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사람들의 꿋꿋한 삶이 되살아나는 전통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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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사람들의 꿋꿋한 삶이 되살아나는 전통의 마을
  • 전상진
  • 승인 2010.03.0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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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마을

"온통 잿빛 하늘이다. 바다는 거친 풍랑으로 들썩이며, 역시나 하늘을 닮아 온통 잿빛이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포구에 미친바람은 속절없이 이내 간장 다 녹이듯이 세차게 불어제친다. 고기잡이 나간 아비와 아들은 이 거친 파도 속에서 감감 무소식이고, 무사귀환을 바라는 어미와 딸의 마음은 가늘게 찢어져 내린다. 이윽고 저 멀리 바다에서 소리가 들린다. 정적을 깨치는 뱃고동 울리는 소리며 사람들 아우성치는 소리. 만선이다, 만선! 이번 뱃길도 만선일세, 풍어야! 아비와 아들이 돌아오고, 모두가 돌아오고. 어미와 딸은 기뻐 어깨를 들썩이며 덩실덩실 춤추며 어깨춤을 추는 이웃들의 무리 속으로 한없이 솎아져 둥글게 원무를 만든다."

어디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다. 서해안을 따라가다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전라도 해안가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 한승원 작가나 천승세 작가의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이 이야기 속의 삶을 실제로 사는 사람들이 우리 고장 홍성에도 있다.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마을. 아직도 옛 전통을 이어가며 마을사람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 작은 마을. 지난해 8월부터 한국농어촌공사의 유휴지 9만9000㎡에 대한 사용승인을 얻어 매립한 뒤 임해관광도로 주변에 국화 2만2000여 포기를 심어 국화단지를 만들고 이제는 판매소득을 꿈꾸는 마을. 400여 년째 내려오는 마을당제(풍어제)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마을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치러내며, 옛 어촌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 <수룡동>이다.

수룡동마을은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에 속해 있는 조그만 항·포구마을로 이곳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는 약 4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룡동의 원래 이름은 <선소>라고 했다. 선소는 <배를 매어 놓은 곳>이라고 해 붙은 이름이다. 그러다가 50여년 전에 <수룡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김관진 마을이장.

▲ 이희분 부녀회장.
     
▲ 마을 전경.

▲ 이희분 부녀회장과 회원들.


수룡동은 한때 1종 항구로써 상당히 번창했던 항구였다. 안강망 어선 등을 위시해서 수산업이 상당히 활발했다. 인조빙(압축한 액체 암모니아의 증발열을 이용하여 만든 얼음)이 생기기 전에 생선을 소금에 절여 팔던 시절까지는 상당히 발전했던 항·포구였다. 그러다가 70년대부터 인조빙이 생기면서 소금에 절인 생선보다는 냉동된 생선이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수룡동으로 몰리던 어업권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수룡동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80년대 이후 천수만방조제 사업인 홍보지구 사업으로 인해 안강만 어선이 줄어들고 인천 등 도시해안으로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마을의 항구는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3종항으로 떨어져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직도 수룡동은 고기잡이와 함께 굴 양식 등으로 상당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12월부터 4월까지는 주꾸미, 5, 6월에는 소라·갑오징어·광어·도다리, 8월 이후에는 꽃게, 9월부터는 대하, 한겨울에는 자연산 굴 양식 등 주문과 현장판매를 통해 아직 수산업을 통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금 마을은 50가구(80명, 남 40명․여 40명)가 살고 있으며, 논농사를 짓는 4가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주민들이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소형 어선도 약 20척 정도가 된다. 주로 부부가 함께 어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한다.

아주 작고 이제는 포구 자체도 없어질 운명에 놓여있는 어촌마을 수룡동. 마을사람들은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왔지만 바다가 육지가 되는 현실 앞에서 앞날에 대한 불안감은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바다가 없어지면 상당한 시련이 닥쳐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룡동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오래도록 살 수 있게 하는 힘, 마을사람들을 이끌어가고 있는 정신적인 의지처가 이 작은 어촌마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힘의 원천이 바로 <수룡동당산풍어제(이하 풍어제)>이다.

지난달 28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수룡동에서는 400여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풍어제가 성대하게 펼쳐졌다. 이날 풍어제는 김관은(82) 수룡동당제보존회장(민속문화마을보존회장)과 한만호(64) 수룡동풍어제추진위원장, 수룡동당산풍어제 당주인 김관진(56) 마을이장을 비롯해 마을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을 당집에서 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발전, 뱃길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 종일 열린 이날 풍어제는 오전 마을회관에서 길놀이를 시작으로 산신제와 부정풀이에 이어 당집에 모든 마을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을 축원하는 당제를 올렸다. 오후에는 배를 가진 선주들과 주민들은 복잔과 길지(吉紙)를 받아 용신에게 제를 올리는 용왕제와 뱃고사를 지내 뱃길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했다. 저녁에는 마을에 들어오는 액운을 미리 막기 위한 거리굿을 지내고 바다 쪽으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는다는 사살막이(퇴식)로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 마을 전경.

▲ 수룡동마을 앞 바다.

▲ 마을 앞 임해관광도로.

▲ 수룡동마을 어르신들.

▲ 마을회관 겸 노인정.

▲ 수룡동 국화단지 조성.

수룡동당산풍어제는 마을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일종의 기원제로서, 400여년 전부터 전승되다가 6.25 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이주해 온 어민들이 정착하면서 황해도 형식의 풍어제가 혼합, 발전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당제(풍어제)에서 모시는 당각시(주신, 서해의 용왕신)·당할아버지·당할머니·산신·지신 등 오당(五堂)과 그에 대한 제의는 서해안 여러 섬 및 해안지방 당제의 전형적인 한 유형으로서 이 지역 일대의 당제가 지니는 보편성을 강하게 띠고 있으면서도, 홍성 서부 해안지역 나름의 지역특성을 원형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역적, 역사적 특성이 살아 있는 서해안 당제의 모습을 원형대로 간직한 풍어제로서 역사적, 민속학적 가치가 크다는 점과 196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당제에 추렴한 선주와 마을주민들의 명단이나 준비사항, 행사내용 등에 관한 문헌․녹음․사진자료 등이 잘 정리, 소장돼 있어 약 40여년의 당제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지난 2003년 10월 충남도무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됐다. 최근 충남도에서는 수룡동당산풍어제를 비롯해 도내 무형문화재 5곳을 선정해 책으로 발간한다는 계획이다.

11년째 수룡동당산풍어제 당주를 맡고 있는 김관진 이장은 "제의 비용은 충남도와 홍성군에서 460만원이 지원되고 마을주민들 중 배를 가진 주민은 3만원, 배가 없는 주민은 2만원씩 추렴해 비용을 충당한다"며 "마을주민들의 단결과 화합, 문화유산의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풍어제를 마을에서 계속 이어나가야 하지만 마을에서 단독으로 큰 행사를 치르기에 벅차다. 이제 서부면이나 홍성군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협조가 있어야만 풍어제의 맥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김 이장은 "홀로 사는 노인어르신 가구가 10가구나 된다. 자녀들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대상자에서도 빠져 있다. 노인어르신들이 마늘까기나 굴까기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그것마저도 여의치 못하다"며 안타까움을 담아낸다.

김 이장은 관광마을 수룡동을 알리는 홍보와 낡고 오래된 가옥 정비 사업이 필요하고 국화재배를 통한 소득증대, 유료낚시터 건립을 통한 팬션, 민물매운탕집 마을 입주 등이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라고 전한다.

수룡동마을은 마을부녀회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마을부녀회는 이희분(65) 회장을 중심으로 40여명의 회원들이 당산풍어제 음식부터 마을 대소사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마을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워낙 부녀회 회원들이 열심히 마을일을 하다 보니 반장 3명도 모두 부녀회 회원들로 채웠다. 그리고 김기남(79) 노인회장을 중심으로 뭉쳐있는 노인회도 마을을 위해 단합이 잘 된다고 전한다.

바닷가 사람들의 강인하고 꿋꿋한 삶이 있는 곳, 그 곳에서 온갖 폭풍과 사나운 파도를 견디며 전통의 변화 속에서도 마을을 지켜오며 만선의 꿈을 꾸고 있는 수룡동 마을주민들. <마을화합이 잘되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라는 김관진 이장의 말처럼 수룡동마을은 오늘도 옛 전통 속에 새로운 전통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마을로 거듭거듭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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