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 새, 그리고 미인(美人)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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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 새, 그리고 미인(美人)들
  • 김세호<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
  • 승인 2015.02.2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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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探鳥) 여행에서 배우다

 

▲ 흔히 금실 좋은 부부로 비유되고 있는 원앙 한쌍.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가니/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임제(林悌,1549~1587)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원앙침 비취금 어디 두고 얼어 자리/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생몰 미상의 기녀(妓女), <한우가(寒雨歌)>

원앙금침(鴛鴦衾枕)은 부부가 함께 덮는 이불을 말한다. 원앙침은 원앙을 수놓은 베개와 이불. 비취금은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비취새를 수놓은 이부자리다. 원앙(鴛鴦)은 오리과에 속하는 물새로 수놈은 원, 암놈이 앙. 원앙은 흔히 금실 좋은 부부에 비유된다. 원앙 역시 수컷이 매우 아름답다. 천연기념물 327호. 전국의 산간 계곡, 저수지, 수원지, 냇가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열이전(列異傳)》에 원앙의 부부애에 관한 고사가 나온다. 송나라 강왕(康王)이 시종 한빙의 미모가 뛰어난 처 하씨(河氏)를 첩으로 삼으려고 수작을 부려 남편 한빙이 견디다 못해 자살하고, 그 아내는 뒤이어 남편과 같이 묻어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자살한다. 그러나 왕은 그들을 함께 묻지 않고 마주 보게 묻어주자 두 무덤에서 각기 가래나무가 자라나 줄기가 뒤엉켰다. 그 후 원앙새 암수가 나타나 그 나무 위에서 둥지를 틀고 밤낮으로 슬피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이런 애틋한 고사와는 달리, 원앙새가 바람을 피우지 않고 일부일처에 충실하다는 속설은 옳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는 원앙의 수컷이 다른 암컷과 교미를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고 한다. 특히 수놈은 매년 짝을 바꾸어서 새장가를 든다고 한다. 1년 내내 신혼생활을 즐기는 셈이다. 그러니 사이가 좋게 보이는 모양이다. 원앙지계(鴛鴦之契)나 ‘원앙 같은 부부’라는 말은 1년이 아니라 평생을 원앙처럼 지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원앙과 거위의 경우 본처(?)가 똑똑히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암컷이 나타나면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조류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은 전한다. 일정한 독립적인 영역을 갖고 생활하는 새들을 대상으로 한 DNA 추적조사에 따르면 남편이 있는 많은 암컷들이 친부(親父)가 아닌 수컷들의 자식을 낳고 있었다고 한다. 암컷이 기회가 닿는 대로 이웃의 다른 수컷 아저씨들과 놀아났다는 얘기다. 번식처에 들어간 암컷의 상당수는 이미 처녀가 아니며, 암컷들이 심심찮게 혼외정사를 즐긴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특히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오리과의 조류에 대한 최근의 한 DNA 조사결과에 따르면 어미 새의 새끼 중 약 40% 정도는 서로 다른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암컷이 수컷 모르게 혼외정사를 즐겼다는 반증이다.

저 산의 딱따구리는/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우리 집 멍텅구리는/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최인호(1945~2013), 《길 없는 길》 중에서

일부일처라는 결혼제도의 정착에는 수컷들의 은밀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합의가 숨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채취와 수렵 시대부터 집밖에서 생존을 위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야 하는 수컷들이 암컷을 두고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경쟁을 하기 보다는 서로의 암컷에 대해 독점을 인정해서 수컷끼리의 평화 공존을 도모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 천연기념물 37호인 원앙새가 서로 마주보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일부일처제는 하나의 강요된 이데올로기라는 결론도 가능하다. 따라서 수컷이 유지하고 있는 일부 국가의 일부다처제는 그 존속이 의심스럽다는 주장도 역시 설득력을 갖는다. 《안나 카레니나》, 《주홍글씨》, 《채털리 부인의 사랑》, 《위험한 관계》 등 인기를 모은 소설들은 일부일처에 만족하지 못하는 수컷과 암컷들의 다양한 혼외정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특히 생물 종의 모두는 자기 파트너를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암컷은 자신의 성관계를 숨기고 수컷은 자신의 성경험을 과장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수컷은 또 항상 다른 암컷과 성교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덮치는 수컷’과 ‘당하는 암컷’만 있는 생태계가 아니다. 새들도 바람을 많이 핀다. 이것은 수컷뿐만이 아니라 암컷도 마찬가지다. 많은 새들이 일부일처제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고 바람을 피우는 경우가 많다.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Helene)는 새알 속에서 태어난 경국(傾國)의 아름다운 여인.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백조(白鳥)로 변신, 목욕을 하는 레다 왕녀(스파르타 왕의 비)와 관계해 낳은 새알에서 나온 딸이다. ‘1,000척의 배를 출항하게 한’ 파리스와 헬레네(유부녀이자 그리스 여왕)의 혼외정사(婚外情事) 연애사건에는 새와 미인(美人), 그리고 전쟁이 얽혀 있는 거대한 오디세이(Odyssey)다.

남편이 떠난 외로운 밤이 두려워/헬렌은 손님의 따뜻한 가슴에 안겨 누웠네./........./헬렌은 결백하며, 그녀의 연인도 결백하다네./그들은 누구나 할 짓을 했을 뿐이니. -오비디우스(로마의 시인)

1헬렌(Helen)은 전함(戰艦) 1000척을 발진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미인의 얼굴을 말하고, 1밀리헬렌(millihelen)은 전함 1척을 움직이게 하는 여자의 미모를 나타낸다. 이런 헬렌(Helen)이라는 미모의 단위는 웃자고 하는 유머의 일부일 뿐,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인이란 꽃 같은 용모에다 새 소리 같은 목소리, 달 같은 정신, 버들 같은 자태, 옥으로 뼈를 삼고, 얼음과 눈으로 살결을 삼으며, 가을 물 같은 자태로 시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내가 무어라 더 할 말이 없구나.... -장조(張潮,1650~?) 《유몽영(幽夢影)》

침어낙안지용(沈魚落雁之容) 폐월수화지모(閉月羞花之貌). 빼어난 미인을 말한다. 물고기도 물속으로 들어가고 기러기도 놀라 내려앉고, 달도 숨고 꽃도 부끄러워 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인을 형용한다. 화용월태(花容月態)는 꽃 같은 얼굴과 달처럼 고운 자태의 아름다운 여인이다. 단순호치(丹脣皓齒)는 붉은 입술과 흰 이로 아름다운 여자의 비유다. 천향국색(天香國色)은 모란꽃이다. 천하제일의 향기와 자색을 겸비한 절세미인이다.

미인을 만들어내는 성형수술이 대세가 되어가지만, 누가 미인임을 결정할 수 있는가는 하나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완벽한 미를 평가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예술과 미학, 기하학의 영원한 숙제로 보인다. 뛰어난 화가도, 영화감독도 아니고, 성형전문의도 아니고, ‘제 눈에 안경’이고 조물주의 알 수 없는 조화일 것이다. ‘뼈와 살의 미묘한 콤비네이션’이 만드는 미인이라는 물리적 기준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갑돌이에게는 갑순이가 최고다. 또 이 세상의 주류들이 인정하는 미인도 있고,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미인도 있을 것이다. 겉의 얼굴 보다 속의 마음을 보고,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남다른 심미안(審美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첫눈에 반할 수 있어야 미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남선녀(善男善女)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시정잡배(市井雜輩)· 탕남탕녀(蕩男蕩女)가 보는 미인도 있고, 옥골선풍(玉骨仙風)· 대인군자(大人君子)가 인정하는 미인도 있다. ‘허리 아래는 다 무비일색(無比一色)’이라는 말도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딸들, 모든 어머니들, 모든 여인들은 모두 미인이다. 따라서 모든 여성은 미인이므로 공주(公主)나 여왕(女王)처럼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면 어설픈 페미니스트의 로망 섞인 주장이 될 것인가. 미인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여성의 미는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측정이 과연 가능한가. 그러나 인기투표나 다수결은 가능하지 않을까.

눈독을 들이는 미인에게는 천금을 주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지만 가난한 친구에게는 백금을 주는 일도 드물다. 준마(駿馬)를 사는 데는 반드시 수백 금을 들이지만 마부를 사는 데는 수십 금을 넘지 않는다. 친구가 미색(美色)보다 못하고 사람이 가축보다 못하단 말인가. -성대중(1732~1809), 《청성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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