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이자 박물관장 이재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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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박물관장 이재인을 만나다
  •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09.2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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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이다>홍성의 인맥-홍성출향인을 찾아서 <15>

이재인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이자 충남문학관 이재인 관장이 문인들의 인장을 소개하고 있다.

문학청년에서 교육자, 소설가, 문학관 관장
인과응보, 세상에 저절로 이뤄지는 것 없어  
개가 물고 온 500만원 돌려주고 큰 것 얻어
흥선대원군 인장부터 각계 문인들 인장가득

예산군 광시면 소재지에서 곳곳에 세워진 한국문인인장박물관 표지판을 따라 논밭이 펼쳐진 풍광을 즐기며 3Km를 달리면 운산리에 박물관겸 문학관에 다다른다. 황금색으로 물든 들녘 사이에 위치한 아담한 박물관은 총 2층으로 1층은 충남문학관과 필통박물관 겸 교육실이, 2층에는 문인들의 인장을 모아놓은 인장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 도착하자 이재인(72) 관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기회들을 만납니다. 저는 어린 시절 집안이 어려워 초등학교 밖에 나오질 못 하고 나무를 하러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남의 집 머슴을 살라고 하는데 도저히 할 수 없어서 16살 때 처음으로 가출이란 것도 해봤었죠. 그랬던 제가 대학을 가고, ‘악어새’라는 작품을 써서 대학 교수에 임용 되고, 이제는 고향에 내려와 문학관과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지금, 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 관장은 예산군과 홍성군의 경계지역인 예산군 광시면에서 나고 자랐다. 10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졸업 후에는 집안일과 글을 쓰며 지내던 그에게 그의 아버지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권유했다. 1960년대 남의 집 머슴을 하면 쌀이 두 가마니, 꼬박 3년을 살면 6가마가 주어졌다. 군내 유명한 백일장과 이승만 대통령 탄신 기념 글짓기 전국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신인작가 등단 응모작에 입선되던 그는 아버지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한국문인인장박물관 전경. 1층은 충남문학관의 사무실과 필통박물관이 있으며 2층은 집필실과 인장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그날 이 관장은 집안을 뒤져 마늘, 밤, 계란 등을 챙겨 첫닭이 울자 홍성 읍내로 내달았다. 홍성역에 도착해 무사히 기차에 오른 이 관장이 한숨을 돌리고 있자 그를 수상히 여긴 공안에 도둑으로 몰려 다음 정거장인 예산역에서 강제 하차됐다. 16세에 꿈꾼 서울로의 탈출은 몇 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지서에서 집으로 연락이 가고 집으로 돌아온 이 관장은 가출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 몽둥이 찜질을 받고 앓아 누웠다. 

“며칠 고생을 하고 서고에서 꽂혀있던 ‘현대문학’을 펼쳤어요. 오영수 선생님의 ‘기질’을 읽자마자 전율이 흘렀습니다. 오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며 제가 쓴 소설을 보고 지적해달라며고 편지를 보냈어요. 어느 날 선생님께서 답신을 주셨습니다. 저를 계속해서 이끌어주신 선생님 덕분에 저는 대학 국문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지요.”

▲ 이재인 관장이 베트남전 참전을 바탕으로 베트남 여인의 관점에서 쓴 소설인 '악어새'. 10만부가 팔린 소설 '악어새' 출간본.

지금까지 많은 기회가 왔고 기회를 잡았는데 이 관장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계기는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청주에서 교직생활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35년 전 고등학교 교사 재직당시 보충수업비 수당이 시간당 700원 이었던 시절이었다. 청주의 시골 주택에서 개를 한마리 얻어서 키웠었다. 어느 날 산책하라고 풀어준 개가 가방 하나를 물고 들어왔다. 가방에는 현금 500만원과 월급봉투가 들어있었다. 이 관장은 하룻밤을 고민하다가 돌려줄 결심을 했다. 

“월급봉투에 써 있는 한국도자기에 전화를 걸어 주인을 찾아주었죠. 500만원은 시집가려고 모아놓은 한국도자기 주임의 곗돈이었어요. 사례비 5000원을 받고 무사히 주인에게 돌아갔으니 그걸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길은 거기서부터 열렸는가 봅니다. 500만원을 돌려주고 그 이상의 지원을 얻게 되었죠.”

▲ 충남문학관 서재에 꽂힌 이재인 관장이 집필한 책들.

한국도자기 임원 귀에 이야기가 들어가고 한달 후에 식사 자리가 잡혔다. 고기를 실컷 먹고 일어서는데 한국도자기 부사장이 찻잔세트부터 탕수육 그릇까지 도기 네 박스를 주면서 봉투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100만 원짜리 수표가 들어있었다. 이 관장은 당시 100만원짜리 수표의 잉크색이 무슨 색인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 관장은 부사장에게 자신의 소설책 한권을 선물하고 그 책이 마음에 들면 자신과 친구로 지내자고 말하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몇년 후 다시 한국도자기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술진흥비 명목으로 지원을 해줄테니 러시아와 중국 등지를 견학해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보라는 제안이었다. 

해외견학 후 쓴 소설이 많이 팔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광고를 많이 하고 판매가 되지 않자 작은 출판사에 위기가 닥쳐왔다. 출판사와 작가는 인세계약으로 맺은 관계였으나 이 관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출판사와 계약 없이 원고를 내줬다. 그가 내준 원고는 중고등학생이 읽어야할 소설을 추천 요약해 놓은 ‘우리소설 50선’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문광부 추천 중고생이 읽어야 할 필수도서에 선정돼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다. 

“어떤 사람은 저한테 도깨비라고도 하더군요. 남들이 보기엔 제 복이 저절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우리가족과 개만 알고 있는 500만원을 돌려주어 많은 행운을 받고, 그로 인해 해외도 다녀오고, 기대를 모았던 소설이 팔리지 않자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이 모든 것을 겪어보니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그릇을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문인인장박물관에서 소장한 거북이모양의 흥선대원군 인장.

문학관에서 진행된 인터뷰 후에 인장박물관으로 가기위해 밖으로 나섰다. 문학관에서 인장박물관에 가려면 신발을 신고 2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이 관장은 기자가 벗어놓은 신발을 신기 편하도록 가지런히 돌려 놓아주었다. 2000년 개관한 인장박물관에는 이 관장이 20살 때부터 모아놓은 작가들의 도장으로 가득했다. 이 관장이 16살 때 헌책방에서 구입한 김소월의 시집에는 소월이 스승 안서에게 드리는 글을 쓰고 끝에 낙관을 찍은 책이었다. 그 낙관이 멋진 예술품으로 느껴졌던 이 관장은 20살이 되고 오영수 은사의 집을 드나들며 서재에 놓여있는 거북이 모양의 희귀한 인장을 발견했다. 신기하여 어루만지던 그에게 오 은사는 귀한 인장을 내주었다. 지금도 그가 가장 아끼는 흥선대원군의 인장이다. 

이 관장은 고향의 자라나는 곡식들을 바라보고 박물관에 오는 아이들에게 체험교육을 하는 것이 보람이라면서 앞으로의 바람을 내비쳤다. “인지문화책을 발간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근대책에서 1970년대까지 책 뒤에 붙어있던 인지를 혼자 알고 모은다면 그것은 죽은 문화가 되지요. 문화적 혜택이 상대적으로 적은 시골에서 다양한 문화운동을 펼쳐 지역민들과 국민들과 나누겠습니다.”

이재인 관장…                       
이재인 관장은 1945년 예산 광시에서 태어나 시래기죽을 먹고 하루에 나무 세 짐씩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9세에 소학과 통감을 읽고 10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6년간 급장했다. 초등졸업 후 고학과 독학으로 공부를 했으며 1964년 경기대학교 국문학과에 특기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학부시절 베트남전 지원군으로 파병됐고 후에 베트남전을 무대로 한 소설 ‘악어새’를 발간해 10만부가 판매돼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이 관장은 이 소설로 경기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로 임용됐다. 장편소설로 ‘악어새’, ‘정중부’, 흔들리는 성(城) 외 10권 있고 단편소설로 ‘아우의 누드집(일본어 판 동시 발행)’ 등이 있다. 이외 수필집, 비평집, 문화론집 외 70여권의 저서가 있다. 소설부분 수상으로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문학상, 조국문학상, 국제문학대상을 수상했으며 수필부분 원종린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6년 박물관 부분 한국 최우수 문학관상과 한국 박물관인상을 수상했다. 경기대 명예교수이자 현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충남문학관장, 한국사립박물관협회 수석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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