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마을의 애잔한 기억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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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마을의 애잔한 기억 담아"
  • 전상진
  • 승인 2010.02.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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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충남도청 신도시 이주민들의 이야기
▲ 신경리 신리마을 장두현 씨의 '밭갈이'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이제 곧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명절을 앞두고 있다. 설날이면 선물꾸러미를 양손에 들고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로 눈이 부시다.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설레는 일인가. 도시 생활에 지치고 타향에서 겪는 서러움 같은 것이 와락 밀려올 때면 늘 생각나곤 하는 것이 바로 고향 아닌가. 거기에 설 명절이 곧 다가오니 얼마나 마음 설레고 그리움이 왈칵 밀려오는가. 정말로 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고 어린 시절 같이 뛰어놀던 고향 친구들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차가 밀려도 평소 때보다 서너 시간 늦어도 고향은 언제나 고향이다. 포근한 그 무엇인가가 우리들을 잡아 끌어당기니 말이다.

▲ 신경리 주촌마을 이희상 씨 부부의 '밭꾸미기'

그러나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오히려 명절이 더 견디기 힘들다. 그리운 고향은 가까이 또는 저 멀리 아련하게 손에 잡히다말고 사라져버린다. 6․25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고향이 그럴 것이고, 댐 건설로 수몰지역이 된 주민들의 고향이 그럴 것이며, 개발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 용봉산에서 바라본 도청신도시.

여기 홍성에도 그런 사람들의 고향이 있다. 2006년 충남도청 이전예정지가 홍성․예산으로 결정됨에 따라 지난해까지 준비․계획단계 속에서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물론 물질적인 보상을 받고 떠나는 것이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게 고향은 언제나 잃어버린 그리움의 고향으로 남을 것이다.

▲ 신경리 자경동마을 상징인 마을 앞 팽나무.

충남도청 신도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은 홍북면 신경리, 대동리, 봉신리, 상하리 및 예산군 삽교읍 목리, 신리 등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 둥지를 틀고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살다가 아마도 몇 년 뒤 혹시 고향을 찾았을 때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 속에 바뀌어버린 고향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고 얼마간의 씁쓸함도 느끼게 되리라. 고향의 옛 모습은 애잔한 아픔 속에 묻힌 채 사라져가는 마을의 옛 모습을 마음으로만 간직하며 그리움 속에 영원히 고향을 품고 살게 될 것이다.

▲ 대동리 이주민들의 단체 촬영(이석두 씨 집).

사라져가는 마을의 애잔한 기억을 담은 책 한권이 발간됐다. 홍성문화원 향토민속발굴사업의 일환으로 발간된 <2009년 홍북 주변의 민속, 충남도청 신도시 이주민들의 이야기>가 평생 일구며 살아온 땅을 떠나는 이들의 마음 깊이 고향의 풀 한 포기, 흙 한줌을 싱그럽게 적셔주며 고향의 옛이야기를 아름답게 전해주고 있다.

▲ 도청신도시 이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책(홍성문화원 발간).
금당초등학교 김정헌 교감과 미림인쇄 대표 오경세 사진작가의 수년, 수개월의 노력으로 공들여 만든 책, 이 책에는 떠나는 고향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향을 떠나는 이웃들을 생각하며'라는 제목으로 쓴 두 저자의 글에는 "도청 신도시가 들어서게 되면서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몇 년 만 지나가면 이곳의 모습은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고, 옛 모습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이 지역의 옛 모습을 조금이라도 남겨보고자, 지역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보았고, 특히 주민들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살펴보았다. 여러 대에 걸쳐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집안의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옛 모습을 담아보고자 밀착 취재하여 기록하였으며, 마을 지명과 유래와 전설 등은 기존에 발간된 각종 자료들을 참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오 작가는 고향이 홍북이다 보니 남일 같지 않아 2006년 도청이전 발표가 난 직후부터 홍북 이곳저곳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김 교감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주민들의 사소한 손짓이나 몸짓, 말투에도 온 신경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교감과 오 작가는 조그만 마을까지 다 담지 못해서, 마을에 남아계신 분이 얼마 없어서 인터뷰를 미처 못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책에는 이들의 애쓴 보람이 듬뿍 담겨 있다. 마을 지명유래와 전설은 물론 마을 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삶이야기가 물씬 담겨 있다. 그리고 홍북면을 지켜온 용봉산, 그 아래의 마을전경들, 각 마을회관들, 오래된 나무들, 대문 앞에서 놀고 있는 강아지, 주렁주렁 매달린 늦가을 홍시 감, 손때 묻은 농기구들, 평생을 지켜왔던 논과 들, 아름다운 장독대 등이 그윽한 여운처럼 담겨 있다.

▲ 용봉산을 배경으로 한 상하리 하산마을 김석종 씨 가족.

특히 책에는 홍북 신경리 자경동마을 이건일․전옥녀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 홍북 신경리 신리마을 장찬순․서서분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 예산군 삽교읍 목리마을 맹교영․박귀억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가 실려 있어 가슴 짠한 애잔함과 정겨움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 아버지의 시계를 바라보며 허한 마음에 잠긴 주촌마을 인영식 씨.

홍성군 홍북면․예산군 삽교읍 도청 신도시 이주민들은 충청남도의 백년대계를 위해 조상대대로 살아온 소중한 터전을 내주고 떠나는 절박함 속에서도 때론 싫은 내색도 해보고 때론 웃음 지으며 받아드려 고향을 향수 속에 묻어버렸다. 이제 본격적인 도청 건설 사업이 진행되는 2010년 경인년 설날이 다가온다. 볼 수 있는 고향은 사라져가지만, 느낄 수 있고 그리워할 수 있는 고향은 지금처럼 언제까지나 마음 속 깊이 고이 간직한 채 이곳 이주민들의 오랜 기억언저리에 물오름처럼 가득 차 오를 것이다.

▲ 신경리 주촌마을 방앗간 앞 마을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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