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 서산 용현리 계곡의 ‘마애여래삼존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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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미소’ 서산 용현리 계곡의 ‘마애여래삼존불상’
  • 취재|글·사진=한관우·한기원 기자
  • 승인 2022.07.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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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숲길, 내포문화숲길의 역사·문화유산 〈7〉
‘백제의 미소’라고 칭송하는 1500년 세월을 견뎌온 서산 마애삼존불상.

내포문화숲길의 서산 운산면 마애삼존불로 65-13(용현리)의 용현계곡에는 국보 제84호인 ‘마애여래삼존불상(磨崖如來三尊佛像)’이 있다. 가야산(伽倻山)의 화강암 절벽에 새겨진 높이 2.8m의 백제 후기의 마애불이다. ‘마애(磨崖)’란 암벽에 조각했다는 뜻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으로 지정됐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됐다. 서산 마애석불 또는 서산 마애불, 운산 마애석불이라고도 부른다.

서산 운산 용현리의 백제 때 창건돼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품은 ‘한때 승려 1000여 명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 사찰, 보원사지에서 2km가량 가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磨崖如來三尊像)’ 입구에 다다른다. 입구에서 계곡물을 건너 200m가량 비탈을 올라가면 ‘마애여래삼존상’을 친견할 수 있다. 용현계곡 입구 왼쪽 층암절벽에 새겨진 삼존불은 국내 마애불 중 가장 오래되고 조각미가 걸출한 불상으로 꼽힌다. 1958년 처음 발견했고, 4년만인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삼존불은 가운데 여래입상, 오른쪽 보살 입상, 왼쪽 반가사유상으로 추정되는 세 보살상으로 구성됐다. 여래입상이 현재를 상징하는 석가, 반가사유상이 미래 부처인 미륵, 오른쪽 입상이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백제의 미소’로 칭송
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고 김원룡(金元龍, 1922~1993) 박사가 ‘한국미의 탐구’라는 저서에서 ‘백제의 미소’라고 칭송한, 흔히 ‘서산 마애삼존불’로 불리던 백제시대 마애불이다. ‘따뜻하고 넉넉한 미소 머금은 제화갈라보살 입상,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여래상,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를 담은 미륵반가사유상’이라 안내판에 쓰여 있다. 불상의 미소가 빛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 보여준다.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다. 탁월한 조각기술, 뛰어난 예술성, 아름다운 독창성이 돋보이는 1500년 세월을 견뎌온 ‘삼존불’이다.

서산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 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부여로 가던 행로상에 있다. 즉 태안반도에서 서산마애불이 있는 가야산 계곡을 따라 계속 전진하면 부여로 가는 지름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은 예로부터 중국과 교통하던 길이었다. 이 옛길의 어귀가 되는 지점에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데, 이곳은 산세가 유수하고 천하의 경승지여서 600년 당시 중국 불교 문화의 자극을 받아 우리나라의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중앙에 여래 입상의 거구(巨軀)를 양각(陽刻)하고 여래의 오른쪽에 보살 입상을, 왼쪽에 반가사유형 보살좌상을 배치했다. 삼존(三尊)에 나타난 고졸(古拙)한 미소는 백제 불상의 특이상(特異相)으로도 지적된다. 이 삼존상(三尊像)은 ‘법화경’의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 즉 석가불(釋迦佛)·미륵보살(彌勒菩薩)·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을 나타낸 것이다. ‘법화경’ 사상이 백제 사회에 유행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가장 중요한 사료이자 유물이다. 또한 조선시대 사찰에 흔히 건립된 응진전(應眞殿)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의 원조로 의의가 있다. 수덕사(修德寺)에 주석했던 혜현(慧顯, 573~630) 스님도 법화와 삼론(三論)에 통달했다고 전해진다.

서산 마애석불과 태안 마애석불의 두 마애석불은 깊은 산의 암벽을 택해 조형됐으며, 부근에 소암(小庵)을 경영하고 있어서 한국 석굴사원(石窟寺院) 조영(造營)의 시원적 형태를 보인다. 소발(素髮, 장식 없는 민머리)에 낮은 육계(肉, 정수리가 불룩 솟아오른 것, 부처의 몸에 갖춰져 있는 팔십수형호의 하나)를 갖췄으며, 백호(白毫,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터럭) 구멍이 있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 눈썹은 초생달 모양, 눈은 행인형(杏仁形;은행 씨 모양)이고, 코는 얇고 넓으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었다. 두광(頭光)은 머리 바로 위에는 연화문을 두었고, 그 바깥에 원권문을 돌리고, 가장 바깥에 화염문을 장식했다. 거기에 화불(化佛, 작은 부처상) 3구를 새겼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고, 수인(手印)은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양쪽 어깨를 모두 덮음)이고 가슴에 옷의 띠 매듭이 있고, 옷 주름은 U자형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무릎 아래까지 드리웠다. 발가락이 정면으로 드러나 있고, 발밑에는 단판의 큼직한 복련연화좌(覆蓮蓮華座)가 조각돼 있다. 광배 중심에는 연꽃이, 둘레에는 화염문이 양각돼 있다. 이에 대해 우협시보살(右脇侍菩薩)은 머리에 높은 관을 쓰고 상호(相好)는 본존(本尊)과 같이 살이 올라 있으며, 눈과 입을 통해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목에는 짧은 목걸이가 있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보주(寶珠)를 잡고 있다.

천의는 두 팔을 거쳐 앞에서 U자형으로 늘어졌으나 교차되지는 않았다. 상체는 나형(裸形)이고 하체의 법의(法衣)는 발등까지 내려와 있다. 발밑에는 복련연화좌(覆蓮蓮華座)가 있다. 머리 뒤에는 보주형(寶珠形) 광배가 있는데, 중심에 연꽃이 있을 뿐 화염문은 없다. 좌협시보살(左脇侍菩薩)은 통식(通式)에서 벗어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배치했다. 이 보살상은 두 팔에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전체의 형태는 충분히 볼 수 있다. 머리에는 관을 썼고 상호는 다른 상들과 같이 원만형(圓滿形)으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상체는 나형(裸形)이고 목에는 짧은 목걸이를 걸쳤다. 허리 밑으로 내려온 옷자락에는 고식의 옷주름이 나 있다. 발밑에는 큰 꽃잎으로 나타낸 복련대좌(覆蓮臺座)가 있다. 머리 뒤에는 큰 보주형(寶珠形) 광배가 있는데, 그 형식은 우협시보살(右脇侍菩薩)의 광배 형식과 같다.
 

1959년 발견 이듬해에 촬영된 국보84호 서산 마애삼존불상(왼쪽 사진)과 2022년 현재 서산 마애삼존불상(오른쪽 사진). 발견 당시의 사진과 비교된다.
1959년 발견 이듬해에 촬영된 국보84호 서산 마애삼존불상(왼쪽 사진)과 2022년 현재 서산 마애삼존불상(오른쪽 사진). 발견 당시의 사진과 비교된다.

■ 용현계곡 인바위에 새겨
서산 마애삼존불은 1959년 4월 홍사준이 보원사지에 유물조사를 나왔다가 발견해 국보고적보존위원회에 보고한 후 국보로 지정됐다. 서산 마애불은 용현계곡의 인바위에 새겨져 있다. 인바위라는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근 사람들이 마애불(磨崖佛)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산 마애불의 발견으로 백제 불상의 진면목이 밝혀졌다고 한다. 금동미륵반가상이나 일본 고류지의 목조반가사유상, 호류지의 백제관음 등은 백제계 불상이라는 추정을 해왔는데, 서산 마애불의 발견으로 그 관련성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용현계곡의 바위에 새겨진 세 부처의 온화하고 은은하며, 넉넉한 미소는 ‘백제의 미소’라고 불린다.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의 미소는 자연 빛의 방향과 각도에 따라 보는 사람에게 표정이 다른 미소를 선사하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고 한다. 아침 햇살을 받은 오전 10시경의 표정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과연 범인이 그 아름다운 미소를 포착할 수 있을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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