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는 예로부터 쌀, 누에, 곶감으로 유명…인재 많은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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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는 예로부터 쌀, 누에, 곶감으로 유명…인재 많은 고을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홍성고 20회)
  • 승인 2010.10.0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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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14구간 ②

 

화령주변은 백두대간을 따라 나있는 산간도로인 보은-화령장-상주에 이르는 도로와 괴산-갈령-화령장-상주도로의 합류지점으로 백두대간을 통과하여 상주로 연결되는 요충지다. 그러나 국군은 이곳의 중요성을 미쳐 파악하지 못했고 따라서 병력도 배치하지 않았다. 이 점을 간파한 인민군은 이곳에 제 15사단을 투입하여 집요한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화령장 주변에서 인민군 전령을 생포한 국군 제 17연대가 적의 작전을 미리 파악하고 화령동쪽의 상곡리와 갈령주변의 동관리에서 각각 매복작전을 펼쳐 남진하는 인민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 이로써 백두대간 분수령을 넘어 상주지역에서 국군 제 2군단을 차단코자 했던 인민군의 작전은 저지되었다. 결국 개전 이후 밀리 기만하던 국군은 최후의 낙동강 전선구축에 6일이라는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면서 반격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화령장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제 17연대 전장병은 1계급 특진했다. 후미가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맛있게 한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고 막걸리 두어 잔에 기분이 좋다.

07시30분 봉황산을 향해 출발하는데 염려했던 비가 내린다. 잡목이 우거진 능선에 올라서면서부터 고행의 길은 시작된다. 키 큰 소나무 숲과 곰솔 향을 맡으면서 가파른 능선길을 오르기도 힘이 드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국지성 폭우가 앞을 가린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우의를 꼭 잡고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허사다. 우의를 벗어버리고 비를 맞으며 시원하게 걷는다. 백두대간의 한 축이며 속리산과 봉황산으로 이루어진 이곳 청정지역 송이버섯은 전국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출입금지 표시가 나무에 걸려 있다. 뿐만 아니라 어디서부터인지 기억할 수 없는 능선길 좌측에 가늘고 약한 은박 끈이 이어지고 있어 출입금지용인지 알 수 없으나 끈 조각은 낡아서 끊어져 수백 미터 널려있어 보기가 흉하다. 비에 젖은 배낭과 물이 찬 등산화의 무게가 천근같다. 그러나 발길은 단근 같이 움직인다. 발바닥이 퉁퉁 부은 느낌이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어렵게 봉황산(740.8m)정상에 09시 30분 오른다. '백두대간 봉황산 740.8m '표지석이 나란히 서 있는 좁은 정상이지만 확 뜨인 조망은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억수같이 내리는 비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중종의 태를 묻었다는 전설에 힘입어 화령인들이 태봉산이라고 부르는 봉황산은 1300년 전부터 봉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져오며 송천을 발원시키는 화령의 진산이었다고 한다. 가뭄이 들면 이곳에 가서 산돼지의 피를 내어 바위에 붉게 칠을 한 뒤 정성을 들여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붉은 바위(일명 기역자바위)가 봉황산 중턱에 있고 1000년 묵은'이무기'가 살았다는 탑송이 화서면 상현1리에 있다. 봉황산을 뒤로하고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상촌4거리가 나오고 459봉을 지나 시야에 철계단이 길 건너 산 들머리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25번 지방도가 지나는 비재다. 고개의 생김새가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이어서 󰡐비조령󰡑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비재에서 숨 돌린 뒤, 작은 봉우리 두어 개 쉬엄쉬엄 넘어서면 못재(655m)를 만난다. 주민들이 󰡐천지󰡑라고도 부르는 이 못의 넓이는 500~600평 되는데,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유일한 못이다. 분수령에 못이 있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못재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곳과 가까운 상주땅의 대궐터에서 군사를 일으킨 견훤은 나날이 주변 지방을 장악해 나갔다. 이때 보은의 호족인 황충장군은 삼년산성을 근거로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견훤과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황충은 패하기만 했다. 이에 황충은 부하를 시켜 견훤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아내도록 했다. 황충의 부하는 견훤이 못재에서 목욕하면 힘이 강해지는 사실을 알아내곤 황충에게 알렸다.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임을 눈치챈 황충은 소금 300석을 몰래 못재에 풀었다. 그러자 견훤의 힘은 사라졌고, 마침내 황충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패배한 영웅은 용이 아니라 지렁이로 격하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일러주기도 한다. 예전엔 지금보다 수량이 훨씬 많았음을 짐작케 해준다.

 

 

 

 


못재를 지나 암릉길을 힘겹게 오르내리면 갈령 삼거리가 나온다. 대문을 나서면 충청북도 땅이요, 되돌아오면 경상북도 땅이라는 충북 보은군 마로면 임곡리와 경북 상주시 화남면 임곡리가 불과 3m 거리에 두고 이웃으로 살고 있다. 갈령 삼거리에서 왼쪽으로는 대간 다음 구간인 형제봉이고 오른쪽으로 직진하여 급경사 길을 내려오면 49번 국도인 날머리 갈령에 13시 50분 도착한다. 비와 땀에 젖은 옷과 등산화를 벗고 시원한 계곡물에 몸과 마음을 씻는다. 후미가 도착하길 차 안에서 기다린다. 신라천년의고도 경주와 더불어 경상도를 대표하는 큰 고을이었던 상주는 예로부터 쌀, 누에, 곶감으로 유명해 세 가지 하얗다는 '삼백미'라 해서 경기미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질이 좋았고, 임금의 수라상에도 오르던 진상품이었다. 게다가 생산량도 많아 한 때 상주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은 강원도 전 지역에서 생산되는 그것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됐다고 한다. 또한, 누에치기를 시작한 지는 4000년 쯤 되었다고 하는데 2000년 쯤 전에 고령가야 터였던 상주 함창읍은 신라 시대부터 명주산지로 이름난 곳이다. 은척면 두곡리에는 '은척뽕나무'로 불리는 350년쯤 된 늙은 뽕나무가 있는 것도 이 고장이 누에치기가 오래됐음을 알려준다. 한때는 653만 평에 이르던 뽕밭은 지금은 몇 십 만평에도 못 미치지만 요즘도 한창 장날엔 명주장이 설정도로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상주(尙州)의 상자를 '뽕나무 상(桑)' 자를 써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뽕 밭은 예전처럼 많이 보이지 않는다. '누에는 비단을 만드는 재료'이지만 요즘은 비단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점점 양잠농가가 줄어들어 이제는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요즘엔 누에를 건강식품으로 더 많이 기르기도 한다.

이번 대간길은 출발도 잠사가 많은 잠실에서 했고 마무리도 상주누에고장에서 하니 이래저래 누에와 인연인 것 같다. 그 옛날 어머님이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고 나서 번데기를 주워 먹던 추억과 함께 고인이 되신 어머님 생각이 간절하다. 또 상주에서는 가을에서 겨울 사이엔 어딜 가나 누런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과 건조장에서 하얗게 피어나는 곶감을 볼 수 있다. 상주에서는 '삼백'과 함께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채련요인 '상주 연밥 따는 노래'가 유명하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 아가
연밥 줄밥 내 따 주마 우리 부모 모셔 다오
이 배미 저 배미 다 심어 놓고 또 한 배미가 남았구나
지가야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
고초 당초 맵다 해도 시잡살이만 못 하더라
나도야 죽어 후생가면 시집살이는 안 할라네


전형적인 영남 민요로서 김소희 명창 등이 불러서 유명해진 이 민요에는 유서 깊은 상주고을의 자연과 인문환경의 특수성에 의해서 형성된 향토색이 물씬 풍겨 나온다. '상주 연밥 따는 노래'의 정겨운 가락은 영남지역은 물론 충청도 보은, 옥천과 전북 내륙지역까지 전파되어 그곳에서 모내기 할 때도 곧장 불리곤 했다. 이 채련요가 널리 전파될 수 있었던 까닭은 곧장 고을 간에 문화적 장벽이 되곤 하는 백두대간의 분수령이 상주고을을 지나면서 몸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는 남았으되 아쉽게도 널따란 '공갈못'을 볼 수는 없다. 현재는 그 터만 조금 남아 있는 연못 둑에 외로이 서 있는 비석에서 예전의 모습을 그려볼 뿐이다. 이렇듯 나라의 인재들을 많이 배출하고 사연도 많고 많은 고을 상주! 21세기 상주의 아침은 자전거 행렬로 시작한다. 넥타이맨 공무원도, 회사에 출근하는 아저씨도, 교복차림으로 등교하는 여학생도, 장 보러 가는 아줌마도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그 음률의 물결은 한낮을 지나 밤늦도록 이어진다. 그토록 오랜 세월 상주고을을 적시고 흐르는 낙동강의 유장한 물줄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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