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 벼락을 맞았던 용두마을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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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벼락을 맞았던 용두마을 ‘미륵불’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3.02.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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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31〉
  • 홍북읍 용산리 용두·용갈미마을

홍북읍 용산리는 본래 홍주 치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두리와 갈산리 일부를 병합해 ‘용산리’라 해 홍북읍에 편입됐다. 이후 용두리는 용산1리, 용갈산은 ‘용산2리’로 편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두마을은 마을 앞쪽으로 삽교천이 흐르고 넓은 농경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네 뒤편에는 낮은 야산의 산줄기가 길게 이어져 있다. 

그 산세가 마치 용의 형상과 같다고 해 용머리 자리라는 의미로 ‘용두리’ 또는 ‘용머리’라 불리었으며, 용의 꼬리는 ‘용갈미’라 해 ‘용갈산’이라 불렀다. 용의 머리는 미륵이 있는 위치쯤이고, 용머리로 돌아가는 길목이 용의 뿔이 난 자리이며 그 몸통이 양쪽 동네를 이어오다 용갈산에서 꼬리를 드리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보를 막고 농사를 짓다가 보니 폭포처럼 물이 흐르고 고기가 뛰어놀아 물과 용이 어우러지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 아름다운 동네다.

용의 뿔 형국으로 삽교천 방향으로 튀어나와 있는 산등성이를 경계로 ‘용두마을’과 ‘용갈산마을’로 구분된다. 지금도 용두마을을 ‘용머리’라 부르며, 용갈산마을을 ‘용갈미’라고 부르고 있기도 하다.

용두마을에는 몸 한가운데가 부러진 미륵이 있는데, 부러진 곳을 이어붙인 흔적이 남아 있는 ‘미륵불’이 있다. 1900년대 초 미륵이 벼락을 맞은 사건으로 미륵의 몸통 한가운데가 부러졌다고 전해지고 있는 미륵불이다. 사연인즉 어느 해 한여름 사람들이 논에서 일을 하는데 식사시간이 다가오자 마을의 여인이 점심을 담은 바구니를 논두렁에 두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일을 마친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논두렁에 놓여 있는 밥 바구니가 있는 곳에 가보니 큰 구렁이 한 마리가 음식을 모두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밥 먹는 것을 포기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그 순간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천둥이 치더니 불이 번쩍하고는 미륵이 두 동강이 나버렸다고 한다. 미륵이 번개를 맞았던 것이다. 미륵의 부러진 몸통이 논바닥에 뒹굴었지만 엄청난 무게 때문에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노인의 꿈에 백마(白馬) 한 마리가 나타나 미륵의 몸을 다시 이어 붙여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곧바로 사라졌다고 한다.

노인의 꿈 이야기가 알려지자 동네사람들이 힘을 합쳐 부러진 미륵의 몸통 부위를 제자리로 가져와 부러진 부위에 회(시멘트)를 이용해 다시 붙였다고 한다. ‘용두마을 미륵불’은 이후에 도난을 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지만, 지금은 해마다 칠월칠석날 ‘미륵제’를 지내고 있으며, 동네 사람들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주민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 ‘용두마을 미륵불’은 도난을 당해 다시 찾아 왔을 때에는 용두마을과 용갈산마을 사람들이 함께 미륵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해마다 정월 보름날이면 용두마을 사람들은 용갈미(용갈산마을) 사람들과 함께 미륵제를 지내곤 했는데, 양쪽 마을에서 시루떡을 해서 미륵 앞에 모여 정성껏 제를 올리면 그해 1년이 평안하게 지나는 것만 같았다고 전한다. 

하지만 30여 년 전 동네에 교회가 생기고 기독교 신자가 늘어나면서 미륵제를 꺼리는 분위기가 마을에 형성되면서 개인별로 명절에 제를 올리는 방식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연으로 인해 미륵제가 잠시 중단되었을 때에 우연한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동네의 젊은 사람들이 자꾸 사고를 당하는 흉한 일이 자주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마을 어른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미륵을 용갈산의 수호신으로 생각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아 다시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동네는 다시 평온해 졌고 지금은 한집도 빠짐없이 미륵제에 참석하고 있으며, 미륵제를 위한 마을의 재산도 조성해 해마다 안정적으로 미륵제를 지내고 있다고 전한다. 

지금은 용갈산(용갈미)마을 사람들만이 참석해 해마다 미륵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용갈미 주민들은 해마다 칠월칠석날 미륵제를 지내기 위해 세대별로 쌀과 돈을 추렴해 제물을 마련하고 떡을 하는 등 보통 가정에서 제사상을 차리듯 음식을 진설했다. 제주는 그날의 생기복덕을 따져 선출하고 유사 역시 운이 닿는 사람이 맡았다고 한다. 

이처럼 옛날에는 집집마다 돌면서 추렴을 했지만 최근에는 동네의 공동재산을 활용해 부녀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한다. 미륵제에는 팥시루떡과 돼지머리는 반드시 놓는다고 한다. 오전 10시경 시작해 정오 무렵에 제의가 끝나면 동네 주민들 모두가 모여 음복하고 풍장을 치며, 용대기를 들고 하루종일  즐거운 축제의 시간을 보낸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칠월칠석날 용갈미 사람들만의 미륵제가 됐는데, 미륵을 도난당했던 때에 그것을 훔쳐갔던 사람이 속죄하며 내놓은 자금이 있어 그것이 공동자산의 밑천이 돼 칠월칠석 미륵제를 무사히 지낼 수 있다고 전한다.

용갈미마을 앞에는 예전부터 삽교천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 홍수로 인한 피해는 있었어도 가뭄을 모르고 살 정도로 농사가 잘돼 부자 동네로도 소문이 자자한 마을이 바로 용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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