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심 관통 3대 하천 산지천 ‘복개됐다 다시 복원’
상태바
제주도심 관통 3대 하천 산지천 ‘복개됐다 다시 복원’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1.08.22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심속 자연하천, 생명과 문화가 흐른다 〈9〉
 ‘제주의 청계천’으로 불리는 제주의 대표적 하천인 제주산지천은 한천, 병문천과 더불어 제주시 도심을 관통하는 3대 하천 중 하나로 한때 복개로 인해 시궁창으로 전락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건물과 복개 구조물이 철거돼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제주도민들, 하천에 많은 문화와 역사유적 남겼고 식수 해결·훼손 심각해
하천정비 목적, 하천의 원형 사라지고 과도한 지하수 개발로 수자원 고갈
산지천, 제주시민들에 식수 제공했던 ‘물의 하천’ 쉼터·문화공간으로 활기
복원된 산지천, 교량 4개 121개 분수물기둥 설치 시민들 휴식공간 거듭나

 

제주도에는 총 143개의 하천이 있다고 하는데, 하천의 경사가 급한 남북쪽은 발달한데 비해 경사가 낮은 동서쪽에는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한 편이라고 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하천은 경관이 수려한 급경사의 하천 밀도가 높은 반면, 한림과 한경 등 북제주군 서부지역과 동부지역인 조천, 구좌, 남제주 성산지역은 하천발달이 저조하다는 설명이다. 제주도의 하천에는 연중, 전 구간에 물이 흐르는 하천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제주하천전문가의 설명이다. 제주 하천의 특징은 상류에서 유출하다가도 땅속으로 잠수해 버리거나 상류에서는 건천인데 해안부근에서 다시 솟아올라 흐르는 것이 보통이라고 전한다.
 

제주도민들은 하천에 많은 문화와 역사유적을 남겼고 식수를 해결했지만, 근래에는 훼손이 심해지고 있다. 또 하천정비라는 목적으로 하천의 원형이 사라지고 과도한 지하수 개발로 수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일부 하천은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기도 했다가 상가 건물로 복개됐던 ‘산지천’을 복원하면서 제주도민들은 뼈저린 반성을 해야 했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제주의 하천에 대한 기록은 1936년 일제가 전국 하천의 길이와 명칭을 정한 ‘조선하천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정리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1982년에 제주도지사가 준용하천을 고시한데 이어 지금은 지방2급 하천으로 분류돼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제주의 하천 명칭은 1936년 일제 당시 ‘조선하천령’에 의한 것이다. 
 

■ 산지천, 한천, 병문천 도심 관통 3대 하천
‘제주의 청계천’으로 불리는 제주의 대표적 하천인 산지천은 한천, 병문천과 더불어 제주시 도심을 관통하는 3대 하천 중 하나다. 특히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만 해도 제주시민들에게 식수를 제공했던 ‘물의 하천’으로, 제주의 역사와 수많은 사연이 녹아 흐르고 있다. 한때 복개로 인해 시궁창으로 전락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건물과 복개 구조물이 철거돼 하천의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사라졌던 숭어와 은어가 돌아오고 제주시민들의 새로운 쉼터와 문화공간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옛 산지천의 빨래터 모습을 담은 석조 안내판.

산지천(산지내) 하구의 옛 모습은 빛바랜 사진과 그림을 통해서만 남아 있다. 초가와 갯가 지형에 따라 작은 배를 댔고, 사람들이 이동했던 자연포구였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해안으로 길게 뻗은 동·서부의 두 방파제와 각종 대규모 항만시설, 빌딩 숲을 이룬 현재의 모습에서 옛 산지천 포구를 떠올린다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벌거벗은 채로 벗들과 멱을 감던 추억과 아낙네들이 빨래하고 허벅으로 물을 길러 나르던 정겨운 풍경이 있던 곳이 바로 산지내였다는 설명이다. 

산지내 하구였던 용진교 일대는 탐라 개벽설화에 나오는 ‘건돌개(健入浦)’터다. 고대 탐라 때의 교통항으로 추정되는 곳이며, 1897년부터 기선이 취항하면서 명실상부한 제주도의 교통항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한 사회복지가로 이름을 날린 김만덕의 객주 터도 산지포구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용연, 외도월대, 방선문 등 성 밖의 명소를 제외하면 제주의 명소는 대부분 산지천을 끼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금산(禁山)’인데, 제주성 북성 문턱에 막바로 바다에 낭떨어지를 이루며 우뚝 뻗은 이 언덕에는 제주 특유의 난대림이 우거져 오랫동안 입산이 통제되면서 ‘금산’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전한다.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는 ‘산포조어’는 바로 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산지천 하류는 1960년대 후반 도시화와의 물결을 타고 일부 구간이 복개되고 상가건물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5년 복개 구조물이 노후화되고 안전상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복개구조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안전진단결과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재해위험지구란 진단이 내려져 철거대상으로 분류됐지만 거주자들의 반발도 만만찮아 애물단지로 전락해갔다. 이렇듯 복개 구조물이 철거되고 복원을 위한 첫 삽을 뜨기 까지는 많은 논의와 우여곡절이 있었다. 상권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다시 복개를 해서 주차장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산지천의 옛 공간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시민 다수의 요청을 꺾지는 못했다고 전한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의지에 힘입어 제주 산지천은 지난 2013년 3월, 36년 만에 옛 모습을 되찾았다. 1960년대 복개공사로 자취를 감췄던 하천이 이제 은어와 숭어·장어가 뛰노는 과거의 자연형 하천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산지천은 한라산 중턱에서 발원, 제주항과 제주시 중심가인 동문로터리를 흐르는 하천으로 옛날에는 제주의 상징이었다. 산지천은 지난 1966년부터 1982년까지 복개공사를 벌여 그 위에 14개 동의 3∼4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차례로 들어서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172개의 상가·주택 등이 밀집, 한때 ‘제주 근대화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던 복개하천이었다.
 

제주시는 1996년 3월부터 252억 원을 들여 보상 등을 마무리하고 산지천 복개구간인 일도1동 동문교∼제주항구간(길이 474m·폭 21∼36m)에 대한 정비·복원사업에 착수, 1998년까지 복개구간에 들어선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복원했다. 생활하수가 흐르며 악취를 풍겼던 산지천은 과거에 서식했던 은어·숭어가 돌아오고 철새가 몰려드는 생태회복의 명소로 거듭났다. 지난 2000년 6월부터 복원사업을 본격화, 산지천 바닥에 자갈을 깔고 수중 둑을 설치해 하천 상류에서 솟는 용천수와 바닷물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연중 맑은 물이 흐르도록 했다. 또 7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높이 3∼5m의 하천제방을 제주자연석으로 꾸미는 한편 곳곳에 계단식 분수를 설치했다. 복원된 산지천은 이제 4개의 교량이 가설되고, 121개의 물기둥을 뿜어 올리는 음악분수대가 설치돼 시민휴식공간으로 거듭났다. 7년여의 정비·복원사업에 투자된 예산은 347억 원이다.

결국 산지천은 동문교에서 하구용진교간 474m 구간이 시민들의 쉼터로 돌아오게 됐다는 설명이다. 산지천 복원 구간과 연결된 곳이 제주도 최대 재래시장인 동문시장이다. 하구의 복원과 남수각 수해상습지 정비사업으로 동문시장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현대식 대형할인매장이 속속 들어서면서 전통재래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지만 삶의 체취와 인정이 묻어나는 동문시장엔 여전히 정겨운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제주의 하천, 지질·생태·경관적 특징 있어
동문시장을 벗어나면 상류는 정비된 남수각 수해상습지다. 주변의 무허가 건물들도 대부분 철거됐지만, 이 일대는 비만 오면 하천이 범람해 많은 침수피해가 발생했던 곳이다. 최근의 물난리로는 지난 1999년 7월 가옥 170동이 침수된 사례가 있다. 이후 제주시는 190억 원에 이르는 예산을 들여 동문교~오현교 남수각 일대 하천을 정비하고 주변 건축물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특히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주차공간을 확충, 재래시장 활성화를 꾀하기도 했다. 남수각 일대는 제주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된 제주성지이며, 제주성 남수문이 있던 터가 바로 남수각이다. 성 안에는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됐거나 방어사로 부임했던 다섯 분을 배향했는데, 바로 오현단이다. 충암 김정과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이 그들이다.
 

1960년대 후반 복개됐다가 2000년대 다시 복원된 제주 동문시장 앞의 동문교 산지천 복원시작지점.  

오현교를 벗어나면 하구와는 달리 하천은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깊은 절벽과 집채만한 바위가 아직도 남아 있으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곳은 환경오염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지천 하류는 제주의 대표적 역사문화유적지와 관광명소를 끼고 있다. 오현단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적 제134호로 지정된 삼성혈을 비롯해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신산공원, 문예회관 등이 있다. 산지천변에 이 같은 명소가 자리하고 있어 이 일대와 산지천 하구까지 연결해 문화관광벨트화 구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오고 있다고 전했다. 도심 한복판에 연중 마르지 않는 산지천의 용출수를 확대 재현해야 한다는 여론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제주경찰서를 지나 택지개발이 이뤄진 일도2동 제주학생문화원과 수운공원 일대는 비록 하상은 정비돼 원형이 훼손됐지만 비교적 계획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도시계획지구로 정비돼 하천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주택지가 조성되면서 하천의 오염원이 차단돼 있다. 하천변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산지천은 돌 공원인 목석원과 삼의양오름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화북천과 더불어 산지천에도 일제가 구축한 진지동굴이 집단 분포해 있다는 설명이다. 해발 440~480m 일대에 진지동굴로 보이는 인공 굴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산지천 상류 지점인 산천단 일대는 일제말 일본군이 집단 주둔했던 장소로 알려진 곳이며, 당시 일제 방어진지로써 대규모 진지동굴이 구축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화북천과의 진지동굴과도 상호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천은 깊은 V자형 구조를 보이다가 발원지가 가까워지면 완만해지고 발원지에 이르면 결국 평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발 570m쯤 되는 지점으로 주변은 목장지대이고 관음사, 산록도로와 닿아 있다. 

제주의 하천은 한라산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수많은 혈관처럼 뻗어있으며, 육지 하천과는 전혀 다른 지질·생태·경관적 특징을 갖고 있다.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져, 물이 스며드는 특성과 급경사로 인해 하천의 물이 급속도로 바다로 흘러가버려 육지의 하천처럼 유유히 흐르는 하천은 없지만, 용암암반 위에 형성된 수많은 소(沼)가 오아시스처럼 수없이 흩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육지의 하천처럼 수변 지역이 수생식물대가 아닌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으로 형성돼 기나긴 녹색 띠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독특한 제주의 하천은 그동안 하천정비라는 이름으로 원형이 무참히 훼손됐다. 제주 하천의 특징은 육지 하천과는 달리 폭이 대개 60여m 정도로 아주 작지만 제주의 자연하천다운 자연성의 회복이 시급한 실정이라는 설명이 주목된다. 결국 제주 산지천 복원의 성공이 서울 청계천 복원 성공을 낳은 어머니라는 교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