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건드리면 동네가 망한다”는 마수리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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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건드리면 동네가 망한다”는 마수리 소나무 숲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한지윤 기자·신우택 인
  • 승인 2019.09.0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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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시대 공동체의 삶과 생명의 공간이다<18>
금산 마수리마을 소나무 숲은 수구막이를 위해 조성된 비보림으로 70~140년 수령의 소나무가 동구밖을 감싸고 있다.

살만한 명당, 풍수상 안정된 마을 안이 넓고 동구가 잘록한 마을
마수리마을의 동구 밖 소나무 숲, 수구막이를 위해 조성된 비보림
백낙헌, 150여 년 전에 사재를 털어서 마을 숲 조성에 쏟아 부어
칠백의총 끼고 있어 충절의 고장 금산, 외부에 널리 알릴 수 있어


충남 금산군 금성면 마수리 마수마을은 금성면의 진산인 금성산(錦城山·439m) 자락에 깃든 작은 마을이다. ‘마수리’라는 지명은 말머리를 닮은 마을의 지형으로부터 유래한다. 이밖에도 마을에는 말과 관련된 지명이 존재하는데, 마책골(마책; 말의 채찍)과 구세바위(구시; 소나 말 따위의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 구세는 방언)가 그것이다. 마수리가 속한 금성면은 금성산을 제외하곤 산지가 많지 않고, 기신천이 너른 평야의 중앙부를 동류하는 터라 내륙 지역에선 보기 드문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마수리 마을은 산을 등지고 완만한 비탈과 평야의 교접지에서 숨구멍을 틔우고 있다. 풍수상 금성면에는 천마지풍혈(天馬之風穴; 말이 산자락을 박차고 승천하는 형세)과 선인망월혈(仙人望月穴; 신선이 달을 바라보는 형세), 옥녀단장혈(玉女丹粧穴; 선녀가 화장하는 형세) 등의 명혈이 숨겨져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금성산 주변을 헤매는 지관들이 많았다는데, 아직까진 명혈에 조상을 모신 덕에 고관대작에 오르거나 거부가 됐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최소한 다른 지역에 비해 배곯을 일은 적었을 터이니 이만하면 사람 살만한 명당이라 할만하다.

풍수상 안정된 마을은 안이 넓고 동구가 잘록한 마을이다. 마을 안이 넓으면 생산성이 좋고, 동구가 잘록하면 재리(財利)가 모이되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대개 마을 동구는 수구(水口)로도 불리는데, 수구는 산기슭을 따라 흐르는 물이 집결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마을의 기운이 모여드는 장소로서의 의미도 가진다. 따라서 수구막이를 위해 동구 밖에 숲을 가꾸고 보전하는 일은 한 마을의 대사였다고 전한다.
 


■ 동구 숲과 마을의 운명을 동일시해
마수리 마을과 가까워지면 가장 먼저 외지인들을 맞는 것은 동구 밖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다. 여타 동구 숲들이 그러하듯 마수리 소나무 숲 또한 수구막이를 위해 조성된 비보림(裨補林)으로, 0.6㏊ 면적에 70~140여 년 수령의 소나무 40여 그루가 동구 밖을 감싸고 있다.

이 마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동구 밖엔 낙락장송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숲이 훼손된 이후 마을 또한 폐촌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백낙헌(白樂憲)이라는 사람이 150여 년 전에 사재를 털어 빈숲에 쏟아 부었다고 한다. 숲이 다시 채워지기 시작하자 주민들도 뒤따라 숲 가꾸기에 동참했다. 몸으로 시달려 숲의 영험함을 깨달은 마을사람들은 숲과 마을의 운명을 동일시해 삭정이 하나만 함부로 가져가도 쌀 닷 말의 벌금을 물렸다고 한다. 고사목이 생겨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고, 베어낼 적에는 반드시 마을총회의 결의를 거쳤을 정도로 숲을 다루는 마을의 법도는 지엄했다. 그렇게 숲은 점차 제 모습을 되찾았고, 마을의 횡액도 물러갔다. 팔도의 초목이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속절없이 베어지고 쓰러질 적에도, 마수리 소나무 숲은 주민들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온전했던 것이다. 한국전쟁 중 경찰 별동대의 땔감용으로 숲이 사그라질 위기를 맞았을 때에도 주민들은 “나무를 건드리면 동네가 망한다”며 목숨을 걸고 숲을 지켰다고 한다. 물론 호(戶) 당 5000원씩 갹출한 뇌물의 힘도 컸다.

급격한 마을의 인구 감소로 숲의 영험함을 기억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마수리 소나무 숲의 신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고, 숲 안은 새잎의 숨결로 싱그럽다. 이젠 산림청과 금산군이 숲의 가치를 깨닫고 주민들을 대신해 숲을 가꾸고 있다. ‘상마수 소나무 숲 산림욕장’이라는 새 이름으로 탈바꿈한 마수리 마을의 동구 숲은 이제 지역구를 벗어나 전국구로 발을 내딛고 있다.


■ 칠백의총의 의로운 기운 넘치는 숲길
금산군 금성면처럼 ‘금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이곳 말고도 전국에 여러 곳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자어로 ‘금성(金城)’을 쓰는 다른 곳들과는 달리 이곳은 ‘금성(錦城)’을 쓴다. 이 산에 있는 ‘금성산성(錦城山城)’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 아닐까. ‘비단 금(錦)’이란 글자는 예로부터 크다, 위대하다, 으뜸이다, 신성하다 등의 뜻으로도 사용돼 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요충지였던 이곳에 주변의 여러 성을 거느리는 커다란 ‘성(城)’이 있었다고 보면 앞뒤가 꼭 들어맞지 않을까. 아무튼 이 금성산에 조성된 둘레길이 바로 ‘술래길’이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2012년 우리 마을 녹색길 전국 공모사업’에 선정돼 사업비의 절반인 4억 원을 국비(國費)로 지원받았다고 한다. ‘칠백의총(七百義塜)의 의로운 기운이 넘치는 건강한 숲길’이라는 주제 제안이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어 잡았던 모양이다. 이 술래길은 칠백의총에서 시작해서 사두봉과 금성산의 정상을 거쳐 ‘상마수리 소나무 숲’까지 연결되는데 길이는 대략 8.5Km쯤 된다고 한다.

칠백의총에서 상마수리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술래길에는 ‘금성산성(錦城山城)’이라는 안내판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마한 최후의 성(城)인 금현성(錦峴城)이 이곳 금성산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백제본기’에 “온조왕이 재위 26년(BC 8)에 사냥을 간다는 핑계로 마한을 공략해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원산성(圓山城)과 금현성(錦峴城)만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고 나오는데, 이곳 금성산성(錦城山城)이 당시의 금현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성산성의 ‘금(錦)’이라는 글자의 어원에도 맞는다고 볼 수도 있겠다. ‘크고 위대하다’로 해석해서 근처의 성들을 총괄하는 큰 성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그 정도는 돼야 나라가 멸망한 후까지도 버틸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충남 연기군 전의면 금성산(金城山)에 위치한 금이산성이라는 이병도설과 연기군 전동면의 금성산성이라는 양기석설도 있으니 무엇이 정설인가는 역사적 사실은 차치하고 볼 일이다.

아무튼 평화롭게도 능소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는 모습이다. 이 길은 원래부터 금산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오던 길이었다고 한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하는 꽃동산이 되기 때문이란다. 거기다 칠백의총을 끼고 있어 충절의 고장 금산을 외부에까지 널리 알릴 수 있는데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요인도 있다. 438m밖에 되지 않는 높지 않은 작은 산인지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일반적으로 산행은 대부분 칠백의총에서 시작해 상마수마을의 소나무 숲과 연결되는 2~3시간 코스라고 한다. 아무튼 신흥마을 경로당을 경유해 상마수마을 앞에 있는 정류장에 이르려면 명품 숲인 마을의 푸르른 소나무 숲과 마주하는 일은 필수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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