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버드나무 밀리고 400년 비보림 느티나무 우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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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버드나무 밀리고 400년 비보림 느티나무 우거져
  • 취재=한기원 기자 사진·자료=한지윤 기자·신우택 인
  • 승인 2019.06.1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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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시대 공동체의 삶과 생명의 공간이다<7>

서산 양유정 마을 숲

양유정은 본래 버드나무가 우거진 정자, 버드나무에서 유래
개천을 사이에 두고 아름드리나무들 늘어서 있는 숲은 절경
양유정, 선거 유세나 행사 열리는 날이면 사람들 인산인해
양유정 느티나무 11그루 1982년부터 서산시 보호수로 지정


1927년경 서산팔경 중에는 양유정과 관련해 명림표향(明林漂響·명림산 골짜기의 빨래소리)과 양유소연(楊柳銷烟·양유정에 자욱한 물안개) 등 두 개나 들어 있을 정도로 양유정은 옛 서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했다. 서산시 읍내동 양유정에 들어서면 수백 년은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여러 그루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숲이라고 할 만큼 많은 그루도 아닌데 수백 년의 세월동안 무수하게 뻗어 올린 나뭇가지들은 하늘을 덮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양유정은 본래 버드나무가 우거진 정자가 있는 곳이었다. 양류정이라는 정자의 이름도 버드나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양유정에 정작 득세를 하고 있는 것은 느티나무들이다. 넓은 면적을 자랑하던 터도 지금은 두 개로 나뉘어져 본래의 모양을 잃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그렇게 나뉜 두 개의 양유정 사이로는 하천을 메워 만든 복개도로가 옛 자취를 감췄다. 몇 십 년 사이 개발과 발전이라는 허울 아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는 양유정의 원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아름드리나무들 숲 이뤄 절경을 자랑
양유정(楊柳亭)은 복개 전인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인근 부춘산 옥녀봉과 명림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개천으로 흘러들어 천렵과 멱 감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또 개천을 사이에 두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많이 늘어서 있어 숲은 절경을 자랑했다. 또 명림천은 천수만으로 이어진 양대리 바다하고도 이어져서 고기들이 아주 많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양유정에 자욱한 연기는 개천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라는 이야기도 있고, 인근의 농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라고도 하지만, 오래된 느티나무와 버드나무들이 숲처럼 우거진 양유정의 모습은 서산의 그윽하고도 깊은 아름다움을 나타내기에 서산팔경으로 꼽는데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이곳 양유정의 나무들은 적게는 300여년, 많게는 400여년 이상의 수령을 보이고 있다. 이곳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논밭 일을 하다가도 잠시 그늘에 들어 쉬기도 하던 곳이었고, 외지 길손이 잠시 들어 땀을 식히며 외지의 소식을 전하기도 하던 정보교환 장소였고, 휴식의 공간이었다고 전해진다.
양유정을 찾는 동네 어른들에 따르면 “과거 유진오 전 신민당 총재나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당대의 명망 있는 정치인들은 선거 유세차 충청도 서산에 들르면 반드시 양유정을 찾았다”며, “3·1절, 광복절 등 각종 국경일 행사도 서산문화회관이 건립되기 전까지는 이곳 양유정에서 열리곤 했었다”고 말하면서 “과거에는 즐길만한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선거 유세나 기념일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숲 안은 온통 잔칫날처럼 사람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었다”고 회상했다.

1926년 발간된 서산군지에는 ‘유정(柳亭)은 즉 양류정(楊柳亭)으로 지금 이른바 서공원(西公園)이다’라는 글귀도 나온다. 아마 서산시 서쪽에 위치해 있어 그 당시에는 ‘양류정’ 또는 ‘서공원’으로 불렸나 보다. 지금은 양유정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이렇듯 양유정은 수양버들과 능수버들 그리고 팔각 정자, 지금은 땅속으로만 흐르고 있는 명림천의 옛적 선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명림천의 자욱한 물안개 속 버드나무 늘어진 양유정에서의 휴식을 ‘유정쇄연(양유정에 자욱한 물안개)’이라 불릴 만큼 조선시대 선비들의 놀이터로도 이름이 난 유적지이자 명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나이 들고 고사한 버드나무 대신 느티나무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일찌감치 고목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그래도 그 수명은 자그마치 300~400여년은 족히 된다는 설명이다.

■ 어르신들의 쉼터 아이들의 놀이터

서산 양유정 마을 숲은 본래 버드나무 숲이 많았으나 지금은 수령 300~400년을 보이는 느티나무 11그루를 중심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현재 양유정의 느티나무 11그루는 1982년부터 서산시의 보호수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1960년대 이후 공원으로 조성된 양유정은 그 당시 모임이나 집회의 장소로 빠지지 않았던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 중요한 장소였고, 지금도 여전히 이곳은 어르신들의 쉼터이자 약속의 길목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터로 주민들의 공간이 되고 있다.

팔각정에서 만난 어르신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양유정의 마을 숲에 느티나무가 버드나무보다 많은 이유는 풍수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본래 예전부터 양유정이 들어선 이 자리는 지리적으로 마을 동구에 속했기 때문에 느티나무는 풍수상 수구(水口) 막이를 위한 비보림(裨補林)으로 식재된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를 옛날부터 어른들한테 들어 왔다”며 “이후 수명이 긴 느티나무가 버드나무보다 오래 살아남아 지금과 같은 숲의 모습을 갖추게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서산시는 지난 2009년 4월 노후한 보호수 경계석을 걷어내고 원형 의자를 설치했다. 또 일제 때 식재된 외래 수종인 아카시아나무도 제거했다. 낡은 팔각정이 철거된 자리엔 목재로 지은 팔각정이 새로이 들어서 어르신들의 쉼터가 됐다. 팔각정 앞에는 ‘명륜노인정’이 있으며 팔각정 옆에는 어린이놀이터인 ‘버드가지놀이터’가 조성돼 있다. 이처럼 서산시 부촌동의 양유정 마을 숲은 다시 쾌적한 옛 분위기를 되찾아 마을 주민들 속으로 들어갔다.

과거 서산 행정의 중심지로 도심과 가까워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했던 양유정 마을의 숲 주변은 이제 도심의 확대에 따라 한적한 주택가로 변모했다. 버드가지놀이터의 놀이기구를 즐기려는 동네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 명륜경로당을 오가는 노인들의 발걸음은 팔각정에 멈춰 장기를 두는 소리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소리 외에는 고요함으로 적막감마저 돌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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