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필요 없는 책은 없다”는 제주도 헌책방 동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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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필요 없는 책은 없다”는 제주도 헌책방 동림당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9.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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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12〉
제주의 헌책방인 동림당에는 한·중·일 인문사회과학 서적과 고서 등 5만여 권의 책이 비치돼 있다.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책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이 헌책방의 큰 매력
소중한 연구자료, 고서적 등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
숲에 가면 풀냄새 자욱하듯, 헌책방 동림당엔 종이냄새, 책냄새 그득
헌책방 ‘동림당’에 예술작품을 합친 ‘문화복합공간’으로 운영할 계획


책들이 좀 낡았다는 것일 뿐, 꽂힌 채로는 새 책과 다를 바 없지만 꺼내보면 달라진다. 사람의 이야기가,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책 주인의 사연과, 책 주인에게 이 책을 준 사람의 사연들이 씨실과 날실로 엮인다. 면지에는 책 살 때의 느낌을 간단히 쓴 일기가, 책을 선물로 주면서 남긴 글이, 그 책의 작가로부터 받은 사인이 남아 있다. 이렇듯 시간을 지키고 서 있는 곳, 흐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곳, 쓸모없음이 있음으로 변하는 곳, 이곳이 헌책방이다. 이들은 고맙게도 책을 무더기로 쌓아 놓고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현대사회의 옷깃을 잡아끈다. 

하지만 이들도 점차 사라져가는 중이다. 다행히 헌책방이 여럿 모여 있는 서울의 청계천,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골목까진 아니더라도 섬지역인 제주도에도 헌책방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히려 희망이다. 헌책방의 가장 큰 매력은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책을 찾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꽃은 떨어지고 사라지지만, 헌책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헌책 예찬론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큰 서점에도 없는 책이 헌책방에는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별로 안 사니까 여러 권 찍어내지 않아서 절판도 빠르기 때문에 사라지는 책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헌책방에서는 필요한 책들을 찾을 수도 있고, 직접 책 상태를 알 수도 있기 때문에 수집가들에게는 또 다른 보물창고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이나 시집의 초판, 혹은 잡지의 창간호를 모으고 소중한 연구자료, 희귀한 고서적 등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 바로 헌책방이기 때문이다.


■ 제주도에서 헌책방 ‘동림당’ 시작해
이러한 책에 대한 애정으로 헌책방을 고수하는 사람이 있다. 제주도의 헌책방인 ‘동림당’의 송재웅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독서를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는 송 대표는 오래 전부터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사는 것이 꿈이었다. 제주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제주도 자체가 좋았다고 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부터 꿈 꿔왔던 ‘제주살이’는 실천에 옮기려고 할 때마다 여건이 좋지 않아 접어야 했는데, 큰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무렵인 지난 2011년 4월 제주도로 올 수 있었다는 게 송 대표의 설명이다.

서울에 살던 송재웅 대표는 그야말로 책에 대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집광’이었다고 한다. “가끔 집에서 반상회를 열면 동네 어르신들이 ‘집 무너지겠다’며 걱정을 하시곤 했다”며 웃어넘길 정도다. 제주도로 내려올 때도 책을 버릴 수 없었다는 송 대표는 이삿짐을 싸고 보니 책만 8톤 트럭 2대 분량과 5톤 트럭 2대 분량이었다고 한다. 약 7만 여권이었는데, 제주에 와서 1만 여권을 더 구입해 책방을 열었다고 설명한다. 송 대표는 “아들 ‘동석’과 딸 ‘혜림’의 이름을 각각 한 글자씩 따 책방 이름을 ‘동림당(東林黨)’이라고 지었다고 말한다.

제주도에서 헌책방 ‘동림당’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송 대표는 책에 파묻혀 사는 자신을 보던 아내가 “밖에 테이블 하나 가져다 놓고 앉아서 책도 읽고, 팔고 좀 그래요”라며 송 대표를 내쫓았는데, 이를 계기로 시작하게 된 것이 제주도의 헌책방 ‘동림당’이었다는 설명이다.

집에서 내쫓기면서 시작한 헌책방이지만 지금은 삼도2동 지하 창고에서 수 만권의 책들에 묻혀서 책방을 잘 운영하고 있다. 본래 처음 시작했던 노형동의 동림당은 창고 형식의 옛 책들로 운영하고, 삼도동의 헌책방에는 예술작품을 합친 ‘문화복합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송 대표는 “동림당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소통하고 전시도 관람하고 또 마음 편히 쉴 수도 있는 ‘문화복합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저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눌 수 있고 지식도 공유하고 그럴 때 정말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송 대표는 “대학교 때 역사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인문학 책을 많이 모으게 됐다”며 “중국에서 8년간 유학을 하는 동안 주말마다 중고서적 시장에 나가서 책 샀는데 고려대장경, 일성록, 조선총독부 관보, 승정원일기 등 고서적도 많다”며 책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림, 도자기 등의 생활용품 모음 공간.


■ “세상에 필요 없는 책은 없다”
책이 너무 많아 현기증이 날 지경이지만, 책에 포위된 채로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다. 책방 대표도 찾을 수 없는 책 한 권을 찾아 헤매는 재미도 있을 게다. 영 쓸모없을 것 같은 책도 한자리 차지하는 헌책방, 이정표나 간판 없이도 오가는 사람이 많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 싶은 것들이 눈을 가릴 때, ‘분명히 소중한 것’이 동림당 헌책방에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숲에 가면 풀냄새가 자욱하듯, 헌책방 동림당 안에는 금방 인쇄한 책의 잉크냄새 대신 오래된 종이 냄새, 책 냄새로 그득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빈틈없이 채워진 책들,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공간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책이다. 정말로 방대한 책의 물량이다.

“노형동에 창고가 두 개가 더 있어요. 거긴 여기의 네 배, 여섯 배 되는 책들이 더 있지요.” 저명한 작가의 초판본 책부터 한국과 중국의 몇 백 년 된 고서적까지 그곳에 다 숨어있다고 말하며 송 대표는 웃었다.

도대체 몇 권인지, 어떤 책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발 디딜 틈은 겨우 생겨난다. “전에 3~4만권까지 세 봤는데, 한 번에 수천 권씩 들여오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셀 수가 없었다”는 것이 동림당 송재웅 대표의 솔직한 말인 듯싶다. 동림당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 도자기, 여타 생활 물품도 모은다. 오래된 것은 다 좋아하는가 싶은 사람, 모으는 것도 내공이 있어야 하는 일 아닌가.

“헌책방의 묘미는 ‘의외성’에 있습니다. 어떤 책을 사고 싶어 방문했는데 그 옆에 생각지도 않았던 더 좋은 책을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약간은 보물찾기 같은 ‘놀이’로 인식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송재웅 대표의 서가에는 한·중·일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비롯해 문학예술 서적, 소설 등 5만여 권 정도가 비치돼 있다. 창고에는 창간호 잡지와 저자 서명본 도서, 절판 희귀도서, 고서 등이 보관돼 있으며 20만여 권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이 정도면 정말로 부자다. 책 부자다.

송 대표는 역사를 전공했다. 헌책은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으니, 모으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고 한다. 모으는 것은 중학생 때부터였다고. 그때는 돈이 없어서 고물을 모아 내다 팔고, 그 돈으로 헌책을 샀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책이 좋으면 책도 보고, 책도 팔고, 사람과 교류도 하는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어떠냐’는 아내의 말에 제주도로 내려왔고, 헌책방을 열게 됐다고 한다. 제주도의 두 번째 헌책방인 ‘동림당’의 송재웅 대표와 헌책방의 필요성과 책에 관련한 대화를 하는 동안 역시 “세상에 필요 없는 책은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혹여 무너질까 위태로운 책 더미 사이, 구할 수 없는 것 빼고 다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이 바로 제주도에서 두 번째 헌책방인 ‘동림당’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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