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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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 (14)
  • 김경미 기자
  • 승인 2015.12.11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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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의 역사를 간직한 허물어진 사기소 새터공소

박해시기 이후 1898년 새롭게 일군 내포지방의 교우촌
사기소지역에 정식으로 공소 설립된 시기는 1898년이다
퀴를리에 신부에 의해 새터 공소가 설립된 것은 1901년

 

 

 

 

 

▲ 사기소리 새터공소. 신자가 줄면서 폐쇄된 이후 폐가로 변하고 있다.

 

 

 

 

내포(內浦) 지방은 한국 교회 중에서도 가장 많은 천주교회 사적지와 교우촌, 그리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공소들이 있는 곳이다. 당진시 면천면 면천로 198-39 (사기소리 산 119) 에 자리한 사기소리의 새터(혹은 새터말)는 사기소 공소 강당이 있는 마을이다. 사기소리는 면천 소재지에서 4.5km 정도 되는 곳에 있다. 이곳은 윗 사기소와 아래 사기소, 새터라는 세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마을은 윗 사기소이다. 천주교 교우촌 새터라는 곳은 사기소천 건너 웅산 자락에 천주교 신자들이 새로 일군 마을이라 해서 ‘새터말’이란 이름이 붙여진 박해시기 이후 교우촌이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의 ‘택리지’에 의하면, ‘내포(內浦)’란 과거에 예산, 당진, 홍성, 서산 일대를 일컫던 지방 명으로 아직도 예산군 삽교읍에 자연 촌락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내포지방은 어디를 가나 천주교 신앙의 발자취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이들 교우촌이나 공소들은 100여 년간의 탄압을 받으면서 산속의 계곡으로 숨어들어야 했던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이 자유기를 맞이한 이후에 처음으로 일군 터전이다. 또 이곳에는 박해의 흔적, 순교자들의 숨결, 그리고 이어지는 가난과 극복의 과정, 복음 전파를 위한 노력 등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지역이다.

사기소 공소는 아래 사기소에서 남쪽으로 도로를 건너 500m쯤 되는 곳, 즉 사기소천 너머 웅산(253m)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천주교 신자들이 새로 일군 마을이라 해서 ‘새터말’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지역에 정식으로 공소가 설립된 것은 1898년이었다. 당시 양촌(현재의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거주하던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1863~1935, 레오) 신부가 처음으로 사기소를 방문하고 윗 사기소(64명)와 아래 사기소(58명) 두 곳에서 공소를 치른 것이었다. 이때 새터말 신자들은 아래 사기소에서 성사를 본 것으로 추측된다. 퀴를리에 신부에 의해 새터 공소가 설립된 것은 1901년이었다. 그러나 사기소(점말)의 두 공소는 그 뒤 신자들이 이주하였고, 따라서 현재는 그 유래를 잘 알 수가 없다.

사기소지역의 신자 수가 줄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생활의 어려움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옹기마을에서는 점토가 부족하여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했고, 새터에서는 가뭄이나 좁은 농토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1901년의 교우 수(새터 48명, 사기소 130명)에 비하여 1910년 교우 수(새터 32명, 사기소 55명)가 현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비록 신자들은 줄어들었지만, 남아서 교우촌을 지킨 신자들은 공소 회장을 중심으로 신앙을 지켜 나갔다. 1950년경 양윤돈 타대오가 공소 회장 재임 중 새터와 사기소의 신자들이 모두 새터에 있는 그의 집에 모여 공소를 치르게 되었다. 따라서 그 중심지는 자연히 새터가 되었고, 마침내는 두 마을의 신자들이 힘을 합쳐 1956년에 현재의 공소 강당을 건립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한옥 기와에 10칸 정도의 크기인데, 사기소천 건너 언덕, 즉 새터말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5가구 중 4가구가 신자 집안이지만 공소는 폐쇄된 채 공소의 절반은 허물어져 폐허로 변해 있다.

공소가 자리하고 있는 땅의 주인인 백 씨 신자에 따르면 “수년 전부터 공소자리를 제공할 테니 새로 공소를 짓자고 하는데도 반응이 없어”라고 말끝을 흐리면서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역사가 꽤 오래됐어. 새터 공소가 생긴지 110년(2015년 현재 114년)이 넘은 역사적인 자리이고, 신앙의 모태지. 지금이라도 새롭게 공소를 짓겠다고 하면 땅을 희사할 마음이 있지. 허물어진 뼈대라도 건져서 복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지. 몇 번 본당을 통해 건의했지만 감감 무소식이야. 교황님 방한이후 변화가 있으려니 기대도 했지만 이번에도 허사인 것 같아.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대단한 의미가 있는 곳인데, 저렇게 폐허가 돼 방치돼 있으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 사기소 공소 이웃의 옛 공소로는 △잣치(잣디)공소 : 현 당진군 순성면 성북리, 1883년(두세 신부), 1884년(128명), 1888년(54명)  △태봉골공소 : 현 당진군 순성면 성북리, 잣치 아래 마을, 1883년(두세 신부), 1884년(40년) △성주골공소 : 현 당진군 면천면 삼웅리, 1884년(22명), 1885년(27명) 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현옥 전문기자/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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