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축산으로 사람·동물 함께 사는 ‘호웨이막깽’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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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축산으로 사람·동물 함께 사는 ‘호웨이막깽’ 마을
  • 글=장윤수 기자/사진=한기원 기자
  • 승인 2016.10.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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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친환경 축산의 미래, 유기축산에서 답을 찾다 <7>

유기축산, 농가와 지역 상생할 수 있는 축산의 큰 해법
김덕수 대표, 고산족 삶의 변화 이루는 ‘돼지은행’ 운영
단순한 돼지 사육 넘어서 고산족의 인식 변화까지 이뤄
삶의 질 높이고 미래 비전 제시하는 모델 만들어나간다

▲ 김덕수 대표가 유기축산의 시범모델을 만들고 있는 호웨이막깽 마을.

유기축산의 의미는 건강하고 안전한 축산물 생산을 넘어서 지역과 상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홍성군의 경우 전국 최대의 축산군이라는 명성을 떨치고 있으나 최근 충남도청 신도시인 내포신도시를 비롯해 각 읍면에서도 축사 악취로 인한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는 등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근본적인 축사 악취 해결을 위해 이전이나 폐업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는 오랜 기간 축산업에 종사해 온 농민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유기축산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이전과 폐업 외의 방법으로써 농가와 지역민이 상생할 수 있는 또 다른 해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유기축산 정책을 만들고 이를 모든 농가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농가별 규모나 특성에 따라 적용 가능성 등의 차이가 현저하기 때문이다.

▲ 고산족 주민들은 산을 불태워 밭을 일구는 화전민들이 대부분이다.

태국 유기축산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하래썽 미션재단(Five and Two Mission Foundation)의 김덕수 대표는 지역민과의 상생의 시범모델이 될 수 있는 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고산족 주민들이 살고 있는 ‘호웨이막깽’ 마을의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돼지은행’을 만들고 직접 분양하며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있는 것이다. 고산족들은 대부분 정부로부터 정식 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태국 북부와 미얀마, 중국 등지에 걸쳐 폭넓게 거주하고 있다. 산에 거주하다보니 화전민으로 산을 불태워 밭을 일구고 옥수수 등의 농작물을 키우며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고산족들의 삶은 결국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제대로 된 교육이나 복지를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고산족들은 몸이 아파 병원을 가게 되거나 자녀의 결혼 등 큰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급전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고리대금업에 의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국 고금리로 돈을 빌리고 더 큰 가난에 빠지는 계기가 된다. 김 대표가 돼지은행을 생각하게 된 것은, 고산족들의 문화에서 돼지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산족들은 결혼 등 큰 행사를 치르게 되면 손님들에게 돼지를 잡아 대접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고, 새해가 되면 집집마다 돼지를 잡아 귀한 손님들이 방문할 때 대접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돼지은행에서 돼지를 빌리면 돈을 빌리지 않아도 행사를 치를 수 있고 고금리의 돈을 빌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고산족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고산족들은 조혼 문화가 확산돼 있어 일반적으로 15~16세가 되면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녀들을 위해 부모가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도 돼지은행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고산족의 가난하고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면서도 유기축산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열 수 있도록 돼지은행을 만든 것이다. 이는 어려운 고산족들에게 단순하고 일회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 여러 NGO나 사회적 기업들의 방향 역시 일회적인 도움이 아닌 자립으로 가고 있는데 이러한 대세에 따라 돼지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 주민 짜린 씨가 돼지은행을 통해 분양받은 돼지.

돼지은행은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돈 대신 돼지를 빌려간 뒤 직접 키우고 얻은 소득을 되갚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아직까지는 2년 정도가 지난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유기축산으로 돼지를 키우도록 강요하지는 않고 있으나, 돼지를 빌려주기 전 미생물 발효법 등을 교육해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왕겨나 쌀겨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돼지를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해나가고 있다. 향후 자리가 잡히고 고산족 주민들의 인식이 개선되면 폭넓은 유기축산의 가능성을 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현재까지 돼지은행을 통해 50가구에 130여 마리의 돼지가 분양돼 있다.

이러한 돼지은행의 등장은 고산족들의 삶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특히 마을 내에서 인식의 변화는 아주 큰 변화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가 초기 돼지를 키울 때만 해도 농장 흙에는 지렁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산에 농사를 짓기 위해 제초제를 뿌리고 옥수수를 키웠기 때문인데 단년생 작물은 땅을 점차 죽인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유기축산의 범위를 넓히며 축분을 활용해 고무나무를 식재했는데 점차 땅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지렁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땅을 바르게 회복시키고 실질적인 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수년이라는 시간의 인내가 필요한데, 실질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고산족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기다림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이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한 부분임을 강조했다. 건강한 땅에서 얻은 신선한 농작물을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고, 이 기다림을 함께 해 줄 수 있는 소비자들이 분명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김 대표가 이러한 사업을 태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에는 훌륭한 모델이 많이 있지만 태국에는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자신이 조금이나마 희생하고 어려움을 감당하며 노력해 모델을 만들어낸다면 분명 태국에서도 새로운 유기축산과 농업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산족들은 그간 화학비료만을 사용할 뿐 축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유기축산을 통해 얻은 각종 가축의 축분을 사용하는 양이나 빈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호웨이막깽 마을 어린이들이 돼지농장 인근에서 뛰놀고 있다.

이밖에도 고산족의 생활수준이 높아진 것도 큰 변화다.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았던 고산족들은 교육이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돼지은행을 통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자녀들을 교육기관에 보내게 되고 교육을 받은 자녀들은 고향에 돌아와 마을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교육은 본능적이고 욕구에만 충실했던 삶을 보다 크고 넓은 미래를 기대하는 삶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김 대표가 시범모델로 삼고 있는 호웨이막깽 마을의 어린 아이들도 시내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한 뒤 대학교까지 진학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태국의 경우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우수한 성적을 거둬 학습에 매진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 돼지은행을 점차 확산시켜 고산족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더욱 주력할 방침이다. 또한 호웨이막깽 시범마을을 통해 태국 내 유기축산의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통한 발전적인 사례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미/니/인/터/뷰 - 태국 호웨이막깽 마을주민 짜린 씨

“돼지 키우며 모든 것이 달라졌죠”

▲ 마을주민 짜린 씨.

김덕수 대표로부터 돼지은행을 통해 분양받은 돼지를 기르고 있는 호웨이막깽 마을주민 짜린 씨는 돼지를 키우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돼지가 없을 때에는 가난하고 어려운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돼지를 분양받으면서 돈을 빌릴 필요가 없어졌고, 아이들의 교육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됐죠. 특히 돼지를 건강하게 기를 수 있는 유기축산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전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급급해 삶의 다른 영역에 대해 생각해볼 수 없었으나 점차 미래와 삶의 방식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고 말하는 짜린 씨.

“앞으로도 돼지은행을 통해 분양받은 돼지들을 잘 길러볼 생각입니다. 단순히 돼지를 분양받았지만 제 삶은 참 많은 부분들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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