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천 흐르는 백야 김좌진 장군이 태어난 곳
꽃동산 함께 가꾸며 이웃사랑 실천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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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천 흐르는 백야 김좌진 장군이 태어난 곳
꽃동산 함께 가꾸며 이웃사랑 실천하는 마을
  • 이은성 기자
  • 승인 2010.09.03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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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산면 행산리-1 신기마을



갈산면 행산리 신기마을은 갈산면 소재지에서 남쪽의 결성면으로 연결된 도로를 따라 약 1km 정도 떨어진곳에 자리잡고 있다. 행촌과 삼불산의 이름을 따서 행산리라 불렸으며 신기마을의 지명유래는 우리말로 새터라고 한다. 새터란 오래전 가시덤불과 칡넝쿨밖에 없었던 곳을 새로 닦아 만든 자리라는 의미로 전해져왔다. 신기마을은 용이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이름붙여진 와룡천이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흘러가면서 해발 175m 내외의 삼불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하단부에 위치했다. 삼불산은 봉우리 3개에 암자가 하나 있어 이름붙여진 산으로 현재 삼불암은 폐쇄되어 운영되지 않고 있다. 더불어 철마산의 줄기가 서쪽으로 퍼져 내려와 낮은 구릉을 형성해 작은 농경지와 함께 현재의 신기마을이 형성됐다. 예전에는 마을의 농경지 대부분이 와룡천보다 지대가 낮아 범람에 의한 수해를 수시로 입었는데, 실제 풍수지리상으로 신기마을은 배의 형국이라 하여 농사를 지으면 백석을 하지 못한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우물


또한 마을에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이 뚫려 결국은 배가 침몰하는 형상이라는 전설이 내려와 오랫동안 우물을 파지 않고 자연샘을 이용해 살아왔다. 이후 1970년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우물을 파기 시작했고 현재는 마을 상수도를 사용함으로써 우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김좌진 장군 생가


"백야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 와룡천에서 무예를 닦던 신기마을"

아울러 오래전부터 신기마을은 장군이 태어날 형국이라 했는데 백야 김좌진 장군이 1889년 태어났다. 행산교를 건너 마을입구에 다다르면 역사의 산 교육장과 관광객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김좌진 장군 생가지와 사당 사이에 백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김좌진장군은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분으로 홍성출신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다. 현재 백야공원과 김좌진장군 생가는 지역주민들의 휴식공간과 관광객등 역사문화 체험학습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데 백야공원 내에는 김좌진 장군의 치적을 적은 비가 세워져 있다.
장군비


장군비는 1949년 대한청년단이 성금을 모금해 홍성읍 오관리 남산공원에 건립했으나 백야공원이 조성되면서 2008년 김좌진장군 생가가 있는 신기마을로 옮겨왔고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로 지정됐다.

백야 김좌진장군 생가는 1992년 국비와 도비를 지원받아 성역화 사업으로 터만 남아 있던 김좌진 장군의 생가를 복원하고 백야사를 지었다.
백야사


백야사의 재호는 백야 김좌진 장군이 와룡천에서 무예를 연마했다는 의미를 부각시켜 와룡제라 지어졌고 2004년부터 백야 김좌진 장군 전승기념 백야축제가 열리는 10월 25일에 제향을 모시고 있다. 김좌진 장군의 생가는 1989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됐으며 생가 오른쪽에는 백야 김좌진장군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한 백야 김좌진 장군 전시관도 조성되어 있다.
전시관


생가와 전시관, 백야사등을 포함한 백야공원은 역사적 사실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지로 충절의 고장인 홍성을 상징할 수 있는 신기마을의 대표적인 문화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꽃동산


"아이들이 뛰놀고 어른들이 제사 올리던 꽃동산"

김창호 이장
신기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옛 수호당 자리에 꽃동산이라 이름붙여진 쉼터가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는 정월대보름날 마을을 지키고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오던 곳으로 70년대 새마을사업이 진행되면서 미신을 믿지 말라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수호제가 없어졌다. 김창호(58) 신기마을 이장은 "원절샘이라 하여 마을 옹달샘이 있었는데 한겨울에도 한달동안 냉수목욕하여 부정함을 씻고 제를 지내왔다"며 "현재는 수호제가 없어진 수호당터를 마을주민들이 다같이 꽃으로 가꾸고 나무를 심어 꽃동산이라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꽃동산에는 마을 유래비가 세워져 있으며 약 500여년으로 추정되는 마을보호수 팽나무가 무더운 햇빛을 가려주어 여름에는 마을최고의 휴식터로 자리잡고 있다. 꽃동산 앞에는 예전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만들어져 있는데 현재는 아이들이 없어 아무도 이용하지 않고 쓸쓸히 남겨져 있다.

신기마을이 가장 번창했을 때는 70년대로 65가구가 살아었고 현재는 60가구, 약 150여명이 살고 있다. 마을 앞을 지나는 와룡천이 수시로 범람해 마을 주민들은 상습수해지역으로 큰 피해를 입고 살았으나 1973년부터 3년동안 진행된 마을주민들이 다같이 힘을 모아 와룡천 제방이 정비되고 상습 수해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유래비


예전에는 갈산면소재지에서 신기마을로 진입하려면 갈산천의 뚝길을 통해 와룡천과 갈산천의 합수부와 쪽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현재 행산교가 건설되면서 마을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2003년 백야교가 세워져 신기마을로의 진입로가 2곳으로 늘어나 마을의 편의를 도모하게 되었다. 마을의 주요 소득원은 전통적으로 농업이며 벼농사와 밭농사에 의지하고 있고 최근에는 일부 가구에서 축산업으로 한우를 키우고 있다.

어른 공경과 주민단합으로 이웃사랑실천 시범마을 선정된 신기마을

김영자 노인회장
신기마을은 김영자(69) 노인회장이 경노회를 이끌고 있다. 김영자 노인회장은 여성노인회장으로써 부녀회와 이장과 함께 마을의 친목활동 및 대소사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신기마을은 해마다 겨울이 되며 다음해 4월까지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다같이 모여 점심시간을 공동취사로 보내는데 독거노인분들을 위한 이웃사랑으로 마을주민들이 뜻을 모아 시작하게 됐다. 공동취사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쌀과 기부금을 모아 밥을 지어 먹고 김장을 함께 담그며 마을회관에서 이루어진다. 객지에 있는 자녀들도 마을을 위한 기부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등 마을의 화합과 결속력을 다져주어 이웃사랑실천시범마을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공동취사를 이끌며 여성노인회장으로써 남자부럽지 않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김영자 노인회장은 "마을주민들 모두 화목하고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지내자"며 "바쁜와중에도 어른 들 잘모시고 마을대소사에 수고하며 많은 도움을 주는 이장과 부녀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와룡천이 더욱 깨끗하고 아름다워지길"

마을의 숙원사업으로는 마을의 생활하수를 정화할 수 있는 정화시설을 갖추고 싶은 바람이 있다. 구하수도 같은 경우에 생활하수로 인해 굉장히 지저분해져있다.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정화시설을 갖추고 흙으로된 용수로 또한 재정비되어 더욱 아름답고 깨끗해진 와룡천이 마을과 나아가 갈산이 아름다워지길 주민들이 바라고있다. 한편 얼마전 주민들과 함께 삼불산으로 벌초를 다녀온 김창호 마을이장은 "무더운 날씨에 삼불산 간벌사업으로 군에서 고생하고 계신다"며 "베어진 나무들이 현재 너무 정리가 안된 상태라 행여 불이라도 나면 불쏘시개역할을 하고 있어 크게 위험하다"고 마을주민들의 걱정을 전했다.
백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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