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20만 권, 35년 역사의 제주도 헌책방 ‘책밭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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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 20만 권, 35년 역사의 제주도 헌책방 ‘책밭서점’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9.0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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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11〉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인 책밭서점은 고서 등 장서 20여만 권을 보유하고 있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인 책밭서점, 책의 보물창고·박물관
고서적을 비롯해 1970~80년대 잡지, 베스트셀러 초판 등 수두룩
책값 1000원부터 고서·희귀본의 경우 몇 백만 원 이상까지 다양
기회 되면 20평 정도의 향토 자료실을 만드는 것이 개인적인 꿈


제주도에서 헌책방 하면 역시 제주시 이도 1동에 위치한 ‘책밭서점’을 꼽는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인 책밭서점은 6만여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책방에 들어서자 오래된 종이 냄새가 어깨에 내려 닿는다. 빽빽이 들어차다 못해 책장 앞에까지 쌓인 책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저절로 의자가 된 책들과 책 뭉치도 보인다. 정말로 지나간 옛 시간을 지키고 서 있는 곳, 흐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곳, 쓸모없음이 있음으로 변하는 곳, 이곳이 헌책방이다. 이들은 고맙게도 책을 무더기로 쌓아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현대사회의 옷깃을 잡아끌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점차 사라져가는 중이다. 다행히 헌책방이 여럿 모여 있는 서울 청계천의 헌책방 골목이나 부산 보수동의 헌책방골목까진 아니더라도 지역에 헌책방이 남아 있다는 사실로 위안이 되는 곳이다. 헌책방의 가장 큰 매력은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책을 찾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책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이러한 헌책방의 보물창고를 지키고 있는 제주도의 헌책방인 책밭서점의 주인 김창삼 대표는 책방 주인이자 농사를 짓는 농부다. 그래서 책방을 평일에는 오후 3시에 열고 밤 9시에 닫는다. 일요일엔 아예 열지도 않는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인 ‘책밭서점’의 운영시간이다. 책방 인근에서 감귤과 고구마 농사를 하기 때문에 책방에 온종일 붙어 있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의 빈자리는 아내가 채울 때도 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아예 책방 문을 닫는다.
책밭서점이 문을 연 건 지난 1985년의 일이다. 지난 1985년 2월, 대여섯 평 남짓의 공간에서 시작해 1992년에 현재의 책밭서점 주인인 김창삼 대표가 인수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35년여의 역사는 어마어마한 장서를 남겼다. 매장에 있는 책만 6만여 권이고 별도의 창고에 보관된 책까지 합치면 20만 권은 족히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말로 가치 있는 책, 가치가 없는 책, 가치가 있다가 없어진 책까지 대중이 없다. 20~30년 전에 나온 토익 문제집은 이제 영업장보다 전시장이 더 어울릴 법하지만 책방 주인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시간에 무감각해진 공간에서 손님들도 느긋하게 책을 찾고 읽는다. 고서적을 비롯해 1970~80년대 잡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들의 초판, 고서 등은 표지만으로도 흥미를 끄는 책들이 많다. 책값은 1000원부터 고서나 희귀본의 경우 몇 백만 원 이상까지 다양하게 거래가 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인 책밭서점에는 책을 볼 공간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지만, 목욕탕 의자와 플라스틱 의자를 책방의 군데군데 놓아 책을 읽거나 고르는 손님들을 위해 배려하고 있다.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소리와 흥정소리를 배경 삼아 책을 읽다가 너무 오래 머물렀다 싶으면 한 두 권 사 들고 나오면 된다.


■ 서른다섯 살, 헌책방 지킴이 역할
김 대표가 서점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학창시절부터 ‘제주도에는 왜 헌책방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며 “알프스의 소녀, 장발장 등의 책을 읽으며 전원생활을 꿈꿨고, 그 안에서 단순히 책을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간판도 현수막도 없던 한 서점의 첫 손님으로 가서 주인과 인연을 맺어 오다가 지난 1992년도에 책방 인수를 요청해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책밭서점을 운영하게 됐다”며 “1992년도에 내 나이가 서른다섯 살이었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회사나 가정에 더욱 얽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보다는 헌책방 지킴이로서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현재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회사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을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지금 행복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책방 임대료 때문에 이사만 대여섯 번을 넘게 하다가 현재 이 골목에 정착한지 10년 정도가 됐다고 한다. 가끔은 ‘제주도의 젊은 친구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헌책방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는 것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면서 고객층은 주로 20~30대 이상으로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책을 잘 보지 않는다는 현실상황도 설명한다. 특히 컴퓨터 보급이 대중화되면서 헌책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는데, 모든 지식을 책이 아닌 인터넷, 전자사전 등을 이용해 얻고 있어 백과사전, 참고서가 필요 없어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서점을 운영하다보면 아무래도 임대료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외부의 환경적인 변화가 더해지면서 경제적인 문제로 서점을 접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몇 번 했었다는 고백도 한다. 폐점을 고민할 때 즈음이면 단골손님과 주위 분들이 ‘제주도에 하나 있는 헌책방인데 그래도 계속 꾸려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많이 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김 대표는 지역문화산업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오전에는 농사를 같이 하면서 오후에는 서점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인 책밭서점은 고서 등 장서 20여만 권을 보유하고 있다.


■ 책밭서점은 책의 보고이자 박물관
김 대표는 “사실 DB(데이터베이스)화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 이용하는 손님들의 불편도 충분히 알고 있다. 예전부터 DB작업을 시도하려는 생각은 있었지만 현재 창고에 있는 책까지 17만여 권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것을 전부 작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7개월 동안 5만권도 입력을 못했다. 또한 온라인으로 판매를 할 생각도 있었지만 책값보다 더 나가는 물류비 때문에 쉽지 않더라. 운영방식이 예전 방식 그대로다보니 손님들이 마음에 드는 책을 직접 찾아 읽어 보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서점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는 알 수 있도록 앞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책의 구입방법에 대해 90% 이상은 서울, 대전 등 주로 육지에서 내려온다고 한다. 제주에서 직접 거래되는 것은 10% 미만이라는 설명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읽은 책을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아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도 말한다. 헌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진단도 내린다. 현재는 되레 책들이 나가지 않고 쌓이기만 하다 보니 이 작은 공간에 수용할 수가 없어 결국 폐지로 버려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한 김 대표는 제주 관련 도서들은 계속 모으고 있는 중이며 현재 3000여 권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내 도서관에 가보면 향토자료가 변변치 않은 실정이다. 보통 사람들은 향토자료를 관청에서 발간하는 거창한 자료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작은 팸플릿, 보고서, 세미나 자료 하나도 모두 향토 자료가 되기 때문에 이를 버리지 않고 수집하고 있으며, 기회가 되면 20평 정도의 향토 자료실을 따로 만드는 것이 개인적인 꿈이라고 전한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거래하고 있는 헌책방에 제주도 관련 책이라면 무조건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 오히려 관에서 발간된 책들은 제주도내에 있지 않고 역으로 육지부로 올라가 다시 제주에서 구입해오는 실정이라며, 이곳 제주에서 도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한테 판매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현재의 시스템이 안타깝다고 설명한다.

제주도의 헌책방인 책밭서점은 책의 보고이자 박물관이다. 육지의 책방에서는 구할 수 없는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당시의 책들을 비롯해 1910년대 희귀본부터 1960~79년대까지의 각종 도서를 비롯해 초간본, 잡지 창간호, 교과서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과 연도별, 각국의 언어별로 한자, 한글, 일본어, 영미 권역의 책들까지 망라해 많이도 보유하고 있는 곳이 바로 제주도의 가장 오래된 헌책방인 책밭서점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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