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향교(結城鄕校), 천년홍주 역사문화 간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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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향교(結城鄕校), 천년홍주 역사문화 간직해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1.01.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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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28〉
청룡산의 구릉지에 위치한 결성향교 전경.

홍성군 결성면 읍내리에 가면 결성향교(충청남도기념물 제134호, 1997.12.17 지정)가 있다. 정확한 주소는 홍성군 결성면 홍남서로 707번길 21-8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됐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23년에 도유사(都有司) 가진(賈璡)이 중수했고, 1674년에는 현감 남종표(南宗標)가 중수했으며, 그 뒤 1699년·1752년·1822년·1828년·1841년·1865년에 부분적인 보수공사가 있었다. 또 1914년과 1923년에 지방유림이 모은 기금으로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제기고(祭器庫)·내삼문(內三門)·홍살문 등이 있다. 대성전은 맞배지붕에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이며 내부에는 5성(五聖)·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한다. 초하루와 보름에는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 158호로 지정돼 있다. 결성향교는 1010년(고려 현종 1년) 결성 금곡리에 처음 세워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1406년(조선 태종 6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와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으로는 향교와 서원으로 구분되는데, 조선 초기에는 정책적으로 적극 권장해 고을마다 1교씩 세워졌다. 조선 중기 이후 서원이 세워지면서 교육 기능은 점차 약해지고 선현들을 제사 지내는 제향 기능만 남게 됐다. 향교는 오늘날의 초, 중, 고등학교에 해당되며 수도를 제외한 지방의 교육기관으로 향학이라 불렀다. 또한 향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공자님을 비롯한 많은 선현들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결성향교는 청룡산의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명륜당을 지나 내삼문과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이다. 대성전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 4현, 송대(宋代)의 유학자 4현과 한국의 유학자 18현 등 27현을 제향하고 있다. 명륜당은 정면 4간, 측면 2간의 팔작지붕이며 초창기에는 외삼문을 겸하는 누각형식으로 지어졌다. 누각의 기둥사이에 판벽(板壁)을 치고 문을 달아 지금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4간 측면 2간의 맞배지붕이다. 또 유생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기물 보관창고인 제기고 등의 건물이 있다.

향교는 각 고을(縣)에 있던 소설위·목(牧)에 있던 중설위·감영(관찰사가 있는 곳)에 있던 대설위로 구분하는데, 결성향교는 소설위로 가장 작은 규모로 충청도 4개 목(牧) 중 하나인 홍주목(洪州牧)의 천년 역사문화를 이룬 근간이라 할 수 있다. 기호유학의 대표적 학자인 남당 한원진이 수학했으며, 영의정 김상복 등을 배출한 명문이다.

결성향교가 있는 ‘결성현(結城縣)’은 현령이 파견되는 역사가 깊은 고을이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홍주(洪州)와 병합돼 오늘의 홍성군에 편입됐다.
결성향교에서는 양반과 향리의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173마지의 학전이 있었다. 해방전후 유림들이 직접 농사를 짓다가 1949년 6월 21일 농지개혁이 발표돼 현재는 향교 주변에 7마지기의 학전만 남아 있다.

결성향교는 결성 지역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조용한 시골에 있으며 향교를 가기 위해서는 홍살문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걸어서 올라가야 했는데, 홍살문 바로 옆에는 하마비가 있는데 누구든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표지석이다. 또 결성향교 대성전의 오른쪽에는 600년이 넘은 팽나무가 있고, 왼쪽에도 600년 세월을 넘긴 느티나무가 서있다. 모두 보호수로 지정(2008. 9. 20.)돼 있다.

결성은 종6품 현감이 다스리던 작은 고을이었지만 결성향교는 생원·진사인 1명의 교도가 담당했고, 학생수가 30명이나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찬란한 천년홍주의 역사문화를 꽃피운 원동력의 중심이었던 결성향교는 율곡 이이에서 비롯된 기호유학의 맥을 잇는 남당 한원진이 수학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지산 김복한과 이설, 백야 김좌진과 만해 한용운에 이르기까지 천년홍주의 정신문화를 키워낸 자양분의 중심적 역할을 한곳이 바로 결성향교였다.

결성향교는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일진의 천간이 정이 되는 첫 번째 날)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을 위한 석전제(釋奠祭)를 올리고 있다. 결성향교 대성전에는 강희 38년(1699년)에 김수룡이 제작했다는 ‘막새’라는 유물이 남아 있다. 막새는 지붕기와의 처마 끝에 설치해 빗물이 처마를 타고 안으로 흘러들어 목재가 썩는 것을 방지하고, 아울러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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