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도시·책방도시, 진주 헌책방 문화적 자산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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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도시·책방도시, 진주 헌책방 문화적 자산 지킨다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8.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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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10〉
경남 진주는 과거 교육의 도시라는 명성과 함께 책방의 도시로도 이름이 높았던 곳으로 지금도 오래된 헌책방들이 과거의 명성을 잇고있다.


헌책의 매력은 희귀본과 절판본, 초판본 등을 구할 수 있다는 점
진주는 교육의 도시라는 명성과 책방의 도시로 이름이 높았던 곳
진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책방은 흔적을 지운지 오래
헌책방이 문화적 자산이라는 인식을 전환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헌책방의 가장 큰 매력은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책을 찾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꽃은 떨어지고 사라지지만, 헌책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 바로 헌책방이다. 헌책방은 수집가들에게는 또 다른 보물창고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이나 시집의 초판, 혹은 잡지의 창간호, 옛 자료를 모으는 사람들에게는 책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추억하고 싶은 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사람들이 헌책방을 찾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헌책방에는 오래된 책부터 최근 책들까지 모두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가 가도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읽던 동화책, 학창시절 시험을 잘 볼 때마다 한 권씩 사주던 만화책, 책상 아래 숨겨서 보던 책들까지 모두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헌책방에는 새로 나온 책을 비롯해 관공서 비매품 도서, 보고서, 개인문집, 옛 교과서 등 다른 데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들이 차고 넘친다. 다른 데라 함은 역시 대형 오프라인 서점과 중고서점의 차이다. 헌책의 가장 큰 매력은 희귀본과 절판본, 초판본 등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자료적 가치가 있는 책들이 숨어 있는 곳이다. 희귀고서만이 꼭 가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외면 받은 책 중에는 누군가에게 숨은 기록을 찾아내고 잊힌 추억을 되살리는 소중한 역사적 자료로 발현되기도 한다. 헌책방 주인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는 보물 창고인 셈이다. 헌책방이 하나의 문화적 자산이라는 인식을 전환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 진주, 교육도시·책방도시로 명성
경남 진주에는 과거 교육의 도시라는 명성과 함께 책방의 도시로도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헌책방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꼽히고 있다. 진주에도 이름난 헌책방이 몇 곳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진주고속버스터미널 옆에서 60여년 장사를 해오다 진주버스터미널 2층으로 옮긴 소문난서점이 그곳이다. 버스들이 오가는 진주터미널, 나지막한 벽돌 계단에 유난히 큰 간판 ‘소문난 서점’ 열일곱살 때 이무웅 사장이 문을 열어, 올해로 60년을 이어오고 있는 헌책방이다.

또 한 결 같이 남강 변을 지켜온 동훈서점은 진주 토박이들에게는 랜드마크로 기억될만한 공간이라고 한다. 2013년 11월 문을 연 신참 소소책방도 있다. 진주시 봉곡동 로타리 인근에는 헌책방 형설서점이 있다. 진주중학교 앞에서 ‘즐겨찾기’란 이름으로 헌책방을 시작한 최준 형설서점 대표는 헌책방을 꾸려 온지 18년차다.

최 대표는 친구 따라 헌책방을 시작했다고 했다. 친구네 책방에서 일을 돕던 시절 “너는 책방 해도 되겠다”는 친구의 말이 시작이었다. “책방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체질이 맞아야지…”라는 최 대표는 현재의 진주시 봉곡동 14-2로 옮겨오면서 ‘형설서점’이라는 이름으로 헌책방을 이어가고 있다.

진주지역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헌책방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소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 사장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책방살림을 이어가던 곳을 언뜻 떠올렸다. 중앙서점, 문화서점, 시인서점, 송강서점, 지리산 등 진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책방은 흔적을 지운 지 오래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책방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소소책방일지’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글과 사진으로 남긴 책방지기의 기록이다. 단지 책이 좋아서 헌책방을 시작해 이번까지 다섯 번째 이사를 해야 했다. 매번 비싼 임대료에 밀려나 새로운 공간에 둥지를 틀곤 했다. 이사를 할수록 책방 공간도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헌책 규모도 조금씩 줄었다고 전한다. 그는 헌책방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으나 이제는 ‘서서히 저물어 간다’고 표현한다. 좋아서 하는 일도 녹록치 않은 게 헌책방의 현실이다.

진주 남강을 낀 동훈서점은 20여년의 세월을 잇고 있다. 정성훈 대표는 부모님이 하던 헌책방을 이어받았다. 그는 책이 빼곡히 들어선 공간에 젊은 감각을 동원해 변화를 줬다. 찬찬히 책을 살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단순히 헌책을 파는 개념을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시집을 읽다가 눈에 띄는 시구를 엽서에 필사로 옮겼다. 흡사 트렌디한 독립서점 같은 분위기다. 오래된 헌책방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봉곡광장 사거리에 있는 형설서점을 17년째 운영하고 있는 최준 대표는 친구 따라 시작한 헌책방이 평생 업이 됐다. 고서뿐 아니라 절판된 책, 희귀본 등도 다수 보관하고 있는 그는 요즘 헌책방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신학기 때마다 붐비던 학생들은 사라지고 그나마 인터넷으로 들어오는 주문으로 수익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경남 진주는 과거 교육의 도시라는 명성과 함께 책방의 도시로도 이름이 높았던 곳으로 지금도 오래된 헌책방들이 과거의 명성을 잇고있다.


■ 60년 헌책방 고집하는 ‘소문난서점’
소문난서점은 진주지역에서 제법 오래된 헌책방으로 꼽힌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돈을 벌고자 만화책 좌판을 벌였던 이무웅 대표가 헌책방을 꾸려온 세월만도 60여 년이 된다.
진주고속버스터미널 2층에 있는 165㎡(50평) 규모의 고서점이다. 책방주인은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는 이무웅(76) 대표다. 자신은 아날로그 시대 사람이라는 그는 그 흔한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을 일절 하지 않는 고집 있는 사람이다. 그의 서점은 흔한 책방이 아니다. 보통 서점은 학생 참고서 위주지만 그의 서점은 오래됐지만 귀한 서적들을 취급한다. 교실 두 세배 크기의 서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도서가 서가마다 진열돼 있다.

이 대표는 “2년 전쯤 헤아려 봤는데 60여만 권”이었다고 귀띔했다. 전국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서점 가운데는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을 거라는 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사실 그가 지금의 자리로 책방을 옮긴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일단 책이 쌓이니 보다 큰 장소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진주를 찾는 분들에게 책방으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은 욕심도 작용했다. 그래서 손님 대부분이 외지인들이다. 서울과 순천, 대구 등 타지에서 진주를 찾았다가 우연히 책을 사거나 이전에 눈으로 찜해둔 책을 진주에 다시 왔을 때 찾는 이들도 있다. 주 고객층은 주로 60대에서 80대 노년층. 이들이 찾는 책은 옛 향수를 자극하는 중국 고전이나 한국 고전 등 고서적이 대부분이다. 왜 사람들은 갈수록 책을 보지 않을까.

“학생들 리포트 쓰고 논문 쓰는 데 도움 될 만한 그런 헌책방이 되고 싶었지요. 아직 대학교 앞에 진출하지 못했으니 그게 아쉽고, 갈수록 학생들이 책을 안 읽으니 그 또한 아쉽습니다.”

그래서인지 농대 교재들을 아직 가게에 비치하고 있다. 진주에 발 딛고 처음 마주치는 책방에서 진주의 연원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농대는 경상대학교의 출발점으로, 당시의 농대 교재들은 진주가 ‘교육도시’로 얼마만큼의 역사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실례이며, 혹은 향수가 된다는 것이다. 농대 교재가 아니더라도 스물다섯 평 남짓한 가게 안에는 각종 대학 교재 혹은 역사·교양서 일색이다. 나머지는 고서들과 문집·소설들이다. 조선시대 철종을 제외한 왕들의 하루를 빠짐없이 기록한 ‘일성록(日省錄)’ 87권, 조선시대 선인들의 문집 300권, 한문으로 쓰인 실록, 고전 국역이 입구 오른편을 묵직하게 차지하고 있다. 동화책이나 참고서들은 오히려 안쪽 구석에 가려져 있다.

지역 문집이나 문화재 관련 서적이 많은 것은 어느 정도 이 대표의 직함과 관련된다. 이무웅 대표는 2000년 ‘월간 문학’으로 등단한 수필가이며, 사단법인 진주박물관회의 회장이다. 진주박물관회는 진주 국립박물관이 소장할 만한 가치를 지닌 자료나 유품을 가진 사람을 찾아 기증을 권유하거나 유품을 구입하는 일을 한다. 헌책과 일생을 함께한 이무웅 대표는 묵묵히 버텨온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아들에게 책방을 물려주고자 한다고.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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