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사랑해 그 말 들으니 오늘 죽어도 내 원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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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사랑해 그 말 들으니 오늘 죽어도 내 원이 없어”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10.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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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16>
김정례 1938년생으로 결성에서 태어나 결성으로 시집 간 토박이다. 9남매 중 둘째로 시집을 오니 일꾼까지 합쳐 21식구 밥을 해먹이며 살았다.

물세 살에 왔어. 여기가 고향이여. 여기서 금곡리로 갔다가 아배 직업 따라 도루 나왔지. 저 위 양조장 위에서 살다가 집 지어서 일루 온 지 2~3년밖에 안됐어. 나는 나이는 비록 먹었어두 사는 게 복잡혀. 나는 친정에서 9남매고 시집은 10남매여. 난 9남매서 둘째. 아배는 10남매서 둘째더라구. 고향은 은하 대천리여. 3살 먹어서 일루 이사 왔대. 우리 아버지가 육촌 형님이 방앗간 하는디 우리 아버지 열아홉 살 먹어서 데려왔어. 걸음 아장아장 걸을 때 와서 여기 와서 늙어서 지금까지 살어.

동기간이 9남매 하나 안 죽고 사는디 작년에 일곱째가 뭐가 비관해서 목 매달아 죽고 우리 여덟이 고냥이야. 어머니 아버지만 돌아가시고. 제일식품 거기가 내 바로 밑이여. 저기가 셋째. 요 바로 밑이 큰 오빠, 고 다음이 나여. 우리 아버지가 어렵게 밥 굶기고 그런 거는 아니고 내가 일곱 명을 다 키웠어. 내 밑으로 고만 날래나 그러믄 편할만하믄 또 낳구 또 낳구 애들 내가 다 입학시키구 그랬응께. 생전 놀기를 허나, 뭐 마실을 가나, 영화구경을 가나. 그런께 우리 아버지가 공무원한테 시집 보낼라 했어. 근데 식구 제일 많은데로 얘기하더라구. 그래 안 갈라 했어. 근디 당장은 괜찬다는겨. 당장은 놓치기 아깝다는겨. 얌전하대. 집안이 나쁜 사람 읎다구. 그럭저럭 허다가 나중에 어떻게 맘 잠깐 잘못 먹어 가지구 시집을 간 겨. 공무원은 분수를 알아야지. 내 이름자만 갠신히 썼는디. 연분인지 오늘날까지 살아. 그 때 그만뒀어야 하는디 뒀어야 허는디 지금은 이제 남 듣는디 혀. 넘들이 내 장점이래. 우리 시집은 10남매서 아들 셋 죽고 육 남매 살고. 내가 큰 책임을 다 맡은겨. 내가 너무 생각지 않은 짐을 안았기 때문에 나 죽으면 보라구 나 산 것을 두 장을 써놨는데 이사 오는 통에 워따가 잊어버렸어. 쉰다섯 살 까지 일 다 적었는디. 6학년 갠신히 졸업한 사람이라 글씨도 못 써. 그래도 나쁜 일 좋은 일 다 썼는디.

꾼까지 21식구 동생네 식구 다 있지. 10남매 다 있지. 큰 동생네는 따로 살아도 밥은 같이 먹구, 노랑초 담배 했어. 찌는 거 있어. 별 거 다 하드라구. 식전에 나가면 밤중에 들어오구. 2년 어떻게 버티고 살다가 난 뒷차니까 재금 내려니 했지. 근디 소용 읎더라구. 시어머니 나중에 다 모시고 똥 오줌 다 받아내고 그 짓허구 숱한 제사 내가 다 안았어. 여태까지. 난 성질이 가슴에 끓이고 못 있어. 뭐고 다 폭발해야 시원허지. 여러 식구 살고 다 해도 스트레스는 없어. 아배라도 무슨 헐소리 허면 싹 조져. 아배는 성질이 얌전허지. 난 왈패고. 딸들이 나보구 엄마 목소리 동네 다 들린다구. 야, 왜 이려 근력 있을 때 말 크게 허는거여. 병들어 죽게 되면 말 크게 못 혀. 나 말 크게 허는 거 걱정 마. 엄마는 사위 보기 미안허다구. 안 미안혀. 목소리 적은 사람 응큼하더라. 그랬어. 우리 9남매 다 얌전한디 나만 살다보니께 그래. 색시 땐 얌전했지. 넘 부끄런 얘긴데 갑상선이 있었어. 여기가 이렇게 나와 가지고 수술허려고 허는디 아배가 구강암에 걸렸어. 그 아배 살리고 그런 뒤 레이자로 98년도에 갔어. 그 약이 독해서 이가 다 빠졌어. 그러나 걱정 안 혀. 젊어서 많이 먹었으니까 몸만 건강하면 된다 하고 이빨 안 혀. 구강암으로 남편도 그러구 사는데 내가 아득아득 먹는 것두 그렇구 에라, 따라가자 그래도 아배는 틀니를 해서 나보다 잘 먹는겨. 지금까지 예방주사 작년에 처음 맞아봤어. 감기 나고 몸살 나도 주사 한 번 안 맞어. 어려서부터 밥 잘 먹구 애들도 김치허구서라도 내 정성으로 다 밥해서 맥였는디 우리 애들도 그렇구 병원 입원 하나 않구 그랬어. 장가 안 간 막내아들 걔가 심장 안 좋아서 그렇지 현재까지 밥 잘 먹고 다 건강해 다 웃으며 살지. 오로지 가정 식구한테만 매달려 사는겨. 내 그 재미로 사는겨. 진짜여. 난 수요일에도 교회 안 가. 하느님도 위해야 허지만 애들 땀 흘리고 일허구 오면 밥 한 끼라도 김치허구 내가 줘야지.

정서 방앗간 허기 때문에 월급을 쌀로 가지고 오기 때문에 굶는 거 읎었어. 시집 오니 꽁보리밥 하라 하는디 꽁보리밥이 뭐냐 했어. 난 보리밥 안 먹어. 고추배기가 나무뿌리 말린거더라구. 시집 와서 시누한테 뵜당께. 고추배기를 불쏘시개로 밑에다 놓구서 타더만 밥이 끓으면 또 그걸 내놓대. 잦힐 땐 또 몇 개 넣고. 길쌈은 안 혔어. 친정어머니가 길쌈이 너무 힘들어서 우리 아버지가 삼 심었다가 껍데기 벗겨서 다 팔아먹었어. 우리 어머니도 안 시켰어. 어머니 불쌍허다구. 시집 가서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 쪼끔 해봤지. 애들 꼬매 입히지도 않구 친정은 다 사람 사서 꼬매 왔어. 어머니 시집살이 너무 불쌍허다구. 밥이라도 실컷 먹으라구. 어머니 밭 매는 것두 안허게 했는디 어머니가 나가서 몰래 매고 오고 그랬어. 밭 하나 맬라믄 나는 조퇴하고 애들 보고. 내가 공기고 줄넘기고 찡가새구 그런 것두 잘혔어. 근디 애들이 안 붙여줘. 잘 허니께. 동생 하나는 업고 들고. 우리 아버지가 방앗간 갔다 오다가 넘 애들은 놀지 난 안고 들고 있응께 아버지가 속상헌께 잠깐 여기서 노니라 그랬어. 줄넘기 최고 잘했어.  

배 암 걸렸을 때 그게 제일 힘들었지. 본인이 원체 노력두 허구 본인이 명이 기니까 산거지. 입 천정에가 탁 박혀서 이 눔을 갈라서 드러내서 또 그 눔을 감쪽같이 붙여서 열여섯 시간을 수술했어. 천명으로 살은거여. 내가 무지하게 애썼지. 병간하면서 보믄 입 천정으로 깨물어서 넘겨. 잘해주진 않았어도 성질 한 번 안 내. 내 그게 너무 고마워서 내 잘해줘. 아침저녁은 흰 죽 끓이면 그거 두 그릇 먹어. 점심에는 손칼국수, 저기 바다에서 재취조개 잡아다가 국수 해 주고 그랬지. 내가 환갑 때까지만 살아라, 내가 환갑 잔치 잘 해준다 원없이 했지. 소머리 다섯 개 사서 집에서 소머리국밥 해서 다 해 맥이고. 칠십까지만 살아라 그랬더니 칠십도 무난히 살어. 그 때도 집에서 다 차려서 복지관 가서 몇 백명 치르고. 또 팔십까지만 살아라 세 번 다 원 없이 했어. 저기 무슨 산 밑에 오리고기 거기서 삼사백 명 다 해줬어. 나는 환갑 무렵에 시어머니 보름 냄겨놓고 톡 돌아가셔서 시어머니 죽었는데 누가 밥 준댜? 아배랑 나랑 둘이서 대천으로 여행 갔어.

 둘 낳았는디 다섯 살 때까지 읎는겨. 또 딸 낳을까봐 시어머니는 내쫓는다고 야단해싸고 딸 둘 낳고 보니 아주 무서워. 막내아들은 유산시킬라 했어. 또 지지배인 줄 알고. 그럭저럭 허다가 보니 아들이래. 그래 갠신히 아들 둘 낳어. 그 때가 제일 좋았대. 큰 아들 낳았을 때. 예전에 내가 풀빵틀이 요만헌 게 있었는디 수술허구서 부드러운 걸 먹어야 혀. 풀빵이 제일 좋다는겨. 저녁에 자다가두 배고파 그러믄 그 추운디 일어나서 연탄 갔다가 구워서 아배 4개 먹고 내가 4개 먹는겨. 난달에서 쪼글티고 앉아서. 그 추운디. 이제는 내가 기술자가 된겨. 지금도 교회나 행사 하믄 그 떡을 혀, 술떡이지. 얼마 전에 내가 그랬어. 우리 사위들 한 번도 안 빠지고 와서 고맙다고 항상 인사허지, 자기도 고맙다고 한마디 혀. 그랬더니 할매 데려다놓고 맨 고생만 시키고 내 뒷바라지 허느라 애쓰고 고마웠어. 그 말을 진작 했어야 하는데 지금 처음 허는디 너무 고맙고 미안했어. 내가 사랑헌다구 한 번 안 했잖여? 여보라고 한 번 혀. 죽기 전에 넘들 여보 여보 허는디 부럽더라, 부르긴 뭘 불러. 밥 줘 그러고 말지. 첫 애 대강 부르던가. 여보라고 한 번만 해라. 그랬는데 안 해줘. 근디 엊그저께 들은겨. 자식들 있는데서 해라. 그랬더니 ‘사랑해 여보’ 어유, 나 오늘 저녁에 죽어도 원 없다고 그랬어.
 

평생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도 여보, 소리 한 번 못 듣고 사셨다는 어머니는 엊그제 ‘여보, 사랑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십니다. 왜 좀 더 일찍 말해주지 못했을까요. 그다지 어려운 말도 아닌데 말이죠.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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