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부릴 걸 부려야지, 뭣허러 욕심을 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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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부릴 걸 부려야지, 뭣허러 욕심을 부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10.1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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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14>
김기정 1941년생으로 금마면에서 태어나 금마면으로 시집갔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몰래 옷자락만 훔쳐냈다. 몸이 불편한 딸과 함께 욕심내지 않으며 먹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년까지 일 다녔어. 근디 올해는 한 번도 못 가고 그냥 있어. 내년이면 팔십이여. 칠순 잔치는 했어. 아들이 해줬어. 우린 농사두 읎구, 먹을거만 해. 금마면이 고향이여. 대교 거기서 살다가 화양리로 이사 갔지. 우리가 6남매딘 우리 언니는 덕정리 살고 난 여기 살고 동생 둘은 서울서 살고 둘은 금마 지서 있는데 거기서 살고. 스물한 살에 왔어. 으떻긴 뭘 워뗘? 그 땐 다 어려웠지.

날에 시집살이 많이 했지. 술 잡숫고 옛날 어른들 다 그렇지 뭐. 지금은 그래도 잘 먹구 그런 할머니들이 텔레비도 못 보구 돌아가셔서 불쌍허지. 우리는 먹구 텔레비도 보는디. 신랑허구 시어머니허구 나허구 세 식구였어. 신랑 얻었어도 자기 방 와서 자라고 하고 그랬어. 그런데 가서 자나? 안 자지. 내가 가라고 했지. 가 잘 때도 있지. 옛날엔 다 그랬어. 그래 지금 호강허잖어. 시어머니는 예순세 살에 돌아가셨어. 첨 시집왔을 때 쉰다섯 살인가 그랬는데 그 땐 노인으로 생각했어. 도망갈래도 우리 친정아버지 욕 먹을까봐 못 도망갔어. 참고 살았지. 새색시가 눈물 많이 났지. 말도 못 허구. 말대꾸도 못허구. 한지 난 변소 옆에 가서 울었지. 옛날에 명주 다듬이 저고리 있잖어. 그거 잘 두드릴라면 얼매나 힘들다고. 손바닥이 다 부르터 피 나서 터졌어. 그건 그렇게 두들겨야 반들거려. 지금은 안 허지만. 우리 시어머니가 금마 장 가서 술 마시고 오다가 이 앞 냇가에 빠진겨. 그 치마저고리를 해줬는디. 냇가에 빠진 걸 사람이 건져놓고 데려가라고 기별이 온 겨. 우리 집 양반은 안 가는겨. 챙피하다고. 속상허니께 안 가는겨. 내가 업구 왔지. 나 지금은 이런데 근력 셌어. 시어머니가 나보다는 개볍지. 나 볏가마도 번쩐번쩍 졌어. 시어머니를 업고 오는데 치마 입었지, 고쟁이 입었지, 빤스 입었지. 그러믄 똥구멍으로 물이 줄줄줄 들어가. 지금 그렇게 하믄 안 살어.

그러구 동지 섣달에 칼국수 늘릴라믄 안 늘어나. 뜨뜻헌 물로 하믄 익어서 안 늘어나고 그래도 그거 해서 드리면 두 대접씩 자셨어. 그게 술국이여. 그러믄 그냥 주무시면 되는데 얘기허면서 술을 다 깨는겨. 그 얘기 허믄 옆에 앉았어야 돼. 이 동네서 우리 시어머니가 최고였어. 그렇게 저기한 사람 읎유. 그래도 내가 이기고 살았어. 그래도 오래는 안 앓고 돌아가셨어. 그러케 가니까 못 헌거만 생각나드라구. 사람은 죽어야 이름 난다구. 말 대꾸하거나 덤비거나 그러지 않았어, 무서워서. 시집 올 때까지 여자들이 술 먹는 걸 몰랐어. 지금은 학생들도 먹잖어. 그래 참, 여긴 이상도 허다. 여자도 술을 먹나 그랬지. 친정에 자주 못 갔지. 자양 가는데도 아들 혼자 보낸다? 나 가고 싶어 환장허잖어? 시집 와서 아는 사람이 있어 뭐 있어? 그래 내가 시어머니에게 저두 집에 가고 싶다고 그랬더니 가랴. 나가니 신랑은 저기 가는데 쫓아갔어. 그래서 갔네.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 까지두 성냥, 비누 이런 거 다 홍성장 가서 사다줬어. 비누 허피 쓴다고 그거 반 잘라서 줘. 그렇게 사는 사람 읎어. 그래도 티 안 내고 살았어. 그 때 무궁화 비누. 사다 주니 값을 알간? 시집 와서 10년 만에 홍성장에 가니까 변했더라구. 물건 난 것두 많고 워디가 워딘지 모르겠더라구. 자양 갔다 와서 3년 만에 친정 갔어.

리 신랑이 아들 하나 놔놓고 군인을 갔어. 그 땐 나무 해다가 떼야 허잖어. 신랑 읎으니 내가 해다 뗐지. 애는 시어머니에게 맽기구. 나무 해서 여기 올라믄 10리도 더 돼. 모가지가 부러지는 것 같았어. 밭이 저 건너 있는디 보리 해서 다발 이구 오면 동네 어른들이 그랬어. “어이, 아무개 할아버지 지게 이고 오는 어매 꺼가 더 크네.” 그러더라구. 우리 신랑 일찍 돌아가셨어. 육십에. 십 년 앓다가. 속이 나빠가지구. 내가 믹서를 칼날이 다 닳도록 미음을 해드렸어. 아침에 밥 고아서 식혀서 찬물 퍼서 양재기에 식혀. 그냥 두면 시어. 그 눔을 끓여야지. 통에 담아두고 머리맡에 놔 주고 변기 갖다 놓고 나갔다 오믄 난중에는 둘이 붙잡고 막 울었어. 너무 불쌍해서. 여기 대청이 있었어. 마루니께 높아서 으떡허다 떨어졌나봐. 일 갔다가 오니 마루가 피가 잔뜩이여. 떨어지고 올라갈려고 하믄서 발등이 다 까진겨. 갠신히 혼저 올라가 방에 누워 있드라구. 발등 깨진 거 보구 울었어. 내가 하루라도 일을 안 가믄 안 되고 으떡혀. 약 사야지, 세금 내야지. 가만 생각허니 방에 있음 피가 안 나잖어? 그래서 자물통을 하나 사서 잠그고 다녔어. 나와서 고생허는 것 보다 방에서 고생허는게 나서. 먹을 거 놔두고 못 나오게 잠그고 다녔어. 아픈디 알간? 사람이 말르면 비닐만 생겨. 닦아도 지지를 안혀. 싼 거 크림 하나 사다가 발라주니 각질이 안 일어나더라구. 여섯 달인가 일곱 달인가 일 못 다니고 병수발만 했지.

근디 가만 생각허니 음력 9월 그믐께 돌아가셨는디 벼 이삭이 나오기는 허는디 익지를 안 혀. 워떡헌댜. 돌아가시게 생겼는디 햇벼를 못 잡수고 돌아가실 거 같여. 그래 하나하나 뽑아다가 모였어. 훑어서 말리니까 요맨큼 되더라구. 그걸 워따 찔 데가 있슈? 마늘 찧는 고추 절구통에 찧었어. 그 눔으로 미음 끓여드릴라구. 저 건너 사는 할머니가 그려. 햅쌀이랑 섞으래. 그래 섞어서 미음을 해드렸어. 그래도 햅쌀을 잡숫고 돌아가셨어.

네 다니며 불쌍헌 사람 도와주고 그랬지. 60대 때. 치매 할머니, 정신없는 할아버지, 또 저기서 혼자 사는 할머니, 이쪽 윗집 아저씨. 병원 모시고 다니고 그랬지. 나도 품 팔아서 사는디 내 돈 들여서 점심 사드리구. 저 아래 사는 할머니는 자식이 자주 오질 안 혀. 내가 그 아주머니 모시구 버스 타고 다녔지. 그 할머니네는 여전 다녔지. 병원 갔다가 점심 먹을 때가 돼서 삼계탕이나 사 먹고 갈까유? 그랬더니 돈 읎다는 겨. 걱정허시지 말구 내 사들릴께. 그러구 갔어. 근데 그걸 그렇게 맛있게 드시는 거야. 나는 다 못 먹는디 그 할머니는 그 눔을 다 먹는겨. 처음 잡숴봤댜. 그래 내 그거 한 가지는 잘했다구 생각하는겨. 우리 친정 어머닌 못 사드렸어. 아들 며느리가 잘 헌께. 그래도 못 사드려서 그게 걸려.

그 할머니네 세탁기가 읎어. 낮에 빨래 이고 오믄 다 보잖어. 동네 사람이. 그래 어둑어둑허믄 보재기 큰 거 가지고 가서 싸서 우리 집으로 갔고 왔지. 그 땐 우리 세탁기 있었어. 그 눔 빨아서 말려서 싸서 갖다줬지. 옛날 할머니들은 아래가 빠져가지구 아프댜. 빤스를 빨을라믄 붉으스름해서 지지를 않더라구. 내가 돈이 읎어 고쳐드리지는 못 허구 집에 와 가만 생각허니 얇은 생리대를 대놓으믄 될 거 같아. 홍성 가는 길에 얇은 놈을 사서 대드렸어. 핼 줄 아나? 옛날 노인네가. 아주머니, 이걸 빤스 밑에 이렇게 펴 놓구서 이렇게 대갖고 입으믄 덜 슬쩍거리구 아프지 않다구. 며칠 있다 가 보니 그거 대니까 덜 아프댜. 가만 생각허니까 머리가 써지더라구. 그 눔을 빤스마다 다 붙여놨어. 그래야지 으떡혀. 넘들 몰래 쌀 십키로씩 갖다주고 그렇게 했어. 그 할머니한테는 잘했어. 의료원에 7년 간인가 있었어. 치매 끼도 있구. 내가 성당 가니까 거기를 꼭 빠지지 않구 들렸어. 가믄 나를 찾는댜. 병동 아주머니들이. 딴 사람은 가도 웃지를 않는디 나 가믄 웃어. 붕어빵이 의료원 가는데 있었어. 11시 못 돼서 5000원 어치 사서 갔어. 그 눔 잘라 드리니까 그렇게 맛있게 잡숫는디 누가 그걸 사다 줘? 아무도 안 사다 줘. 노인네가 그걸 묵고 싶었나봐. 3개를 잡숫더라구. 때 되면 누구든지 한 번 왔다가 가는 건 똑같어.

리 집 양반이 돈을 500을 빚 지고 돌아가셨어. 그러니 내가 그걸 으떨게 갚냐구. 나올데가 읎잖여. 길쌈허구 품 팔구 내가 어찌 해서 다 갚았어. 갚구서 그냥저냥 살어. 그 때부터 빚 안 얻었어. 그 때 살림이 어려우니께 그런께 빚 지구 살은거여. 지금은 밥은 먹구 사니까 잘 사는거여. 너무 부자 같은 거 나는 부럽지 않어. 그저 아프지만 않으면 살고 우리 아들, 딸 건강허기만 하믄 되는겨. 욕심 부릴 걸 부려야지, 뭣허러 욕심을 부려? 그렇지? 내 힘대로 나만 먹고 살면 되는겨.

혹독한 시집살이에도 시어머니 앞에서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던 새색시는 이제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그저 밥 먹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어머니의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머니의 구부러진 허리에 가만 손을 올려 감싸 안아드립니다. 그저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요.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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