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의 상처와 흔적 덮기 18년, 청양 중묵리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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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의 상처와 흔적 덮기 18년, 청양 중묵리 소나무 숲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한지윤 기자·신우택 인
  • 승인 2019.07.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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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시대 공동체의 삶과 생명의 공간이다<13>

청양 중묵리 소나무 숲
청양군 비봉면 중묵리 일대의 소나무 숲은 2002년 4월 산불 이후 1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2002년 산불 발생한 청양·예산, 재산피해와 임야 3095㏊ 모두 태워
소와 돼지를 비롯한 수많은 가축들 주인도 없는 축사 안에서 타죽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 등 침엽수·참나무 등 활엽수 조림
마을의 길에서 숲과 산을 바라보면 여전히 산불의 흔적은 선명하기만 


지난 2002년 4월 14일 오후 1시께, 충남 청양군 비봉면 중묵리의 산 124번지 임야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불은 때마침 불어온 순간 최대초속 15m의 강풍을 타고 인근 지역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강풍의 이동 방향은 능선과 일치했다. 초동진화의 손길보다 강풍을 등에 업은 불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불은 능선을 잇대어가며,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봄볕에 잘 마른 낙엽은 흙으로 되돌아가기도 전에 불쏘시개로 타올라 모목(母木)을 덮쳤다. 불은 불과 네 시간여 만에 발화지점서 20여㎞ 떨어진 곳까지 당도했다. 불의 이동속도는 사람의 평균 걸음걸이 속도보다도 빨랐다. 마을 하늘엔 마른 먹구름이 짙게 일렁여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산림청 헬기 3대, 공무원·의용소방대원·군인 등 1000여 명이 진화에 긴급 동원됐지만 불길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불길은 불 보듯 뻔해도 사람이 답보할 순 없는 길이었다. 15일 새벽, 소방당국은 날이 밝자 헬기 15대와 2800여 명을 추가 투입했다. 고단한 진화작업 끝에 이날 오전 8시 30분께서야 겨우 큰 불길이 소방당국의 통제권에 닿았다. 청양군계(郡界)를 넘어 예산까지 삼킨 불은 5개 면(청양 비봉·운곡, 예산 광시·대흥·신양면), 29개 리에 걸쳐 임야 3095㏊를 모두 태웠다. 소와 돼지를 비롯한 수많은 가축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주인 없는 축사에서 타 죽었다. 겨우 살아남은 산토끼, 고라니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경계하기만 할 뿐 기력을 소진한 나머지 다리 근육에 힘을 주지 못했다. 가옥·축사·법당 80여 동이 불타고 32세대 78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가축 1200여 마리 등 60여 억 원(82여 억 원 이상 재산피해 추정)의 재산 피해가 집계됐다. 인접 생태계 피해 규모는 지금까지도 화폐 단위로는 짐작되지 않는 수치다.

당시 청양경찰서에 따르면 ‘천년보살’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던 무속인 김아무개(당시 52·여)씨에게 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천년보살’은 의뢰인 이아무개(당시 45·여)씨의 부탁을 받아 이 씨 부모의 묘소에서 제를 올린 후 부적을 태워 날려 보내다 불을 냈다. 충남도정 사상 최대의 산불의 화근은 이토록 사소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산림법 제120조는 ‘과실로 산림을 소훼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천년보살’이 천 년간 살아서 매년 벌금을 갖다 바쳐도 어림없는 피해 규모였다.

■ 2003년부터 100억 원 투입 336만 본 식재
이후 피해 지자체들은 무너진 산림 복구에 사력을 다했다. 지난 2000년 봄, 동해안 5개 시·군에 걸쳐 2만 4000여㏊를 태운 ‘단군 이래 최대의 산불’에 덴 중앙 정부도 부랴부랴 복구 지원 예산을 보탰다. 피해 면적 가운데 36%(1129㏊)는 자연복원, 64%(1966㏊)는 인공복원 과정을 거쳤다. 인공복원 지역엔 2003년부터 4년 간 100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 20개 수종 336만 본이 식재됐다. 급경사 피해 지역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 등 침엽수와 참나무 등 장기 활엽수를 중심으로 조림됐다. 나무를 심기 어려울 정도로 급경사인 지역엔 종자가 뿌려졌다. 완경사 피해 지역은 산수유, 밤나무 등 유실수로 조림돼 향후 주민들의 경제적·물적 토대의 확보를 도모했다. 그렇게 불길이 휩쓴 땅에서는 또 다시 숲의 꼴을 갖춰나갔다. 산불 발생 이래 17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당시 발화점이었던 중묵리에서 마을 숲의 아름다움과 상황을 묻는 일은 여전히 민망하고 한가한 일이다. 마을의 경로당에서 만난 한 주민은 예전의 산불현장을 찾아왔다는 기자의 말에 “중묵리엔 마을 숲이 없다. 모두 타 버렸다. 산불이라는 말만 들으면 지금도 바람만 불면 무섭다”며 손사레를 쳤다. 그래도 마을의 뒤편 산등성이에는 제법 키 큰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소나무 숲이 아름드리  나무로 크기까지는 아득히 멀어보였다. 가느다랗게 키만 큰 소나무 숲에는 아직도 불길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깊게 배인 듯했다. “지금도 바람만 불면 무섭다”는 말은 그 주민만의 심정은 아닐 터이다. 10여 년이 넘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숲에서 산불의 흔적을 더듬는 일은 어렵지 않다. 마을의 민가로 이어지는 길에서 숲과 산을 바라보면 여전히 산불의 흔적은 선명하기만 하다. 당시 산불로 땅속 유기물 층까지 타버릴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의 토양은 지금도 척박하기만 하다. 상대적으로 덜 타 비교적 온전한 나무들을 보전한 숲에서도 밑동이 그을린 나무들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현실이다.
 

청양군 비봉면 중묵리 일대의 소나무 숲은 2002년 4월 산불 이후 1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 재난성 대형 산불, 엄청난 피해 안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재난성 대형 산불(출처; 산림청)사례를 살펴보면 ▷동해안 산불(삼척 등 5지역) △기간 : 2000.04.07.~04.15 △피해면적 : 2만 3794ha (피해액 360억 원, 299세대 850명의 이재민) △최대풍속 : 23.7m/sec ▷고성 산불 △기간 : 1996.04.23.~04.25 △피해면적 : 3762ha (피해액 230억 원, 49세대 140명의 이재민) △최대풍속 : 27m/sec ▷청양·예산 산불 △기간 : 2002.04.14.~04.15 △피해면적 : 3,095ha (피해액 60억원, 32세대 78명의 이재민) △최대풍속 : 15.1m/sec ▷강릉·삼척 산불 △기간 : 2017.05.06.~05.09 △피해면적 : 강릉 252ha+삼척 765ha=1017ha (피해액 608억원, 39세대 85명의 이재민) △최대풍속 : 23m/sec ▷양양 산불 △기간 : 2005.04.04~04.06 △피해면적 : 피해면적 973ha (피해액 276억 원, 191세대 412명의 이재민) △최대풍속 : 32m/sec다.

올해 4월 4일 밤 강원도 고성과 속초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에서 관측된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26.1m/sec, 이번 강원도 산불 진화 작업에는 소방차 872대와 헬기 51대, 소방공무원 3251명, 그 밖에 산림청 진화대원과 의용 소방대원, 군인, 시·군 공무원, 경찰 등 총 1만 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투입됐다. 이는 전국 소방차량의 15%, 가용 소방인원의 10% 규모로 사상 최대 규모다. 수도권에서는 경기에서 가장 많은 181대의 소방차가 출동했고, 서울과 인천에서는 각각 95대와 51대의 소방차가 파견되었다. 이밖에 충남에서 147대, 경북에서 121대, 충북에서 66대, 강원에서 52대의 소방차가 출동했다. 올해 4월 4일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3명의 사상자와 566가구 1289명의 이재민을 내고 산림 2832㏊를 태웠다. 정부에서 집계한 재산 피해액은 1291억1600만원이다. 정부 집계에 포함돼 있지 않은 소상공인·중소기업 피해 신고액 1360억여 원을 더하면 피해액은 2651억여 원에 달한다.

이렇듯 산불피해는 엄청난 손실을 인간에게 안겨준다. 하지만 산불로 인해 폐허가 된 자리에는 새 싹이 돋아나고, 새 잎이 흔적을 덮어가며 삶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희망으로 다가온다. 청양 중묵리와 예산의 산야에도 산불이 난 이듬해인 2003년부터 4년간 336만 그루 규모의 산림 복구 사업이 이뤄진 덕에 소나무 등 숲이 되살아났다. 불타 버린 소나무 숲 자리에는 백합·자작·상수리나무 등 활엽수를 주로 심어졌다. 속성수인 백합나무가 벌써 15m 높이로 자란 곳도 있다.

산림청 관계자에 따르면 “산림을 제대로 복원하려면 5년간 ㏊당 300만원이 넘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청양·예산 산불 현장의 완전 복원에는 길게는 100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산불 현장은 숲을 보호하고 지키는 게 가꾸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산 교육장이 되고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아픈 상처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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