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성준경가옥의 쭉쭉 뻗은 소나무 숲 ‘장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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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성준경가옥의 쭉쭉 뻗은 소나무 숲 ‘장관이네’
  • 취재=한기원 기자 사진·자료=한지윤 기자·신우택 인
  • 승인 2019.06.2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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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시대 공동체의 삶과 생명의 공간이다<9>

아산 성준경가옥 소나무 숲
아산 도고면의 성준경가옥 주변과 도고산 일대 36만 5000㎡에는 수령 300~400년 부터 40~50년에 이르는 소나무 숲으로 빼곡히 들어차있다.

성준경가옥, 국가민속문화재 ‘아산 용궁댁’으로 이름이 바뀌어
‘나무를 베려 하자 나무가 구슬프게 울어 베지 못했다’는 전설
아름드리 소나무들 빼곡하게 이뤄내는 숲, 원시림 숲을 연상케
소나무 등걸 타고 줄기를 감싸며 덮고 올라간 담쟁이덩굴 이채


충남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에는 성준경가옥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아산 용궁댁’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이 고택이 바로 그동안 ‘성준경가옥’으로 불렸던 고택이다. 아산 용궁댁은 1984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당시 소유주 성준경(현 소유주인 성주현의 조부)의 이름을 따 ‘아산 성준경가옥’으로 불렸으나 지난 2017년 중요민속자료가 국가 민속문화재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아산 용궁댁(牙山 龍宮宅)’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고택의 명칭이 바뀌면서 각 건물 마다 새로 명칭 안내판도 세워졌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건물관리를 맡고 있는 성주현 씨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부르던 이름과 명칭이 달라 조금은 어색하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 성준경가옥은 1825년(조선 순조25년)에 지어진 고택으로 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민속자료 제194호로 지정됐다. 그런데 성준경가옥은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잘 보이는 곳에 지어진 여타 반가고택과는 달리, 안내판이 없으면 찾기도 힘든 외진 곳에 별장처럼 숨어있다.

사실 안내판이 있어도 성준경가옥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을 어귀에서도 이 고택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옛날 마을의 지배계층이었던 가문의 집은 대부분 멀리서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데, 성준경가옥은 그 집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드러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수령 400년 보호수, 고택 대문 역할

성준경가옥을 찾아가는 길은 마치 산 속에 있는 별장을 찾아가는 듯하다. 지금은 주로 사용하는 입구라지만 원래의 입구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원래의 입구였던 곳에서도 사랑채까지 이르는 길은 깊은 숲으로 우거져 있어 좀처럼 집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이미 집을 지을 때부터 어느 정도 형성됐던 것으로 판단된다. 진입로 입구에는 솟을대문을 대신하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좌우로 나란히 서있어 이 집의 대문역할을 하고 있다. 왼쪽의 큰 은행나무는 수고(樹高) 32m, 둘레 5.5m가량의 거대한 크기로 수령이 400여년을 넘겨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나무를 베려 하자 나무가 구슬프게 울어 베지 못했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확인할 길은 없으나 나무는 한눈에도 영물처럼 보였다. 아산시는 이 은행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바깥마당엔 푸른 잔디와 함께 제 몸의 무게를 못 이긴 가지를 무지개처럼 늘어뜨린 소나무들이 대문을 대신하고 있다. 특히 주변의 소나무를 보아도 꽤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풍광이 이 집터를 잡게 된 연유가 아닌가 싶다. 성준경가옥은 현재 집을 지키고 있는 주인의 8대조께서 지어 아버님을 모신 집이라고 한다. 이는 지난 1989년 보수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825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준경가옥은 완경사지에 깊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들어앉아있다. 일반적인 반가고택과는 달리 그 규모가 소박해서 의외다. 또한 성준경가옥은 택향(宅向)으로 꺼리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성준경가옥은 도고산(道高山·481.8m)을 배산(背山)하고 집 앞 동산을 안산(案山)으로 삼아 집터를 꾸리고 있다. 택향만 제외하면 나무랄 데 없는 가옥 배치다. 경북 청도군 임당리 내시고택도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임금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양식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성준경가옥에 이 같은 해석을 붙이는 것은 무리인 듯싶다. 반가고택의 택호엔 대게 벼슬이름이 따라붙는데 반해 성준경가옥엔 주인의 이름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성준경은 벼슬과는 별 인연이 없던 인물로 보인다. 풍수적인 이유로 일부러 북향으로 가옥을 지었다고 보는 게 옳을 듯싶다. 인근의 아산 외암마을의 고택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사람이 가꾼 흔적과 자연스러운 흔적 공존
이 일대에서 소나무 숲은 규모로는 인근의 최대 규모로 판단된다. 36만 5000㎡의 산과 대지에 웃자란 소나무 숲 650여 본이 빼곡히 들어차있는 모습이다. 소나무들의 수령(樹齡)은 평균 40~50년가량으로 수고(樹高)도 평균 20m를 오간다는 설명이다. 지난 2008년부터 충청남도는 ‘아름다운 100대 소나무 숲 가꾸기 사업’을 실시해 숲의 병든 나무를 솎아냈다고 한다. 2010년과 2011년에는 소나무 숲에 일부 자생하고 있는 활엽수 잡목과 고사된 리기다소나무 등을 베어내고 새로운 소나무를 식재함과 동시에 재선충 방제도 이어졌다. 이후 소나무 숲은 생태적으로 안정화돼 남은 나무들이 더욱 푸르고 강성해졌다는 설명이다. 굴곡 없이 우뚝 솟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이뤄내는 숲은 마치 밀림지대 원시림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우듬지에서만 가지를 뻗은 소나무들은 줄기에선 잔가지를 내지 않아 더욱 높아 보이는 것이 특징적이다. 소나무 등걸을 타고 올라와 줄기를 감싸며 덮고 올라간 담쟁이덩굴도 이채롭다. 사람이 가꾼 흔적과 자연스러운 흔적이 공존하는 좋은 모습이다. 이곳의 소나무 숲은 안면도의 소나무 숲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솔방울을 매달고 있는 소나무들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나무들의 생육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답압(踏壓) 등 생육을 방해하는 요소가 적기 때문일까. 사유지와 맞닿아 있어서인지 소나무 숲엔 따로 진을 쳐 머물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다. 이 일대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임도를 따라 도고산 산행을 하다 소나무 숲을 스쳐지나갈 따름이라는 설명이다. 공원화 된 공공의 소나무 숲이 아닌 바에야 사람과 숲의 인연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적당해 보이는 곳이 바로 성준경가옥의 도고산 소나무 숲이 아닐까.

바람이 물안개로 떠돌던 빗방울들을 거둬들이듯 청량한 기운을 머금은 다습한 솔바람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분위기다. 진초록 담쟁이덩굴과 소나무의 붉은 껍질이 보색을 이뤄 눈빛이 아른 거린다. 비 오는 날 이곳의 소나무 숲의 몽환은 구태여 찾아오는 사람들만의 몫일 터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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