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삽다리 총각’을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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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삽다리 총각’을 기억하시나요?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1.09.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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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추식이 집필한 1967년 KBS 라디오 연속극 ‘삽다리 총각’
예산군 삽다리 공원에 삽다리 총각 석상과 노래 기념비 세워져
삽다리 총각이 수록된 1971년 발매 앨범.

■ 라디오 연속극 ‘삽다리 총각’

총각 총각 삽다리 총각/ 꽃산의 진달래 손짓을 하는데/ 장가는 안 가고 날일만 할텐가/ 개갈이 안 나네 개갈이 안 나/ 주래뜰 논두렁 개갈이 안 나/ 총각 총각 삽다리 총각 /총각 총각 삽다리 총각/ 용머리 능금이 빨갛게 익는데/ 장가는 안 가고 들일만 할텐가/ 개갈이 안 나네 개갈이 안 나/ 새터말 새악시 개갈이 안 나/ 총각 총각 삽다리 총각

1967년 KBS 라디오에서 방송된 연속극 ‘삽다리 총각’의 주제곡은 경쾌한 멜로디와 정겨운 사투리가 돋보이는 곡이다. 방송 당시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던 ‘삽다리 총각’은 예산군 삽교읍 상성리에 거주했던 극작가 추식(1920~1987)이 집필한 연속극이다. 추식은 연속극의 주제가도 작사·작곡했는데 이 또한 히트를 치면서 가사에 나오는 ‘개갈’, ‘개갈 안 난다’ 등의 충청도 사투리가 전국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1960년 4월 24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금성 라디오 광고.

■ 코 묻은 옥수수를 손에 쥐고서 
흑백 TV는커녕 라디오마저도 희귀했던 그 시절, ‘삽다리 총각’의 방송시간이 가까워지면 저녁 식사를 마친 마을 사람들은 라디오가 있는 이웃 집 마당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멍석을 깔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옥수수 반 조각을 손에 쥐면 준비 완료다. 이제 지직 거리는 금성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숨죽여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은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코 묻은 옥수수를 핥는다. 그리곤 약 올리듯 총각을 부르는 여가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울려 퍼진다. 

가수 오세자가 부른 주제곡 ‘삽다리 총각’은 방송 4년 뒤인 1971년 유니버셜레코드에서 발매되기도 했다. 지금도 유튜브에 ‘삽다리 총각’을 검색하면 해당 주제곡을 감상할 수 있다. 
 

연합아카이브에 보관돼있는 추식의 사진.

■ 기자, 소설가, 극작가… 추식은 누구? 
추식은 1920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추성춘이다. 그는 1940년부터 충북도청에 근무하며 극단을 결성해 틈틈이 희곡을 썼다. 이후 만주로 건너간 추식은 광복 때까지 친척의 농장에 거주했다고 전해진다. 광복 후 귀국한 추식은 독립신문과 연합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1949년 대전의 호서신문과 중도일보의 편집국장, 주필을 역임했다. 1953년 서울로 올라가 동양통신 취재부장, 연합신문 문화부장을 지낸다. 추식은 1955년 현대문학 6월호에 단편소설 ‘부랑아’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1967년 예산군 삽교읍 상성리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며 △삽다리 총각 △솔마루 장사 △예산 시악시 △능금이 익어갈 때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예산지역 문인들과 무한천동인회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유명한 그 노래 ‘동백 아가씨(1964)’도 추식이 집필한 연속극 ‘동백 아가씨(1963)’에 모태를 두고 있다. 
 

삽다리 공원에 자리 잡은 삽다리 총각 노래 기념비와 석상.

■ 삽다리 공원과 삽다리 총각 
라디오 전파 속 성우의 목소리로만 존재했던 삽다리 총각은 현재 예산군 소재 삽다리 공원 입구에 큼직한 석상이 돼 우뚝 서 있다. 삽다리 총각상 바로 옆에는 주제곡의 가사가 적힌 노래 기념비가 자리를 잡고 있다. 장항선 선로개선공사 이후 공터가 된 구 삽교역 부지에 공원이 생겼기 때문에 삽다리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공원 산책로에 조성된 벽에는 지명에 대한 유래가 전래동화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옛날에 강 건너 시집온 새색시가 있었고, 어느 날 친정어머니의 부음을 듣게 되는데, 강을 건널 다리가 없어 애를 태우던 그 때, 마을 사람들이 섶으로 다리를 만들어줘 색시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곁을 지킬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후 섶다리는 삽다리가 되고 삽다리를 한자로 표현하면 삽교가 된다. 이런 구전 설화 말고, 삽교의 정확한 어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학자도 있다고 전해진다. 
 

노래 ‘삽다리’의 가사가 적혀있는 나무 조각상.

■ 시냇물 위에 다리를 놓아 섶다리라고 부르죠 
황해도 평산군에서 태어나 7살이던 1·4 후퇴 때 피난 행렬에 섞여 예산군으로 이주한 가수 조영남의 노래 ‘삽다리’에는 ‘시냇물 위에 다리를 놓아 삽다리라고 부르죠’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이 가사도 ‘삽’만 ‘섶’으로 바뀐 채 4개의 나무 조각상이 돼 삽다리 공원 한구석에 나란히 놓여 있다. 삽교, 섶다리, 삽다리가 도대체 뭐길래.

노래 ‘삽다리’가 수록된 조영남의 앨범.

삽다리는 추억이고, 기억이다. 그 기억을 간직하려는 사람들의 간절한 이야기다. 예산을 떠나 상경해 성공한 조영남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나를 키워준 두메나 산골, 내 고향 충청도”라고 노래한다. 노래도 결국은 이야기다. 라디오 연속극에서, 가요무대에서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만담꾼 삽다리는 이제 나무 조각과 석상으로 둔갑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 90년생이 온다? 아니 90년생이 간다 
지난 2018년 출간된 책 한 권이 국내에서 대히트를 쳤다. 책의 제목은 ‘90년생이 온다’.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당돌한 90년대 생들에게 ‘꼰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직장 상사인 아줌마, 아저씨들이 너도나도 이 책을 구매했다. 일터뿐만 아니라 가족 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세대 갈등은 어쩌면 소통의 부재, 즉 이야기의 부재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노년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에게 요즘 젊은이들을 이해해달라는 건 무리한 요구가 아닐는지. 그렇다고 젊은이들에게 ‘까라면 까라’ 식의 구태를 똑같이 반복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조금씩 문화를 공유해보자는 얘기다. 지금과는 반대로 젊은이들이 더 노력하는 방식으로. 문화 공유는 세대를 뛰어넘는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줄 것이다. 방탄소년단 노래 세 곡 정도 듣고 나면 조영남 노래도 한 곡쯤 들어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하나씩 이야기 거리가 늘어날 때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아는가, 그 이야기들이 모여 언젠가 세대 차이라는 거대한 강을 가로지르는 섶다리가 될지.


<유튜브채널에서 ‘삽다리 총각’주제곡>
https://www.youtube.com/watch?v=S_uh6ydNm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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