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봉 정상엔 세 마리 용을 태운 세 마리 거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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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 정상엔 세 마리 용을 태운 세 마리 거북이 있다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홍성고 20회)
  • 승인 2010.07.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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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10구간

최근에는 주 5일제 근무, 공무원들의 연가사용, 건강 지키기 등 수많은 갖가지 사연을 안고 휴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삼삼오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까닭이다. 옛 사람들은 산과 강이 서로를 넘보지 않는다고 여겼다. 비록 높은 산이 이웃해 있어도 사이에 물이 있으면 산줄기는 돌아갔고, 평야에서도 산맥이 흐르면 물줄기는 물러선다고 했다. 백두대간은 그렇게 산과 물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달린다. 특히 산꾼들에게 백두대간의 의미는 속이 더 깊다. 백두대간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민중의 한이 서린 지리산까지 거침없이 뻗어 내린 산줄기다. 금강산을 넘고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과 태백산, 속리산을 이어 달린다. 그 힘이 하도 세차고 맑아 한반도를 받치고도 남는다.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에 닿아서도 숨가쁨을 모른다. 그 장엄한 달리기에서 이 땅의 숱한 물줄기를 낳고, 평야를 길러낸다. 백두대간은 곧 이 땅이며 생명이다.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홍성고 20회)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한 산행기를 연재,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0년 6월 19일~20일
구 간 : 부황령-삼도봉-삼마골재-밀목재-화주봉-우두령
도상거리 : 19.25km
산행시간 : 9시간 30분 소요
 



잠실역에 내리니 비가 내린다.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고속도로를 달린다. 대전을 지나면서 비는 멎었고 간간이 구름사이로 별이 보인다.

03시 10분 부황령에 도착하여 준비를 마치고 03시 30분 백수리봉을 향하여 출발한다. 출발이 어렵지 막상 마루금에 접어들면 출발전에 가졌던 두려움, 긴장은 말끔히 가시고 나는 다시 종주 본능에 빠져든다. 이름모를 산새의 지저귐이 귓전에 맴돌고 적당히 땀이 밸 때쯤 어슴푸레 날이 새고 이내 백수리봉(1034m) 정상이다. 안개 속으로 솟아오른 여명을 잠시 보는 듯 했는데 그도 잠깐, 이내 안개가 자욱해지며 방금까지 여명과 함께 보여주던 삼도봉으로 향하는 능선이 안개로 사라진다.

04시 40분 백수리봉을 출발하여 산길을 한참 더듬어 땀을 몇줄금 흘리면 드디어 삼도봉(초점산, 1176m). 07시 20분에 오른다. 정상에 서면 누구나 한 바퀴 돌면서 주변 풍광을 한눈에 담는다. 동쪽은 경상도요 서남쪽은 전라도, 북쪽은 충청도다, 삼도에서 달려온 산줄기는 첩첩이 이어져 장엄한 산국을 이루고 있다. 삼도봉이란 이름의 유래도 조선조 태종 때 팔도로 나눌 때 바로 이 봉우리에 충청, 경상, 전라의 삼도가 나뉜다고 해서 지어졌다.

 

 

 

 


백두대간 분수령엔 삼도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봉우리가 여럿 솟아 있다. 우선 화개재와 임걸령 사이의 지리산 삼도봉(1490m)은 전남 구례, 경남 하동, 전북의 남원의 분기점이다. 두 번째 소사고개와 대덕산 사이에 있는 삼도봉(1250m)은 전북 무주, 경북 김천, 경남 거창의 영역이 만나는 꼭지점이다. 초점산이라고 한다. 세 번째가 민주지산 자락에 솟아 충북 영동, 경북 김천 전북 무주가 하나로 만나는 삼도봉이다. 충청, 경상, 전라로 이해한다면 이곳이 실질적인 삼도봉이라 볼 수 있다. 이미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불렸으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원조 삼도봉󰡑> 셈이다.

현재 정상엔 세 마리의 용을 태운 세 마리의 거북이 서 있다. 이름하여 <삼도화합탑>이다. 삼도의 삼군 주민들은 매년 10월 10일에 이곳에 모여 삼도의 문화교류와 지역 감정해소를 위해서 산신제, 삼도풍물놀이 등 조촐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어찌 삼도만의 화합만 바라겠는가. 한반도의 대화합을 소망하게 되는 삼도봉이다. 삼도봉 분수령에서 갈려져 서북쪽의 석기봉(1200m) 민주지산(1242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비록 백두대간 분수령은 아니지만 장쾌함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민주지산은 수십 명의 젊은 장병들이 악천후로 산화한 곳이기도 하다.

 

 

 

 

 

 

석기봉 정상에서 대불리 마을의 서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반긴다. 머리위에 두 개의 머리가 더 얹혀 있어 탑을 쌓은듯하다. 흔히 <삼두마애불>이라 불린다. 한 몸에 머리 셋인 <일체삼두>의 마애불과 한 봉우리에서 삼도가 만나는 삼도봉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혹 마애삼두불은 불심 깊은 석공이 삼도의 화합을 빌기 위해 새긴 것은 아닐까? 그런데 무속인들은 이 불상이 칠성, 용왕, 산신을 표현한 삼신상이라 섬기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08시 화주봉을 향해 출발한다. 백두대간 분수령은 삼도봉에서 방향을 동북쪽으로 틀어 영동과 김천고을을 양쪽에 거느리고 뻗어간다. 삼도봉에서 말목재로 가는 길은 오붓한 오솔길, 오른쪽은 김천의 오지인 해인 고을이요, 왼쪽은 영동의 오지로서 상촌주민들의 식수원인 물한계곡이다. 금강에 합류하는 물한계곡은 풍치는 물론 물맛도 첫손에 꼽힌다. 물한계곡은 삼도봉에서 갈라져 나온 백두대간의 지맥인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 등 1000m가 넘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골이 깊고 물이 맑을 수밖에 없다. 물한계곡의 숲, 그늘은 대낮에도 해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짙으며 계곡물도 차디차다. 상류로 오를수록 물줄기가 굽이치는 바위들의 모양이 기묘하며, 구시용소, 옥소, 의용암 폭포, 음주암 폭포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특히 기우제소라고도 하는 옥소는 통일신라 때 황간 현감이 기우제를 올리던 곳으로 신성시 여기고 있다. 08시 30분 삼마골재 안부사거리에 도착한다. 우측은 경북 김천으로 빠지는 길이고 좌측은 미나미골로 하산하여 충북 영동으로 빠지는 길이다. 대간길은 1124봉을 지나 영화 <집으로>의 배경이 된 상촌면 물한리 계곡과 부황면 대야리를 잇는 오래된 고개인 밀목재에 도착한다.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이 길은 숲은 울창해지고 나무들은 뒤엉켜 길을 막아서곤 한다. 앞을 볼 수 없다.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힘이 든다.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때리곤 한다. 특히 키가 높이 자란 쇠물푸레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딱~!"하며 때릴 때는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열심히 길을 헤치며 나아간다. 1175봉인 바위지대에 오른다. 급경사 바위지대를 조심조심 내려오면 오늘의 최고봉인 화주봉(석고산, 1207m)에 11시 50분에 도착한다. 멀리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어 지나지 못한 민주지산과 석기봉이 보인다. 지나온 삼도봉도 보였다. 저 멀리 구미에 금오산도 아른거린다. 참으로 많이도 걸어 왔구나. 산행을 하다보면 적당하지 않은 용어들이 들어 있다. 산을 오르는 것을 '친다'라고 한다든지, '산을 친다'라는 말은 산으로 들어간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오르는 것'과 '들어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오르는 것'은 산을 내가 오르는 것이다. 산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다. 그러나 '들어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산이 주인인 것이다. 알다시피 산의 주인은 산이니 들어가는 것이 맞다. 우리는 손님일 뿐이니 산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는 것이다. 고로 산이 나를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대장, 총대장 이라는 호칭도 바꿨으면 좋겠다. 말뜻으로는 그다지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지만 너무 권위적으로 느껴진다. 산을 사랑하고 산으로부터 배우려는 사람들의 문화가 너무 권위적인 것 같아서 안타깝다. 대원들과 막걸리 한잔으로 기력을 돋우고 백두대간만큼이나 듬직한 이강희님의 기념사진을 찍고 우두령을 향해 출발한다. 급한 내리막도 오르막도 없는 완만한 능선을 걷노라니 서산대사의 유명한 한시가 생각난다.

눈을 밟으며 들판길 걸어 갈 때는
잘대로 삐뚤빼뚤 가지 말지니
오늘 내가 밝고 간 길은
나중에 뒷사람이 뒤따라올 길이니라


어느덧 901번 지방 국도가 고갯마루인 우두령(질매재)에 13시 도착한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경북 김천시 구성면의 경계이다. 질매라는 이름은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하여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얹은 안장인 길마의 사투리다. 우두령 고개는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김면이 의병 2000명을 우치현(우두령)에 매복시켜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훗날 전쟁사가는 우두령 전투가 험한 산세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탄력적인 전법을 활용하여 왜군이 전라도로 침입하는 것을 막았다고 평가했다.

우두령 고개에서 후미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원한 수박화채에 피곤함을 풀어본다. "인간의 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연이 아무리 달라져도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산에서 자연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 하며, 이를 호흡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존재를 다시 깨닫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 이 말은 유명한 철학자나 수필가가 아닌 냉철한 법을 집행하는 양승택 대법관 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말이다. 수십 년간 산에 다니면서 터득한 삶의 진리이며 교훈이다. 미약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자연에서 배우는 겸허한 자세, 즉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산에 다니면서 자연을 배우고, 인생의 호연지기를 기르며 삶의 방향을 세웠던 양승택 대법관의 산에 대한 철학으로 이번 대간길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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