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송진채취 아픈 생채기 간직한 마을 소나무 숲
상태바
일제의 송진채취 아픈 생채기 간직한 마을 소나무 숲
  • 취재=한기원 기자 사진·자료=한지윤 기자·신우택 인
  • 승인 2019.05.11 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군 결성면 좌우촌마을 숲

미세먼지시대 공동체의 삶과 생명의 공간이다<2>

석당산 소나무 숲, 일제강점기 송진 채취한 흔적 그대로 남아
좌우촌마을 숲, 우리나라 고유의 육송림·노경목이 대부분 차지
일제, 소나무마다 최대 가로 70㎝ 세로 100㎝ 절개 송진 채취
일제, 휘발유·항공유 조달 어렵자, 소나무에서 송진 채취 사용


최근에 심각한 환경문제 중의 하나로 부각되는 지구 온난화 현상의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산림자원의 극대화를 제시할 수 있다. 온실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줄이거나 녹색식물 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해야 한다. 이는 국가의 경제발전과 연관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적정 수준으로 제거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구분 없이 지구의 환경보존을 위한 인류의 최선의 선택임을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다.

우리나라는 숲과 관련해 탄소 배출권 확보를 위한 정책목표로 산림청에서 산림경영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전체 산림 625ha(입목지)를 2022년까지 온실가스 흡수원(탄소흡수량875만 톤)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숲 가꾸기는 건전한 산림육성을 통한 환경·경제·사회적 기능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적 국가사업으로써 숲 가꾸기 사업에 따른 탄소배출권은 교토의정서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산림경영활동으로도 인정됐다.

■ 좌우촌마을 숲, 우리나라 고유의 육송림
홍성군 결성 좌우촌마을 숲은 우리나라 고유의 육송림이 장관을 이룬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6호로 지정돼 있는 결성동헌과 주변의 석당산 일원에 분포돼 있는 소나무 숲<위 큰사진>으로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한 아픈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석당산(146m)은 동쪽으로는 결성면 읍내리 좌우촌을, 서쪽으로는 성남리 내남 일부와 성곡리 가곡 일부를, 북쪽으로는 읍내리 교촌과 성호리 가곡을, 남쪽으로는 성남리 내남·중리·신리를 각각 이루고 있다. 청룡산에서 달려온 일지맥이 꿈틀꿈틀 지현(之玄)으로 달려와 결성의 주산인 석당산(石堂山)이 됐다. 정상에 오르면 천수만의 창파가 눈앞에 펼쳐져 멀리 안면도 산줄기가 끝나는 남단에는 여러 개의 섬이 아름답게 산재돼 있어 해상공원을 방불케 한다. 산의 정상에 신당(神堂)을 짓고 해창(海倉)에서 세미곡(稅米穀)을 싣고 떠나는 배들의 무사귀환을 빌던 곳이다. 아담하게 석축됐기 때문에 석당(石堂)이 있는 산이라 해서 석당산이라 불리어 왔다. 좌우촌마을 숲은 석당산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결성향교가 있는 교촌마을 숲과 함께 홍성의 대표적 마을 숲으로 꼽히고 있다. 결성의 좌우촌마을 숲은 우리나라 고유의 육송림으로 노경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주민들의 휴식과 여가활용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는 역사문화와 자연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3년 고사목 제거 및 생육 환경 개선, 전통시설 복원 사업을 진행해 왔으며, 좌우촌마을청년회에서 2013년부터 자체적으로 정비 사업을 벌이고 주변에 야생화(산철쭉, 말발도리, 구절초, 상사화) 등을 심어 오고 있다.

결성면의 곳곳에 남아 있는 오래된 유적과 유물 등의 문화재 등으로 볼 때 옛 현감이 근무하던 고을임을 금방이라도 알 수 있는 곳이다. 한때 옛 홍주와 더불어 동등한 군세(郡勢)를 자랑했던 결성은 일제강점기인 지난 1914년 홍주와 결성을 합해 홍성군으로 병합된 이후 홍성의 크고 작은 면들 중 하나로 편입돼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면 전체 인구도 점차 줄어들어 1170여 세대에 2214명(남자 1075명, 여자 1139명)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읍내리 좌우촌 마을에 닿으면 조선왕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오래된 동헌(東軒)과 아문, 형방청 등을 만날 수 있다. 아름드리 보호수도 여기저기에 솟아 푸르른 새싹을 피워내고 있다. 동헌을 지나 이어지는 은행나무 여린 잎 돋는 오르막길 끝에선, 개교 한 세기를 맞은 결성초등학교의 아담한 2층 건물이 잔잔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교정답게 안팎의 풍경 또한 오래된 것들 일색인데, 한눈에도 족히 수백 년의 수령을 짐작케 하는 늙은 벚나무가 교문 옆에서 어린 꽃들로 환하게 빛났다. 교목(校木)인 거대한 은행나무 또한 한 오백여년의 수령(樹齡)을 헤아린다. 하지만 인구의 절벽을 실감이라도 하듯 인구가 줄어들고 신생아 탄생이 중단된 농촌의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결성초등학교도 폐교위기를 맞고 있다. 바로 옆 석당산(石堂山·146m)으로 향하는 야트막한 오르막길 입구에선 봄꽃과 새잎이 뒤섞여 계절의 완충지대를 이루고 있다. 조금만 더 깊숙이 파고들면 마을의 역사와 함께한 오래됐지만 아픈 상처를 간직한 소나무들의 향기가 푸르고 싱싱하다.

■ 일제강점기 송진 채취한 아픈 흔적 남아

산림청 국립과학원에서는 일제강점기시 송진을 채취하면서 남긴 상처를 조사해 소나무 서식지를 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을 추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해상봉쇄 작전으로 인해 휘발유와 항공유의 조달이 어렵게 되자, 일제가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해 군사용으로 사용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 같은 흔적은 결성 석당산의 소나무 70~80 그루에도 일제가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송진 채취를 목적으로 껍집을 벗긴 생채기가 고스란히 남아 그날의 아픔을 이야기 하고 있다. 마을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는 쓸만한 소나무마다 껍질을 벗기고 톱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만들어 송진이 쉽게 흘러내릴 수 있도록 깊은 생채기를 냈고 채취된 송진을 1차로 끓여서 가공한 후 드럼통에 넣어 반출해 군수물자로 사용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렇게 반출된 송진은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전투기 연료로 사용됐으며, 일제 강점기 막바지로 치달으며 더욱 심해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송진을 모으기 위해 일제는 소나무마다 최대 가로 70㎝ 세로 100㎝를 절개해 송진을 채취했다. 현재도 석당산의 소나무에는 이러한 아픈 상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결성의 봄은 역사문화와 함께 피어난다. 결성지역 향토민요인 결성농요는 1993년 제3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충남대표로 참가해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1996년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됐다. 또한 용대기놀이는 1981년 제2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충남대표로 참가해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결성면 형산리 구수동 용대기는 1824년(순조 24)에 제작됐고, 형산리 주교마을 용대기는 1891년(광서 17년)제작된 용대기가 보관돼 있어 조상의 숨결이 담긴 원형 그대로를 전승해 온 민속놀이다. 구수하고 애잔한 결성농요소리와 함께 결성농사박물관에는 농사와 생활과 관련된 수백 종류의 농사기구와 생활기구 등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향수로 다가온다. 가까운 박철부락에서는 만해 한용운 선사의 ‘님의 침묵’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