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관우 본지 발행인, 유럽의 지역신문을 가다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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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관우 본지 발행인, 유럽의 지역신문을 가다 ④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3.07.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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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박물관

 

▲ 세계 최대의 독일 국제신문박물관 안드레아스 뒤스폴 관장이 1997년 이후 소장된 한국의 신문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홍주신문은 창간호 등 3개호가 국제신문박물관에 소장됐다.

 

 

 

 

 

홍주신문, 세계 최대 '신문박물관'에 소장되다

아헨에 세워진 최초 언론박물관
각국 신문 등 20만여종 보관 전시
본보 창간호 등 3개호 영구 보관 


신문박물관은 언론을 뜻하는 PRESS와 박물관을 뜻하는 MUSEUM의 합성어로 프레시움(PRESSEUM)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짜이퉁뮤지엄 (ZEITUNGSMUSEUM)으로 부르고 있다. 신문박물관은 신문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신문의 미래상을 가늠하는 장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세계적으로 신문박물관은 1931년 독일 아헨에 세워진 국제신문박물관(Internationales Zeitungsmuseum)을 비롯해 미국 워싱턴에 있는 뉴지엄(NEWSEUM), 일본 요코하마의 뉴스파크(NEW PARK)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도 2000년 12월 신문박물관이 설립됨으로써 1883년 한성순보가 창간된 이래 100여년 만에 우리나라 신문의 역사를 한자리에 놓고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2013년 6월 홍주신문도 독일 국제신문박물관에 소장되는 행운을 얻었다.

국제신문박물관 (관장 안드레아스 뒤스폴, Andreas Duespohl)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주 아헨(Aachen)에 있다. 세계 최초의 신문박물관이 된 이 박물관은 1886년 최초로 설립됐다. 이후 1931년 폰트거리(Pontstrasse)에 있는 '아헨의 큰 집' 또는 '아헨의 저택(Grossen Haus von Aachen)' 등으로 불리는 현재의 건물로 이전, 이 저택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일부를 개조해 현재까지 전시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후기 고딕양식의 이 건물은 1656년의 화재를 견뎌 낸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박물관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20여만 가지의 신문과 17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400여년의 신문 역사가 오롯이 전시돼 있는 곳이다. 특히 이 지역은 1850년 로이터(Reuter, 1816~1899)가 최초의 통신사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주변에 시청사와 대성당 등이 있다.

국제신문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4000여종, 20여 만부의 신문과 출판물들이 전시된 세계 최초, 최대의 언론박물관이다. 단순히 현재 발간되는 신문을 모아둔 도서관 같은 개념이 아니라, 신문의 역사와 그 신문이 발행되던 시기의 정치문화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이렇듯 언론의 역사와 신문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를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시방법도 기존의 틀을 벗어나 주택의 크고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으로, 벽면과 서랍 등을 철저하게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의 최첨단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9~1902)가 논설위원을 지내며 '드레퓌스(Dreyfus) 사건'의 부당성을 폭로한 글이 실린 1898년 1월 13일 자 프랑스신문 '로로르(L'aurore)'

이 박물관은 아헨에 거주하던 재력가 오스카 폰 포르켄베크(Oscar von Forckenbeck, 1822~1898)의 신문 컬렉션이 박물관의 기원이 됐다. 오스카 폰 포르켄베크는 현학적인 취미를 가진 독일 사람이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운하관광을 하던 중 우연히 배의 갑판 위에서 신문 한 장을 주웠는데, 날짜가 한참 지난 신문이었다. 이 순간 신문이 하루의 생명밖에 못가면서도 매우 독특한 문화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신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결국 날짜가 지나도 생명력을 갖는 신문의 독특한 매력에 이끌려, 그 이후부터 그는 실제로 유럽 각국을 돌면서 여러 가지의 다양한 신문들을 수집했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이 일화는 독일 아헨에 자리 잡은 국제신문박물관이 탄생하게 된 동기를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가 기증한 자료(신문)들을 가지고 아헨에서 1886년에 신문박물관을 만들게 된 것이다. 1931년에 현재의 위치로 박물관이 이전했는데, 현재의 건물은 원래 '아헨의 큰 집'이라는 뜻의 '그로스 하우스 폰 아헨'이라는 회색 벽돌 건물로 15세기경 귀족의 저택이었다고 한다.

국제신문박물관이 자랑하는 소장품은 신문(독일어 Zeitung)이라는 표현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인쇄물들,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막 시밀리안 1세의 사후 후계체제를 다투는 각 지역 제후들의 동정이 첫 보도대상이었다고 한다. 물론 호기심을 충족시킬만한 희귀신문들도 많다. 담뱃갑만한 크기의 아주 작은 신문 '디 아리오디 로마'라는 신문부터 1.5m 크기의 가장 큰 신문이며, 손으로 직접 쓴 신문, 희귀언어로 제작된 신문 등 역사와 모양새도 다양하다. 1605년에 발행된 최초의 신문인 스트라스부르의 '렐라치온(Relation)'을 비롯해 1609년판 신문 등과 세계에서 가장 작은(3.5cm×2.5cm)신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브라질의 '보사 시뇨리아(Vossa senhoria)' 등의 신문도 진열돼 있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신문과 큰 신문, 초기에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신문 등 재미있는 전시품들이 많아 관람객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논설위원을 지낸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9~1902)가 '드레퓌스(Dreyfus) 사건'의 부당성을 폭로한 글이 실린 1898년 1월 13일 자 프랑스신문 '로로르(L'aurore)' 등도 관심을 끌며 눈에 띄는 신문이다. 이밖에 1848~1849년의 혁명신문, 19세기 유럽의 유대인 신문, 1839~1930년의 북미의 독일어신문 등도 관람할 수 있다.

 

 

국제신문박물관은 '언론의 호적사무소'로 불리기도 하며,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20여만 종류의 방대한 신문자료와 관련 사진, 서적들을 유형별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교육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언론학자들의 연구 자료로도 제공하고 있다. 이 박물관에 속해 있는 도서관은 3000여 권의 신문을 비롯해 각종 언론관련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 회의실과 도서관에는 지역 대학과의 산학협동 차원에서 언론전공 대학생들의 강의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 신문박물관에 우리나라의 신문들이 전시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이후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997년 이 박물관에는 한국의 신문이 소장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동아일보' 등 몇몇 신문이 전시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홍주일보사는 '2009년 6월 홍주신문 창간호와 2013년 신년호, 5월 30일자 홍주신문'이 국제신문박물관에 소장됐다.


'카롤링거 왕조 르네상스' 중심지 

■ 독일 아헨은 어떤 곳 

국제신문박물관이 있는 아헨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th Rhine-Westphalia)주에 있는 광공업 도시다. 쾰른 남서쪽 70km 지점에 있으며, 네덜란드·벨기에와의 국경에 접하고 있다. 라인강 하류 유역에서 엠스강 상류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1946년에 과거의 프로이센령(領)인 라인지구의 북부와 프로이센령 베스트팔렌, 리페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뮌스터를 중심으로 엠스강 상류 유역의 저지대는 비옥한 농업지대를, 루르탄전을 배후지로 하는 라인강 하류지방은 역사적으로 독일 광공업의 핵심지다. 아헨은 아르덴 고원의 북쪽 사면에 위치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73.4℃의 온천이 솟아 예로부터 휴양지로 이용돼 왔다.

로마시대부터 쾰른에서 아헨을 거쳐 브뤼셀·파리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발달했다. 샤를마뉴 때에는 프랑크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으며 813~1531년 때때로 독일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제국의회·종교회의·평화회의가 열리는 등 정치의 중심지로, 학자·문인들이 모여들어 이른바 '카롤링거 왕조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됐다. 각종 공업발전이 활발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에 의해 시가지의 대부분이 파괴돼 미술관 등 역사적인 건축물도 파괴됐다. 아직까지 샤를마뉴의 무덤과 대성당, 고딕양식의 시청사 등이 남아 있으며, 주립공과대학이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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