 있는 현상이다.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소위 공공미술 등 문화예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공간들이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문화예술 공간들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임대 공간의 재계약 문제, 불안정한 수익 구조, 기획 인력 부족 등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재정과 인력 부분이다. 문화예술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운영비는 만만치 않은 반면 문화예술 공간 내 활동으로 수입이 생기기란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예술 공간들이 생겨나면서 제주도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는 평가다. 거리에는 벽화와 조각품이 생겨나고, 작가들이 꾸민 그들의 집과 전시실은 또 다른 예술 작품이 되어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공간마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면서 제주도민들의 풍부한 문화 체험 또한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제주도는 아름다운 자연만이 아니라 문화라는 자산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 제주도를 ‘르네상스의 시대’라고 칭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이제 문화예술의 싹을 틔운 제주도가 문화예술의 전성기를 누리고 싶다면 민(民)도 관(官)도 좀 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제주도와 자신이 속한 마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 공간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내 문화예술 공간들 사이에 네트워크 형성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의 경우 제주도의 문화예술 공간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고 공간들의 요구 사항을 분석해 문화예술 공간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한 대목으로 보인다.

■ 중선농원, 복합문화예술 공간 탈바꿈
제주시 영평길 269에 자리한 중선농장이라는 감귤농장이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관심을 끌고 있다. 제주출신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부친이 한평생 귤 농사를 지었던 농장이다. 문 교수와 그의 가족들은 세월이 쌓인 2300여 평의 드넓은 농장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리고 농장의 감귤 창고와 농가는 갤러리 중심의 새로운 문화복합 공간으로 바꿨다. 가장 큰 감귤창고에는 비영리 전시장 ‘갤러리2’가 들어섰고, 작은 창고는 카페로, 농기구가 가득했던 부속 건물들은 인문예술도서관인 ‘청신재’(晴新齋)로, 농가로 쓰였던 건물은 게스트하우스 ‘태려장’(太麗莊)으로 탈바꿈했다.

네 채의 건물 가운데 백미는 단연 감귤창고였던 ‘갤러리2’이다. 돌 벽으로 이루어진 외벽은 그대로 살렸다. 천장과 외벽 사이에는 반투명 플라스틱 패널을 설치해 자연광이 전시 작품들을 환하게 밝혀주도록 꾸몄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공간이 되면서, 중선농원은 제주의 자연을 느끼면서 미술에 대한 사랑과 성찰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됐다. 이제 감귤나무 사이에 있는 이 갤러리는 문화예술을 통해 육지와 제주를 하나로 이어주는 공간이 돼 제주 사람들과 외지인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카페와 도서관은 도시에 팽배해 있는 치열한 생존의 삶에서 벗어나 사유와 성찰이 이뤄지는 분위기로 만들었다. 기획자 정재호 씨는 “중선농원의 곳곳은 미술이 중심이 되도록 꾸몄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공간마다 품고 있는 미학을 더 중요시 한다”고 말한다. 기획전시는 3~4개월 마다 교체되고 제주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중견 작가의 전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앤트러 사이트 제주' 전경.

한편 제주시 한림읍에는 ‘감저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앤트러 사이트 제주’가 있다. 감저는 고구마를 뜻하는 제주어이고, 감저 공장은 전분 공장을 의미한다. 지금은 잊힌 기억이지만 1960~80년대까지는 제주를 대표하는 농산물이 감귤이 아니라 고구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 전역에는 고구마 전분공장과 주정공장이 많았다. 카페 ‘앤트러 사이트 제주’는 1990년대까지 전분공장으로 쓰이다 방치된 건물을 재활용해 들어섰다. 원래 건물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고 최소한의 변화만으로 꾸며 더욱 독특한 분위기를 끌어냈다. 벽은 옛날부터 제주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됐던 것으로, 현무암으로 쌓아 올리고 그 사이사이를 시멘트로 메운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지붕을 지탱하는 나무들도 옛것 그대로다. 옛 모습 그대로 골조가 드러나 있는 천장 아래에는 커다란 1950년대 영국식 엔진 터빈들이 아직도 자리하고 있다.

제주의 옛 건축물들은 도시의 건축물처럼 권력을 상징하거나 저명한 예술가들의 미학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역사가 담겨 있다. 그래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만의 독특함이 살아있다. 오늘의 변화를 받아들인 제주의 건축물은 옛 모습을 지키며 새로이 태어났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 농어촌지역 빈집 적극적 활용 방안 시급
전국에서도 빈집이 많은 편인 제주도. 결과적으로 빈집이 넘쳐나고 있지만 적절한 활용 대책을 찾지 못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도에 귀농·귀촌이 열풍이 된 시대, 유다른 섬의 자연과 문화를 창작 텃밭으로 삼으려는 문화예술가들의 이주도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지금도 제주 어느 곳에선 빈집에 깃들어 이 땅에서 길어 올린 사연을 창작물로 빚어내는 이들이 있다. 통계청의 귀농·귀촌인 통계는 제주 문화이주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자료다. 귀농보다 10배 많은 귀촌가구는 제주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이주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상당수의 문화예술가들의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곳이 바로 빈집이다.

제주대 부동산관리학과 양영준 교수는 “빈집은 토지이용의 효율성 제고, 공공 비용 절감, 범죄·화재 등의 지역사회문제 방지, 환경오염 방지 등을 위해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주택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빈집은 철거해 주차장 등 공공용지로 써보고, 사람이 살 수 있으면 리모델링해 임대주택, 지역주민 복지시설, 커뮤니티 시설, 창업 공방, 카페, 예술문화공간 등으로도 가능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농어촌빈집주인찾기사업단 홍은숙 실장은 “빈집을 활용하면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집을 지을 때 거쳐야 하는 법적인 절차를 치르지 않아도 돼 좋다”며 “빈집을 고쳐도 되고, 집을 짓더라도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만 하면 돼 수월하다”고 말했다. 귀농·귀촌이 주목받는 시대, 농어촌 지역의 빈집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 방안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까닭이다.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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