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갈산면 내갈리

갈산면 내갈리는 면소재지로부터 동쪽방향으로 29호 국도변 1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앵봉산과 명덕산이 내갈리를 새둥지 마냥 감싸고 있다. 산세가 좋아 사계절 풍경 좋고, 산줄기 따라 맑은 물줄기 와룡천으로 흐르니 전형적인 배산임수 즉 명당이라 예로부터 자리 좋은 마을이라 전해진다. 갈미 안쪽에 위치하여 안갈미 또는 내갈산이라 불린 내갈리는 광복 이후 동쪽편의 증산과 돈담이를 합병한 다산마을과 분구되었다. 북쪽으로는 앵봉산을 경계로 운곡리와, 서쪽으로는 상촌리 남쪽의 와룡천을 경계로 행산리와 접하고 있다. 앵봉산은 143m의 높이로 산세가 마치 꾀꼬리가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어 일명 꾀꼬리봉 이라고 불리며 마을 전체를 감싸안아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다. 마을인구가 가장 많았을 때는 626명의 주민이 살았을 정도로 번성했던 내갈마을에는 500년이 넘은 홰나무가 존재한다.

홍성군 보호수로 1982년 도지정 8-12-10호로 지정되어 웅장하고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보호수 아래에는 옹달샘이 하나 자리잡고 있는데 평소 주민들의 약수로 시음하고 있으며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옹달샘의 이름은 잿샘이라 불리는데 그 지명유래에는 애틋한 마을전설이 내려져 온다. 전설에 의하면 잿샘 위에는 작은 암자가 하나 있었다. 이 암자에는 노승과 어린 동자승이 살았는데 노승은 동자승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자 열심히 불경을 가르치며 보살핌이 극진하기로 유명했다. 암자아래 바위 밑에 현재 잿샘이 자리잡고 있어 동네 아낙네들은 매일 이 샘을 식수로 사용했다. 또한 동자승도 이 물을 길어 절의 식수로 사용해 오고 있었다. 어느날 동자승이 이른 새벽 물을 길러 나갔는데 묘령의 처녀와 마주쳤다. 여러 차례 이른 새벽 둘이 마주치는 횟수가 많아졌고 동자승과 처녀는 서서히 서로 흠모하며 애틋한 정이 오고가게 됐다. 그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동자승과 처녀의 사랑은 노승에게 발각되어 동자승은 책망을 받았고, 처녀의 부모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처녀를 서둘러 인근의 부잣집 총각에게 시집보내게 되어 그만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동자승은 불사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헤어진 여인 생각에 식음을 전폐하며 상사병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 후 철철 넘쳐흐르던 옹달샘물이 점점 줄어들어 마치 동자승의 눈물처럼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옹달샘으로 변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노승은 자신이 아꼈던 동자승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옹달샘에서 해마다 동자승의 기일과 정월 보름날에 제를 올렸고 이 후 마을사람들이 옹달샘을 제를 지내던 샘이다 하여 '잿샘' 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지금도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젯밥을 샘앞에 갖다놓는 풍습이 전해져 오며 홰나무와 같이 내갈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평안을 빌어온다.

현재 내갈리 내갈마을은 140세대로 구성되어 약 290여명의 마을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 조직으로는 개발위원회와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 및 새마을지도자가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구성되어 노력하고 있으며 마을의 주 수입원은 벼농사이고, 특산물로 씀바귀 종류인 고들빼기가 유명하다. 주민의 연령대는 60, 70세가 평균연령층으로 농업을 이끄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내갈마을 동쪽에는 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다산 마을이 있다. 다산마을은 돈담이 마을이라고도 불리는데 마을입구 국도 29호선과 40호선등 4차선 국도가 개설되기 전 국도변에 상점과 주점이 있었다고 한다. 내왕자의 쉼터 역할을 하며 돈이 많이 왕래한다는 뜻에서 돈담이란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다산마을은 가야산 줄기를 이어받은 명덕산 일명 대깃봉이라고 불리는 산줄기가 마을에 길게 뻗어 감싸고 있다.

이 명덕산 기슭에는 현재 흔적만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대깃 신작로라 하는 길이 있는데, 서산시 고북면에서 홍성읍 쪽으로 통하는 길로 예전엔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길옆에는 등잔걸이처럼 생긴 자리가 있는데 좋은 명당자리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 명당자리에 얽힌 전설이 내려져오는데 어느 부잣집에서 등잔걸이가 워낙 명당자리다 보니 그곳에 묘를 쓰기로 했다고 한다. 하관시간이 자정 12시 였는데 시계도 없고 산중이라 시간을 몰라 사람들끼리 약속을 하나 정했는데 마을에 등불을 켜고 올라오는 시간이 자정이니 그때 하관을 하기로 정한것이었다. 그렇게 하관을 하기 위해 상주들은 등잔걸이 명당터에서 자정을 확인하기 위해 마을을 내려다 봤다. 때는 여름철이라 하필 반딧불이 산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어 이 불빛을 상주들은 약속된 등불로 착각해 자정인지 알고 서둘러 하관을 마쳐버리게 됐다는 것. 이름난 명당자리지만 하관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영화를 못 본 파평 윤씨의 묘소가 안타까운 전설과 함께 등잔걸이 명당에 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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