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옛 지명 고마나루, 솔숲·금빛백사장 잘 보존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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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옛 지명 고마나루, 솔숲·금빛백사장 잘 보존돼
  • 취재=한기원 기자 사진·자료=한지윤 기자·신우택 인
  • 승인 2019.06.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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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시대 공동체의 삶과 생명의 공간이다<8>

공주 고마나루 숲
고마나루 소나무 숲과 곰 조각상.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 포함된 공주의 ‘고마나루 명승길’
고마나루, 백제의 관문 고구려, 중국, 일본 문물교역 국제항구
곰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고마나루 솔밭, 2009년 옛 모습 재현
2003년 민간차원서 솔밭살리기운동 시작, 고마나루 솔밭 조성


충남 공주는 백제의 옛 도읍지 웅진(熊津)이었다. 우리말로는 ‘고마나루’다. 고마는 곰(熊)을 뜻하고 나루는 진(津)을 의미한다. 공주 땅을 적시며 흘러가는 물줄기가 백제 흥망의 자취와 함께한 금강(錦江)이 이곳을 흐르고 있다. 1500여년을 지켜온 공산성과 백제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된 무령왕릉도 금강가에 접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 포함된 공주의 ‘고마나루 명승길’의 시작인 고마나루는 금강변에 접해 있다. 백제의 중요 관문으로 고구려, 중국, 일본 등과 문물을 교역하던 국제항구로 이용됐다. 고마나루에 닿으면 무성한 솔밭이 운치를 더한다. 솔밭은 곰과 나무꾼의 애잔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한 나무꾼이 여인으로 변신한 암곰에게 붙들려가 두 아이를 낳고 살았다. 어느 날 나무꾼은 암곰 몰래 도망쳤다. 암곰은 강가에서 애타게 나무꾼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자 두 아이와 함께 금강에 몸을 던졌다. 이후 금강에서 자주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사람들은 암곰의 원한이라 생각해 사당을 짓고 원혼을 달래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곰사당 옆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발바닥에 닿는 흙이 부드럽고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금강의 기운을 전한다. 이른 아침 짙은 안개 속에 휘어진 나무 자태가 기이하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몽환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이 열정을 쏟아내는 곳으로 소문난 이유가 있다. 고마나루 바로 아래쪽에는 해체 방안이 제시된 금강의 공주보가 자리하고 있다.

■ 빼어난 자태 소나무 숲 가득한 고마나루
고마나루는 빼어난 자태의 소나무 숲과 금빛 백사장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인데, ‘고마’는 ‘넓다’는 의미라고 한다. 공주를 관통하는 금강 일대와 연미산 무령왕릉 서쪽의 낮은 구릉지대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고마나루’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 가운데 특히 잘 알려진 곳이 소나무 숲 주변이다. 금강을 끼고 있어 안개가 자욱하면 풍경이 어찌나 고상하고 우아한지 사진 동호인들이 즐겨 찾고 있으며, 연인들이 참으로 좋아하는 곳으로도 꼽히고 있다.

한성에서 천도(475년)한 백제가 다시 부여로 옮겨가기(538년)까지 약 64년간 백제의 도성인 공주였다. 서해에서 올라온 배나 금강 상류를 오가던 배가 이 나루에다 사람과 물자를 부렸다. 금강과 어우러진 소나무 숲 너머로 백제의 영화가 아련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곰사당을 지나면 소나무 숲이 펼쳐지는데, 곰사당은 말 그대로 곰을 기리는 사당이다. 단출한 사당 안과 사당 주변에는 곰 형상의 조각들이 보인다. 소나무 숲도 거닐고 곰사당도 구경할 수 있는 이곳은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순하고, 금빛 백사장이 연결된 흙길 또한 제법 고실고실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곳이라고 한다.

공주의 고마나루는 무성한 솔밭이 장관을 이루는 금강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강나루이자 공주시의 옛 지명이기도 하다. 공주시 웅진동 북쪽을 휘감아 도는 강나루의 솔밭, 연미산이 마주보이는 강 쪽으로 웅진수신지단(熊津水神之檀)이 마련돼 있다. 이 수신단의 유래는 국가에서 주관해 제를 지내는 두 곳의 단(壇)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산신(山神)에게 제사지내던 곳이 계룡산 중악단(中嶽壇)이고, 수신제를 지내던 곳이 바로 고마나루의 웅신단(熊神壇)이다. 고마나루 솔밭 강변에 설치된 웅신단은 봄과 가을에 제향뿐만 아니라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에도 고유제를 지내고 산천의 신령에게 가호를 기원했던 곳이라고 한다. 또 단군신화 이래 곰 토템(totem)에 익숙한 우리의 정서가 서린 고마나루는 설화 속 곰의 원혼을 달래는 살아 있는 우리 민속신앙의 현장이자, 공주지명의 연원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고마나루는 금강이 공주를 관통해 흐르다 급히 남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는 지역으로, 물살이 세고 험해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 등 이곳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잦은 사고를 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수신이 노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곰의 설화를 원용(援用)하기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곰의 원혼을 달래 더 이상의 사고를 막고자 하니, 자연스럽게 공주의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공주’라는 지명의 연원이 된 고마나루는 예전에는 강둑이었으나 지금은 공주에서 부여까지 시원스레 뚫린 백제대로 쪽 송림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웅신단(熊神亶)도 자리하고 있다. 자그마한 뜨락이 펼쳐진 웅신단에는 고마나루에서 발견된 돌곰상이 모셔져 있다.

고마나루 솔밭에 위치한 웅신단.


이렇듯 애틋한 곰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고마나루 솔밭은 지난 2009년 10월 부지매입을 완료해 정비를 하고 옛 모습으로 재현됐다. 공주시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21호로 지정된 고마나루 솔밭이 관광지로 거듭나도록 조성했는데, 일명 곰나루유원지로 불리던 고마나루 솔밭은 1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나루 부지 9871㎡, 솔밭의 전체면적이 2만 7957㎡로 늘어나게 됐다는 설명이다.

고마나루 솔밭은 지난 2003년 민간차원에서 솔밭 살리기 운동을 시작, 810만여 원의 기금이 조성된 이후 6년여 만에 부지매입을 완료해 정비를 완료했다고 설명한다. 공주시는 고마나루 솔밭 조성에 따라 450여주에 달하는 장엄한 소나무 숲과 금빛 백사장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 솔밭 안에 위치한 곰사당과 웅신단(熊神壇)에 관광객 접근이 한결 수월해졌을 뿐 아니라 솔밭 조성이 마무리 되면서 시민휴식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옛 문헌에 따르면 고마나루는 백제의 왕도이자 물길과 물길이 만나는 지점으로 고려 현종(1010)과 조선 인조(1624)가 이 나루를 통해 공주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또 백제 멸망 뒤에는 웅진도독부가 설치돼 고마나루가 백제역사의 중심무대로 작용했고 천신, 지신, 산천신에게 제사를 올려오던 공식적인 국가 제당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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