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헌책방거리, 한때 200여곳 지금은 20여곳 명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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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헌책방거리, 한때 200여곳 지금은 20여곳 명맥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4.2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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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4〉

1960년대 청계천변에서 노점 형식으로 운영되던 헌책방들
청계천 복개공사로 갈 곳 잃자 평화시장 일대로 모여들어
1960~70년대 헌책방 200여개 넘어 지금은 20여곳만 명맥
2013년 시민생활사적 가치 인정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

 

서울 중구 을지로의 평화시장 1층에 위치한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뒤인 1959년경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서울의 유일한 헌책방거리다. 서울 청계천 5~6가 사이에 있었던 헌책방거리는 1960년대 청계천변에서 노점 형식으로 운영되던 헌책방들이 청계천 복개공사로 인해 갈 곳을 잃자 평화시장 일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엔 디자인 서적, 만화, 참고서, 아동전집 등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들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중고서적을 파는 헌책방들이 하나둘 늘어가며 1960~70년대엔 한때 헌책방 수가 200여 개가 넘을 정도로 성업을 이뤘던 곳이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동대문방향의 평화시장 시작지점부터 300여m에 이르는 구간의 거리 드문드문 20여 곳 정도만 남아 있을 정도다. 과거 신학기철에는 참고서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까까머리 단골들은 이제 어느덧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중년의 고객으로 변했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 이용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들어 지금의 헌책방거리는 말 그대로 침체를 겪고 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명맥을 이어가는 헌책방의 현재 모습과 헌책방이 갖는 추억의 가치를 따라가 봤다.



■ 50년의 역사와 전통 자랑하는 ‘동신서림’

‘동신서림, 형님을 이어가는 아우’란 글귀와 함께 ‘50년 동안 가꾸어 오신 사장님은 먼저 헌책방을 시작하신 형님에 이어 헌책방을 운영하고 계십니다’란 가게소개와 책방 주인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는 글귀가 책방 입구에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비록 작은 서점일지라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곳에 있으면 재미있는 점이 시대에 따라 책을 읽는 사람들의 성향과 습관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변화에 맞추어 가고 있고요. 사람들이 이곳을 자주 찾을 때는 자주 그 흐름이 바뀌곤 했는데, 이제는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헌책방에 관심을 갖고 찾아와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에서 50여 년 동안 헌책방을 운영해 온 동신서림 최정옥 대표는 먼저 헌책방을 시작한 형님에 이어 헌책방을 운영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비좁은 통로를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책 무더기를 가게 안쪽으로 쌓아 올리며 책 정리를 하는 최 대표를 통해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과거와 오늘에 대해 들어봤다. “처음 여기에 책방이 20여 곳 있었는데 그때는 학생들이 중고교과서와 참고서를 사러 참 많이 왔어요. 책 자체가 귀한 시절이었죠. 주·야간 고등학교도 있을 때라 학생들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찾아와서 그 학생들을 위해 헌책방 위에 다락을 만들어놓고 생활하기도 했죠.”

최 대표는 “자본이 제일 적게 들어가는 일을 찾다가 헌책방을 시작하게 됐다”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많아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책방 문을 열고 있어야 했던 1960~70년대 책방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등학교가 주·야간으로 운영되던 시절 야간 고등학생들이 일이 끝난 저녁 10시에 헌책방으로 뛰어와 책을 찾곤 했다고 회상했다. 책 자체가 귀했고 헌책을 구하기도 굉장히 어려웠던 때라서 헌책을 구해놓는 족족 팔려나가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옛날엔 소설이 잘 안 나가서 중고 대학교재나 교과서, 참고서 같은 책만 취급했는데, 지금은 수요가 적기 때문에 더는 들여놓지 않는다”며 “당시 대학교재, 교과서, 참고서 판매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었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고등학생들은 선배들이 필기를 잘 정리해놓은 참고서를 주로 사 갔는데, 선배들의 필기를 보고 공부하며 시간 낭비하지 않으려고 했던 거죠, 그래서 필기 흔적 있는 책만 골라서 사가는 학생들도 많았어요.”

최 대표에 따르면 당시에는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와서 교복만으로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며 ‘지방에서 온 돈이 없는 대학생들은 전당포에 물품을 맡기고 돈을 꾸어 가듯이 헌책방에다 자기 책을 맡기고 차비를 받아서 고향에 다녀오는 일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헌책방에 전당을 잡히고 돈을 꾸어간 학생들은 고향 집에서 가져온 돈으로 맡겼던 책을 다시 찾아가곤 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1980년대 이후 논문 작성 때문에 자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 대학생들이 책을 종종 사 갔지만, 직접 찾아오는 중·고등학생들의 발길은 전보다 뜸해졌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학원에 다니는 중·고등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학부형들이 대신 찾아와 참고서를 사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터줏대감격인 ‘민중서림’은 고서와 희귀본을 만날 수 있는 ‘최고(最古)’의 책으로 가득한 책방이다. 지금은 쉽게 보기 힘든 오래된 책들이 가득한 책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천장까지 쌓인 책 무더기에 한 번 놀라고 그 책들의 발행연도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1969년 청계고가도로 개통 당시부터 청계천을 복원한 지금까지 5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민중서림을 운영해 온 송기호 대표는 낡고 희귀한 고서들을 여러 권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송 대표는 적어도 50년 가까이 됐거나 50년을 훌쩍 넘긴 오래된 책들을 보여주며 “유명한 출판사거나 희소성이 있거나 오래된 정도에 따라 사람들이 많이 사간다”며 이런 고서들만 전문적으로 사 가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책방을 찾는 손님이 줄어 고서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팔리지 않기에 더는 들여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동신서림과 마찬가지로 기술 발전이 바꿔놓은 오늘날 학습 풍경에 대해 탄식했다. 이어 “옛날에는 전화번호도 다 외웠는데 지금은 가족들 전화번호도 단축번호로 눌러서 통화할 만큼 기계 의존도가 너무 높다”며 “공부도 사전 넘기며 스펠링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해야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고 강조했다.


■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청계천 헌책방거리
서울시는 지난 2013년 이 거리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서울도서관은 2015년부터 매년 ‘청계천 헌책방거리 책 축제’를 열고 있다. 헌책 판매, 팝 아트 작품 전시, 북 커버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1960년대 평화시장 인근 청계천을 따라 200여 곳의 중고서점이 들어서며 형성된 헌책방거리에는 현재 20곳도 안 되는 서점이 겨우겨우 문을 열고 있다. 지난 2013년 서울시로부터 시민생활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지만 이에 따른 직접적인 혜택은 없다는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리비, 홍보물 제작 지원 등 최소한의 맞춤형 지원만 제공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침체된 헌책방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청계천 헌책방거리 책 축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헌책방 운영자들은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 모습이다. 사양산업이 되면서 이에 따른 매출 감소는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됐지만 그 가치를 인정하고 되살리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면 실질적인 혜택도 필요하다는 희망을 전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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