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가 몸을 비틀어 황악산 동쪽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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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가 몸을 비틀어 황악산 동쪽 품에 안겼다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홍성고 20회)
  • 승인 2010.07.1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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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11구간 ①

최근에는 주 5일제 근무, 공무원들의 연가사용, 건강 지키기 등 수많은 갖가지 사연을 안고 휴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삼삼오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까닭이다. 옛 사람들은 산과 강이 서로를 넘보지 않는다고 여겼다. 비록 높은 산이 이웃해 있어도 사이에 물이 있으면 산줄기는 돌아갔고, 평야에서도 산맥이 흐르면 물줄기는 물러선다고 했다. 백두대간은 그렇게 산과 물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달린다. 특히 산꾼들에게 백두대간의 의미는 속이 더 깊다. 백두대간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민중의 한이 서린 지리산까지 거침없이 뻗어 내린 산줄기다. 금강산을 넘고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과 태백산, 속리산을 이어 달린다. 그 힘이 하도 세차고 맑아 한반도를 받치고도 남는다.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에 닿아서도 숨가쁨을 모른다. 그 장엄한 달리기에서 이 땅의 숱한 물줄기를 낳고, 평야를 길러낸다. 백두대간은 곧 이 땅이며 생명이다.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홍성고 20회)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한 산행기를 연재,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0년 7월 3일~4일
구 간 : 우두령-여정봉-바람재-황악산-백운봉-괘방령-눌의산-추풍령
도상거리 : 23.74km
산행시간 : 10시간 소요
 



기상청에서는 전국이 장마권에 들 것이라고 한다. 비맞을 각오를 단단히 한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는다. 23시 20분 잠실을 출발한 버스가 옥천휴게소에서 잠시 머물고, 02시 30분 우두령에 도착한다.

간간히 가랑비가 내린다. 우의를 입고 03시 여정봉을 향해 오늘도 힘차게 출발한다. 편안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 60여 분만에 삼성산에 오른다.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의 경계를 이루는 삼성산.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싸리나무와 산철쭉 군락지도 만나고, 은방울꽃과 애기나리꽃과 족두리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물을 마시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이내 여정봉(1030m)에 닿는다. 너른 임도가 능선을 갉으며 파고들어와 바람재(810m)로 뚝 떨어져 내린다. 삼도봉에서 황악산을 잇는 바람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을씨년스런 군사시설이 있던 곳인데, 군사시설이 철거된 뒤 40년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잡목없이 탁 트이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상당히 널찍한 고원이다. 후미가 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목을 축인다. 글씨마져 바람에 밀린 듯 오른편으로 눕혀 쓴 <바람재>라는 누르스름한 표지석이 귀엽고 재미있게 보였다. 바람재에서 새들이 우짓는 소리를 들으며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상촌고을이 발아래다.

분수령 가까이 붙어있는 <지통마>는 2002년 개봉해 국민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던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를 촬영했다는 마을이다. 외할머니 역으로 관객들에게 잔잔한 눈물을 뿌리게 한 김을분 할머니가 살던 굴피집은 황악산 이마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가 손자를 버스에 태워보내고 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혼자서 걸어오는 장면을 잠시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황악산(1111m) 정상이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으로 불렀다고 하며, 지도상에는 흔히 그렇게 표시되어 있으나, 직지사의 현판 및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다. 주봉인 비로봉과 함께 백운봉, 신성봉, 운수봉이 치솟아 있으며,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한 편으로 암봉이나 절벽 등이 없고 산 전체가 수목으로 울창하다.

특히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로부터 펼쳐지는 능여계곡은 대표적인 계곡으로 봄철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볼만하고, 가을 단풍, 겨울 설화로 아름답다. 그밖에 내원계곡과 운수계곡의 경관도 뛰어나다.

산아래 양편으로 내려간 산줄기 가운데로 직지사가 몸을 비틀어 황악산 동쪽 품에 안겨 있다. 직시사는 418년(눌지왕 20년)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거의 불에 탄 후 400년 가까이 폐허로 있다가 1970년대 재건하면서 대찰의 면모를 되찾게 되었다.

아도화상이 손가락으로 절터를 가르켜 절을 짓게 함으로써 직지사가 되었다거나, 능여대사가 절을 확장하면서 손으로 측량한데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전하지만, 직지(直指)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즉 '사람이 갖고 있는 참된 마음을 똑바로 가리켜 밝게 되면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마음 속의 부처를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우리가 백두대간을 걷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욕계, 색계, 무색계와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 인간도, 천상도의 삼계육도를 수레바퀴처럼 도는 삶이 끝없는 미혹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으려는 구도의 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직지사는 깊은 유래만큼 역사적 사연도 많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재 견훤과의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포위되었다가 부하장수 신승겸의 도움으로 탈출해 이곳으로 피했고, 임진왜란의 영웅인 사명대사가 출가한 곳이다. 직지사에서 유명한 건물은 비로전이다. 임진왜란 당시 화마를 피한 유일한 건물로, 1000개의 불상이 조성돼 있다고 해서 천불전으로도 불린다.

고려 초 경삼대사가 경주 옥돌로 16년간 빚었다는 이 불상들은 모두 표정이 다르다. 불상 중에는 알몸인 불상이 하나 있는데 민간에 법당에 들어서자마자 이 불상을 발견하면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는 재미있는 속설이 전해진다. 이외에도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319호), 3층석탑(보물 제606호), 비로전 앞 3층석탑(보물 제 607호) 등은 돌을 다루는 기법이 빼어나다. 대웅전삼존불탱화(보물 제670호) 3폭도 눈길을 끈다. 경내 한 쪽에 자리한 명부전엔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비로봉에서 내려서서 바로 아래 너른 풀밭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산행을 통해서 얻은 경험이 바로 식사를 가볍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과 한 쪽을 곁들이니 아주 제격이다.

북으로 오르며 황악산에서 한껏 솟구쳐 올라 직지사를 품었던 백두대간은 백운봉과 운수봉을 지나면서 급격히 고도를 낮춘다.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여시골산을 내려서면 977번 도로가 지나는 괘방령(궤방령)에 09시 경 도착한다. 과거길에 나선 선비들은 모두 추풍령을 마다하고 한사코 괘방령을 넘었다. 과거길에 '방에 붙는다'는 말은 얼마나 반가운가. 나중에는 인근에 부임하는 관리까지도 관직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하여 추풍령을 피하고 괘방령을 넘었다고 한다.

황간출신의 의병장 박이룡 장군은 퇴각하는 왜군을 맞아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승전보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를 보러가던 조선선비들의 조바심을 달래주었던 괘방령을 벗어나 백두대간 산길로 들어서면 가성산, 장군봉, 눌의산(743.3m)에 오른다. 추풍령 뒤쪽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알 수 있듯이 조망이 뛰어나다. 그러나 대간길 내내 안개에다 비마저 오다보니 아쉬울 뿐이다.

말씨는 친절해도 더듬거린다는 뜻의 눌의산을 비를 맞으며 내려오면 그 유명한 추풍령(221m)이다.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며 예로부터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지금도 경부선 철도의 추풍령역이 있고, 4번국도가 있고, 경부고속도로의 중간점으로 추풍령휴게소가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장지현이 의병 2000여 명을 이끌고 왜군 2만명을 맞아 분전 끝에 물리쳤고(1차전투), 다시 밀려온 4만명의 왜군에게 패하여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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