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洪州)' 지명역사 1000년, "토종지명 다시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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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洪州)' 지명역사 1000년, "토종지명 다시 찾자"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0.04.2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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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관우의 홍성비전 희망수첩]

최근 홍주(洪州)라는 지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의 촉발은 충남도가 홍성군과 예산군에 충남도청이전 신도시 명칭 제정을 위해 주민들의 선호도를 조사하라고 하면서다.

예산군이 <내포시>를 선호한 가운데 홍성군은 예산군과의 갈등을 우려해 <홍주시>라는 명칭을 가장 선호하는데도 불구하고 <내포시>로 방향을 트는 분위기가 읽혀지면서다. 문제는 홍성군이나 예산군이 충남도의 촉박한 일정 독촉으로 인해 주민들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홍성군은 독자적인 여론의 전달보다는 예산군을 의식하면서 정체성과 상징성, 역사성 등을 모두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홍성과 예산군민뿐만 아니라 충남도민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여 신도시의 명칭을 제정해야 함에도 형식적인 행정수순을 밟는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홍성과 예산의 경우 고위공무원이나 읍·면장, 일부 이장 등 지도급 인사 50~60명의 제한적이고 한정적인 인물을 대상으로 겉핥기식 여론수렴을 보고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주민들의 여론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올바른 주민들의 여론이 반영돼 명칭이 정해져야 군민의 자존심과 긍지를 지키는 일이며, 군민을 위한 일이고, 도청소재지로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홍성군수 후보자들도 <1000년 홍주>의 부활과 지명 및 브랜드 명칭은 물론 홍성군의 명칭 변경까지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충남도청신도시 명칭 제정과 행정구역 통합을 앞두고 <홍주>라는 지명은 1000년의 역사성과 상징성만큼이나 주민들의 뜨거운 관심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 시발은 지난 2008년 홍성군이 <홍주지명 1000년>과 관련한 기념사업 추진을 계획했다가 무산되면서 예견됐던 일이다. 당시 홍성군청 조환경 기획감사실장이 <홍주지명 1000년>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 2억여 원을 확보하려 했으나 홍성군의회에서 전액삭감하면서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홍주>라는 지명과 관련한 선점권을 모두 상실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제라도 새로 선출될 군수를 비롯한 지역의 지도자들과 주민들 모두가 <홍주>라는 지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2012년, <홍주>라는 지명이 생긴지 1000년

지난 2006년 홍성으로 충남도청이전이 확정된 이후 현재 도청이전 신도시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다. 계획대로 건설공사가 진행된다면 2012년에는 충남도청 청사가 완공돼 새 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긴 이후 실로 80년만의 일이다. 이 시점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은 2012년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는 해가 바로 홍성의 옛 지명인 <홍주>라는 지명이 생긴지 1000년이 된다는 점이다. 1000년의 역사란 누가 봐도 대단한 역사이며, 이를 후손들이 기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뿌리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로 기념사업의 필요성을 수차에 걸쳐 제시했다. 다시 한 번 홍성군과 지역사회단체 등에 <홍주지명 1000년> 기념사업의 필요성을 재차 촉구한다. 이는 충남도청이전 신도시의 명칭 제정과 관련해서도 홍주지명 1000년의 역사성과 상징성 등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며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지금의 홍성지역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감계비리국이 있던 곳으로써 백제시대에는 고막부리 현이 있었으나, 좀 더 자세히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고려 왕건은 934년 운주(지금의 홍성)전투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충남의 서북부지역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 여세를 몰아 936년 경북 선산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후삼국을 통일한다. 이후 고려 성종 14년(995) 전국을 재편성 할 때 이곳 홍성지역을 운주라 하고, 현종 3년(1012)개편 때 <홍주(洪州)>로 고쳐 부르기 시작하여 조선조까지 같은 지명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홍주군은 <결성현(結城縣, 지금의 결성면)>의 11개 면을 병합하면서 홍주군의 <홍(洪)>자와 결성현의 <성(城)>자를 따서 <홍성군(洪城郡)>이란 새 이름을 갖게 된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결국 <홍성(洪城)>이란 지명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명된 이름인 것이다. 충청도에서 충청도 4목·4부(홍주, 공주, 충주, 청주)중에서 충남의 공주, 충북의 충주와 청주라는 지명은 그대로 살아있으나 유일하게 <홍주>라는 이름만 잃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런 연유로 <홍주>라는 본래의 이름을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이유다. 뿐만 아니라 도청신도시 명칭제정 및 행정구역 통합과 관련해서라도 명칭회복 운동을 반드시 펼쳐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홍성에는 <홍주>라는 지명의 흔적이 살아서 숨 쉬고 있다. 홍주성, 홍주아문을 비롯하여 홍주초등학교, 홍주중·고등학교, 홍주문화회관, 홍주체육문화센터, 홍주종합경기장 등 각종 기관단체의 명칭뿐만 아니라 상호, 간판 등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삶 속에서 <홍성>이란 일제가 강제로 만들어준 지명 속에서도 오롯이 <홍주>라는 토종 지명이 살아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1012년부터 지금까지 <홍주>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사용되고 있는 지명이 공교롭게도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해 오는 2012년에는 1000년을 맞이한다. 이렇듯 지명의 역사가 1000년을 올곧이 이어 오는 지역도 드물다. 홍주 1000년을 맞이하면서 <홍주>이름 되찾기 운동 등을 펼치는 등 대대적인 기념행사 등으로 잃어버린 홍주의 명예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고려사 등 각종사료와 홍양사, 홍성군지 등에 기록된 역사를 중심으로 <홍주지명 1000년>을 맞는 의미를 새기면서 홍주(홍성)역사의 정체성과 정서적 통합 및 충남도청 홍성이전에 맞춰 <홍주지명 1000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해 도청소재지로서의 홍주 또는 홍성의 위상제고 및 도시브랜드 가치 등을 높여야 할 것이다.

현종 3년(1012) '홍주(洪州)' 지명 처음 사용

<홍주(洪州) 지명역사 1000년>의 기록은 1969년 8월 15일에 발행된 <홍양사(洪陽史) 연혁편 군명>에 "성종 14년(1995)을미(乙未)에 도단련사를 두었고 현종 3년(1012) 임자(壬子)에는 지주사를 두고 홍주(洪州)로 명칭을 고쳤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1980년 12월 15일에 처음 발행된 <홍성군지>의 제2편 역사 서(緖)에서도 홍성지명의 역사적 유래의 <고려시대>의 왕 또는 연도에 <성종14년(995)>의 명칭에는 "운주(運州) 안평(安平) 해풍(海豊) 홍양(洪陽)"이라 기록했고, 설명에는 도단련사(都團鍊使)를 둔 것으로 돼 있다. 또 "홍양(홍주일부)현 신설관할. 원군(遠軍) 3군 11현 관할)"이라 기록돼 있다. 따라서 이 기록대로라면 995~1012년 사이에 이미 <홍주(洪州)>라는 지명이 사용됐거나 불리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명칭을 <홍주(洪州)>로 사용한 왕은 <현종 3년(1012)>으로 명시돼 있으며, 설명에는 "현종 9년(1018) 주지사(州知事) 두고, 고구(高丘, 喬丘)현 여양(驪陽, 黎陽) 흥양(興陽)현 통합 관할함"이라고 기록돼 있다. <현종 3년(1012)>부터 정식으로 <홍주(洪州)>라는 지명이 사용된 것으로 명시하지만 기록에 의한다면 이보다 앞서 <홍주(洪州)>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이 가능해 진다. 조선시대 세종 시에는 홍주진(鎭)을 설치 세조 시까지 계속되다가 영조시대 폐지했다. 태종 13년 결성현을 설치했고, 현종 시에 홍양(洪陽)현을 다시 진(鎭)으로 승격했다. 고종 32년(1895)에는 <홍주부(洪州府)>로 충남을 공주부와 홍주부 둘로 나누고 홍주부 밑에 22개 군이 있었다. 이후 광무 원년(1897)에는 홍주군(郡)으로 이어져 오다가 일제식민통치기인 1914년 총독부령 111호에 의거 홍주군과 결성군이 합쳐지면서 󰡐홍성군(洪城郡)󰡑으로 명칭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고려사>에도 "지방통치제도가 정비되면서 홍성지역에는 성종 14년(995년) 운주에 도단련사를 파견한 이래, 현종 3년(1012년)에는 도단련사를 폐지하고 지주사를 두었으며, 홍주로 개칭한 뒤 양광도에 배속시키면서 3군 11현을 관할하도록 했다"고 기록돼 있어 <홍주(洪州)>라는 지명 사용 기록이 <홍양사>나 <홍성군지>등의 기록과도 일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명 중에서 1000년의 역사를 가진 곳도 드물다. 홍주지명 1000년의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이 갖는 가치를 지역주민들과 지역발전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순천시, 올해 지명 700년 기념사업 본격 추진

"700년 동안 우리 고장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온 것도 역사적으로 평가할만합니다." 전남의 순천(順天)이란 지명이 올해(2010년)로 만 700년이 된다. 순천시에 따르면 이 지역은 고려 충선왕 2년인 1310년 순천부(順天府)란 지명이 붙여진 이후 현재의 순천시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라 순천시는 <순천 지명 700년 역사>를 맞이하는 올해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는 곳이다. 홍주역사에 비하면 300년이 짧지만 의식의 평가는 다르다.

순천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700년 동안 이어진 지명이 그리 많지 않다"며 "순천시의 정체성과 시민의 정서적 통합을 유도할 수 있는 기념사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자로 "하늘의 순리에 따른다"는 뜻을 지닌 순천시의 연혁을 보면, 통일신라 경덕왕 16년인 757년 승평군이라고 처음 호명된 후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 승주군으로, 조선 고종 32년인 1895년 순천군으로 각각 개칭됐고, 1949년 순천시로 승격됐다. 순천시는 지난 2008년 5월 <순천지명 70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부시장을 추진위원장으로 대학교수 등 24명으로 선정된 '순천지명 70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구성, 운영 규정'등을 의결해 기념사업을 추진해 왔다. 순천시는 지난 2007년 응모작을 심사해 기념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실행했고, 이 사업이 지역의 정체성 확립은 물론 시민통합과 자긍심 고취, 지역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순천지명 700년 기념사업은 순천지명 최초 사용 700년이 되는 올해 역사성과 상징성에 맞는 기념사업을 발굴, 시의 정체성과 시민의 정신적 통합을 유도하고 시민들의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성에서도 <홍주지명역사 1000년>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일이다. 새 충남도청 소재지 홍성(홍주)의 정체성과 역사의식, 화합을 통한 자긍심과 지역발전을 위한 희망을 제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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