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경사지 당간지주(廣景寺 址 幢竿支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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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경사지 당간지주(廣景寺 址 幢竿支柱)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0.10.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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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23〉

우리 문화속의 ‘당간지주(幢竿支柱)’는 무엇일까. ‘당간지주’는 불교 사찰에서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한다. 또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幢竿支柱)라 한다. 

사찰의 입구에는 주로 기둥을 두개 세운다. 나무·돌·구리·쇠 등으로 만들며 찰간(刹竿)·장간(長竿)·정간(旌竿)·기간(旗竿)·치간(幟竿)·번간(幡竿)·범장(帆檣)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당간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당간의 끝에는 보통 당을 달아두지만 현재는 당간을 지탱하는 지주(支柱)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충남 홍성군 홍성읍 당간길 15(오관리)에 있는 ‘동문동당간지주(東門洞 幢竿支柱)’는 옛날 광경사(廣景寺)의 절터에 남아 있는 유물로 보물 제 538호로 지정돼 있다. 역시 오관리에 있어서 ‘오관리당간지주(五官里 幢竿支柱)’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조양문’인 동문 근처에 있다고 해서 ‘동문동 당간지주’라고도 불린다. 이 당간지주 한 쌍은 지금도 고려시대의 절이었던 광경사(廣景寺) 터를 오로지 홀로 지키고 서 있다. 따라서 명칭도 ‘광경사지당간지주(廣景寺址 幢竿支柱)’로 통일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홍주읍성의 조양문에서 멀지 않은 홍성천과 월산천이 만나는 지점인 냇가 둑 옆에 당간지주 한 쌍이 있어 그곳이 옛 절터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절의 정확한 창건 연대와 폐사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25년에 간행된 ‘홍성군지(洪城郡誌)’의 기록을 보면 ‘광경사가 화재로 소실돼 없어지고 당간지주와 석불만이 남아 있다’고 기록돼 전해지고 있다. 광경사는 석불과 인근 밭에서 나온 자기 조각 등으로 미뤄 볼 때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 또한 고려시대(12~13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광경사 터 당간지주(廣景寺址 幢竿支柱)는 홍성읍 오관리의 경작지 한 가운데에 4.8m의 두 지주는 집들 사이의 공터에 78㎝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 고려시대 화강암으로 제작된 깃대기둥(당간지주)의 두 지주는 동서로 마주보며 서 있다. 지주 주변은 남향(南向)한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특별한 유물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다만, 지면이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두 지주의 아랫부분은 자연석면이 노출돼 있는 상태다. 지주는 아랫부분에서 윗부분으로 올라가면서 가늘어진 ‘상촉하관형(上促下寬形)’의 모습이다. 겉면에는 안쪽 면을 제외한 바깥쪽 면과 옆면에 조각이 돼있다. 바깥 면에는 굵은 두 줄의 선이 윗부분부터 아랫부분까지 돋을새김으로 돼있는데, 조각 수법은 부드러운 편이다. 옆면에도 윗부분부터 아랫부분까지 테두리를 따라 오목새김한 선을 넓게 팠는데, 마치 가장자리 띠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다만, 오목새김한 정도가 얕아서 선(線)무늬로 보이기도 한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杆)은 1군데만 있는데, 안쪽 면의 윗부분에 지주 끝에 당간을 맬 수 있는 네모난 간구(杆溝)를 파서 간을 설치했다. 두 지주의 아랫부분에는 하나의 돌로 만든 길고 네모난 큼직한 장대석으로 간대(竿臺)를 삼았는데 가운데에 지름이 50cm나 되는 둥근 구멍을 파 기둥이 잘 고정되도록 배려했다. 윗면 가운데에는 커다란 원형 구멍 하나가 마련돼 있다. 이 당간지주는 윗부분에서 아랫부분에 이르면서 굵어졌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고, 위쪽으로 갈수록 끝이 뾰족해져 날렵한 상승감이 느껴진다. 또한 선조(線條)무늬가 있어 장식적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위로 오를수록 가늘어지고 위쪽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이 파여 있으며 가운데 깃대는 남아있지 않다. 기둥의 바깥 면에는 세로줄 문양이 새겨져 있고 기둥머리 부분은 둥글게 처리됐다. 두 지주 사이에는 낮은 대(臺)가 놓여 있는데 중앙에 둥근 구멍 하나가 뚫려있어 깃대를 세우던 자리임을 알 수 있다. 높이가 높아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는 이 당간지주는 고려시대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대는 고려시대의 ‘광경사(廣景寺) 터’로 알려져 있고, 석탑과 석불좌상 등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광경사지 당간지주’와 함께 광경사지(廣景寺址)에 있다가 각각 홍성여자중학교 교정과 용주사로 옮겨진 ‘광경사지 삼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 제159호)’과 ‘광경사지 석불좌상(충남문화재자료 제161호)’이 있다. 또 인근 대교리에 있는 ‘대교리 석불입상(충남문화재자료 제160호)’도 마찬가지로 ‘광경사지 석불입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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