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 몰라요, 비빌 언덕은 남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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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 몰라요, 비빌 언덕은 남편뿐”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8.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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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0>

광천읍 송혜란·권태범
송혜란 씨가 남편 권태범 씨와 함께 운영하는 홍주교육에서.


다문화가족들에게 한국생활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우선 넘어야 할 큰 벽이다. 게다가 세대차이로 인한 갈등도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필리핀 출신 송혜란(29) 씨는 신혼 초부터 고부갈등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혜란 씨가 너무 잘 했기 때문도 아니었고, 성품이 좋고 너그러운 시부모를 만나서도 아니었다. 시부모 두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고부갈등이 뭔지 모른다. 비록 갈등이 불가피하더라도 시어머니의 존재는 며느리에게 비빌 언덕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결혼 후 원래 이름이었던 마일라 벨리아(Myla Belia)대신 송혜란이라는 한국이름을 얻었다. 그녀가 성으로 택한 송 씨는 어머니의 성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성을 따랐습니다. 지금 살아 계셨으면 굉장히 좋아하셨을 텐데 우리가 결혼한 것도 못 보고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래도 일찍 며느리를 데려오지 못한 불효가 가슴속에 사무치는지 남편 권태범(49) 씨가 말한다. 그래도 혜란 씨는 남편이 너무 잘 해주는 데다 하나 얻은 아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어 마냥 행복할 뿐이다. 혜란 씨는 8년 전 한국에 왔다. 장곡면에 먼저 시집을 와서 살고 있는 언니가 낳은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돌봄비자로 한국에 와서 조카를 돌보며 1년을 지내다가 돌아갈 무렵에 저를 소개 받았어요.”

태범 씨는 당시 나이 40을 넘겼지만 부모도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어 평생 혼자 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혜란 씨를 소개하며 자꾸 결혼을 권해 결국 독신주의를 포기하게 됐다. 가진 것이 없어도 매우 성실하고 착한 성격의 태범 씨는 혜란 씨의 마음을 곧장 사로잡았다. 결혼 후 두 부부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혜란 씨와 처음 가정을 이뤘을 때 홍성읍에서 서점 점원으로 일했던 태범 씨는 지금은 광천읍에서 자신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도 혜란 씨를 만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된 가정을 이룰 수 있었기에 태범 씨는 아내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2년 전 혜란 씨는 남편을 데리고 6년만에 필리핀에 갔다. 필리핀 중부지방의 아름다운 섬 세부 달라게트가 친정으로 10일간 지내다 왔다. 한 동네가 같은 혈연을 기반으로 하는 씨족사회여서 거의 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처가에 찾아와 한국인 사위를 환영하는 모습을 보고 태범 씨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집채만한 돼지를 한 마리 잡고 잔치를 벌이며 보답하느라 꽤 많은 돈을 써야 했지만 태범 씨는 그래도 기분이 좋았단다. 올여름 더위에 대해 견딜 만 한지 물어보니 혜란 씨도 고개를 흔든다. “한국 여름 날씨가 더 더워요! 고향은 바다가 45분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시원해요.”

태범 씨가 보충설명을 하는데 처가가 있는 동네는 해발 1000m 높이의 산꼭대기 있어 여름에도 그렇게 덥지 않다고 했다. “필리핀은 뜨겁기만 하지 습도가 없어 모자만 쓰면 더운 날도 다닐 만 합니다.”

혜란 씨에게 한국의 겨울 추위는 어떨까? 그녀는 첫해가 힘들었지만 그 후 적응이 되어 괜찮다고 했다. 생활력이 강한 혜란 씨는 갈수록 서점 운영이 어려워지자 두 부부가 가게에 매달릴 수 없어 작년에는 한 해 동안 장곡면까지 출퇴근하며 벽돌공장에 다녔다. 최근에는 이를 치료하기 위해 몇 달간 쉬고 있는데 9월부터는 제조업 계통의 중소기업에 재취업을 할 계획이다.

지금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영설이가 6살인데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더 낳을 생각은 없다. 군에서 지원하는 출산장려금으로도 아이 하나 더 키우기가 어렵다는 것이 태범 씨의 말이다.

혜란 씨가 한국에 살면서 좋은 점은 깨끗한 주거환경을 꼽았다. 특히 주방에서 요리하기가 좋도록 돼 있어 한국음식도 잘 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비빔밥이고, 잘 하는 요리는 빵과 삼계탕, 된장찌개, 불고기다.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광천감리교회 영어예배에 참여한다. 필리핀 출신 목사가 영어예배를 인도하는데 그 밖에도 같은 고국 출신 다문화가족을 만나 교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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