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의 헌책방에는 사람들의 지혜와 온기가 담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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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 헌책방에는 사람들의 지혜와 온기가 담겼네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10.0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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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14〉
책의 도시로 불리던 경남 마산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10여 곳이 넘는 헌책방이 있었는데 지금은 단 두 곳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마산지역에서 명맥 잇는 헌책방은 ‘영록서점’과 ‘마산헌책서점’단 두 곳
1972년부터 헌책장사 시작 2013년 창동예술촌에 옮긴 헌책방 영록서점
120만 권에 달하는 장서 보관한 영록서점 지역에서 하나의 명물로 인식
마산 헌책서점, 경남지역 헌책방의 명맥을 잇는 대표서점 가운데 하나다


추억하고 싶은 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사람들이 헌책방을 찾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헌책방에는 오래된 책부터 최근 책들까지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과거의 향수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곳이다. 과거에는 책이 아니면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정보 대부분을 습득한다. 정보와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굳이 책을 읽어야 하는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갈수록 늘면서, 신간을 파는 중소서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형서점마저 수익이 악화하는 상황이다. 손때 묻은 책을 다루는 동네 헌책방은 오죽할까. 그나마 책을 구매하는 시장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대형 중고서점까지 잇따라 들어서면서 헌책방의 숫자는 줄고 있다. 지역 헌책방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헌책방의 체취는 마산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때 전국 7대 도시로 손꼽혔던 마산에서 헌책방을 찾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국제서점, 세계서점, 천원서점, 미리내서점 등 학교 앞이나 골목 구석구석에 터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쇠퇴하는 도시처럼 헌책방도 차츰 스러져 가더니, 지금은 단 두 곳만 남아 그 모습을 유지할 뿐이라고 한다.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마산지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헌책방은 ‘영록서점’과 ‘마산 헌책서점’ 단 두 곳이 남았다. 사라지는 곳 사이에서 버텨온 헌책방이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책방지기 삶을 잇는 그들을 만나 헌책방에 관한 사연은 어떨까.


■ 마산의 대표적인 헌책방, 영록서점
지난 2018년 11월 창원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에서 헌책방 영록서점을 운영하던 박희찬 대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박 대표는 현대문학이 창간되던 1955년에 태어나 어쩌다 보니 문학사상이 창간됐던 1972년부터 헌책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생전 박 대표에 따르면 1970년대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당시 등록금이 없어 중학교를 그만두고 부산 서면거리를 거닐던 중 좌판에서 헌책 장사를 하던 한 어른을 봤고, ‘이거 저도 하고 싶어요’라고 부탁했다고. 새 책이 아니라 왜 헌책이냐는 물음에 그는 “새 책은 비싸고 헌책은 값이 거의 없었다”는 명쾌한 대답을 했다고 한다. 고물상에서 구해온 헌책들을 손수레에 싣고 다니며 팔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영록서점’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1987년 2월 부산에서의 장사를 마치고 마산으로 터를 옮겼다고 한다. 박 대표가 태어난 곳은 부산이었지만 아버지의 고향은 마산이었기 때문에 할아버지·할머니 등 친척들이 있는 친숙한 동네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영록서점은 처음에는 팔용교육단지에서 시작해 신세계백화점 앞으로 옮겼다가 수출자유무역지역으로, 또 석전시장 앞으로 갔다가 2013년 지금의 창동예술촌으로 이사를 해 헌책방을 운영해 왔다. 120여 만 권에 달하는 장서를 보관했던 영록서점은 지역에서 하나의 명물로 인식됐다. 46년간 책방지기로서 삶을 살아왔던 박 대표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주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고 한다. 한 번쯤 영록서점을 찾았던 사람들은 묵은 종이 냄새를 맡으며 오래된 책들을 뒤적였던 추억을 곱씹었다. 

문화예술계는 생전 박 대표가 보였던 헌책에 대한 열정을 되새겼으며, 한편으로는 존폐 위기에 몰린 책방의 앞날을 걱정했다. 책방의 새 얼굴을 찾지 못하면 수십 만 권의 헌책들은 고스란히 폐기될 판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대로 문을 닫을지에 대한 관심도 금세 사그라졌다는 것. 그저 수많은 자영업자 가운데 또 하나의 가게가 스러져 가는 것인지, 시대가 변했기에 헌책이 팔리지 않는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표가 꼬리를 물었다. 어쩌면 헌책방이 지닌 가치와 의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래서 그 소중함을 허투루 생각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물음도 스스로 던져 봤다. 헌책방을 단순히 헌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적인 상징으로서 접근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천만다행으로 책방 주인을 잃고 문 닫을 위기에 처했던 영록서점을 현재의 건물주인이 인수해 운영 해 보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 박희찬 대표가 운영하던 영록서점의 건물주였던 엄영호 대표는 평생 박 대표가 모은 책이 고스란히 버려지는 걸 차마 두고 보지 못했다고 한다. 장사를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어떻겠든 책방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한다. 그래서 책방을 그대로 인수해 살렸다. 방대한 책을 계속 정리하고 북카페 공간도 꾸몄지만, 책방을 찾는 발길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헌책방을 영위하는 삶은 건물주에게도 힘겨운 나날들이다. 주말, 휴일 할 것 없이 문을 열어도 창동예술촌을 찾은 방문객들의 사진 속 배경이 될 뿐이다. 세입자로 살다 간 박 대표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이 간다는 게 엄 대표의 말이다.


■ 경남 헌책방의 명맥 잇는 헌책·중앙서점

마산중부경찰서 근처에 있는 ‘헌책서점’에 들어서니 헌책방보다는 책대여점 같은 느낌이 먼저 든다. 20여 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헌책방 일에 뛰어든 한영일 대표가 직접 레일 책장까지 만들어가며 수많은 책을 깔끔하게 정리한 덕분이다. “처음에는 책을 재었는데 재어두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만들었습니다. 길가에 가게가 있다 보니 먼지가 많아 계속 청소를 합니다.” 이곳은 분류까지 잘돼 있어 책을 찾기가 쉽고, 그 덕분에 책들은 대부분 상태가 좋은 편이다. 한 대표는 근처에 있던 중앙서점도 인수해 책 창고로 쓰고 있다. 건물 지하와 1층을 쓰는 이곳에는 태백산맥 등 잘 보존된 대하소설들 전권이 몇 질씩 꽂혀 있고 보기 힘든 만화책과 잡지들도 많다.

마산중부경찰서에서 경남대 쪽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마산 헌책서점은 15년 사이 자리를 두 번 옮겼다고 한다. 책방을 운영하는 한영일 대표는 매달 가게 세를 꼬박 냈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했다. 10년 전 빚을 내서라도 건물을 인수한 이유다. 한 대표 역시 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마산과 창원지역 헌책방이 하나둘씩 문을 닫을 때도 마산합포구 중앙동의 중앙서점(99㎡)과 헌책서점(89㎡)은 제자리를 지켰다. 여느 헌책방과 마찬가지로 한때 경영상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두 서점은 큰 고비 없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현재의 주인인 한영일 대표가 1999년과 2005년에 중앙·헌책서점을 차례로 인수할 당시 각각 1만권과 8000권에 불과하던 책은 올해 두 곳 합쳐 10만권 정도까지 늘었다고 한다. 갈수록 위축되는 헌책방 세계에서 두 서점은 경남지역 헌책방의 ‘명맥’을 잇는 대표 서점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서점에서 100여m 떨어진 헌책서점이 비교적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는 한 대표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한 대표는 수요가 많은 헌 참고서를 확보해두려고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책을 구했다. 인근 중·고등학교를 일일이 찾아가 명함을 뿌렸고, 수능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서 책을 바로 수거했다고 한다. 또 경영난에 시달리는 인근 헌책방 네 곳 정도를 인수해 규모를 대폭 늘리기도 했다. 양질의 장서 확보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현재 여러 분야의 책이 고루 팔리고 있다는 게 한 대표 설명이다. 2008년 말부터는 인터넷 서점인 ‘북코아(bookoa)’를 통해서도 중앙서점과 헌책서점의 책들을 팔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 덕에 두 서점에서 팔리는 책의 연간 판매금액(온·오프라인 포함)도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한 대표는 이런 노하우를 헌책방 운영에 관심이 있던 단골에게 전수해주기도 했다. 헌책방을 ‘길이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한 대표는 사람들의 지혜와 온기를 담고 있는 헌책방을 애용해달라고 당부한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10곳이 훌쩍 넘던 헌책방이 지금은 단 두 곳만 남았다”며 “헌책방이 자꾸 문을 닫는 추세인데 헌책방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아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한 대표는 낡고 오래된 책을 보관하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귀한 자료가 되어 품을 떠나는 것을 낙으로 삼아 하루하루를 버틴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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