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월산 줄기따라 새롭게 형성돼 도·농이 공존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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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산 줄기따라 새롭게 형성돼 도·농이 공존하는 마을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0.03.22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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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홍북면 중계리 1 : 홍천마을


홍북면 중계리 홍천마을은 홍북면사무소의 동남쪽에 위치해있으며 동쪽으로는 홍성읍 소향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예산군 덕산면의 대동리와 낙상리가 위치해 있다. 또 남쪽으로는 홍성읍 월산리와 인접하고 북쪽으로는 중계리 동막마을과 상하1리가 인접해 있다.

홍천마을은 예로부터 백월산 줄기가 마을 가운데로 뻗어나와 부엉바골을 경계로 좌우에 형성된 마을이었다. 경지정리 이전의 홍천(洪川)은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개울가를 따라 논과 들이 형성되어 논배미마다 담수어족이 풍부해 겨울철이면 기러기와 두루미 등의 철새들이 모여드는 마을이라 해서 홍천(鴻泉)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홍천마을은 예로부터 함안 이씨와 청주 한씨들이 세거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넘말과 뒤뜸에는 함안 이씨들이 살았고 삼밭골에는 청주 한씨들이 살았다고 한다.

홍천마을은 4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개 1반과 2반을 합해 1차 문화마을이라 하고 3반과 4반을 합하여 2차 문화마을이라 한다. 홍천마을이 문화마을로 조성되기까지는 홍북면 중계리에 있는 17만 3811㎥의 매립용량을 갖춘 위생매립장(생활폐기물종합처리장)이 들어서면서 수혜사업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1차 문화마을은 마을이 들어서기전 밤산이었던 곳에 2000년 조성되었고 2차 문화마을은 야산으로 2004년에 조성됐다. 홍천문화마을은 도심외곽의 주택단지를 방불케 할 정도로 깨끗하고 개성있는 집들이 많아 외부에서 입향하는 인구가 점차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홍천마을은 150세대 12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로 벼농사와 딸기재배, 한우사육을 하고 있다. 또한 취나물을 재배하는 농가도 15세대나 된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딸기와 취나물은 작목반을 구성해 농협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홍천의 1, 2차 마을에 마을회관 2곳과 1차 마을과 2차 마을 사이에 복지회관이 위치해 있다. 복지회관은 각종 운동기구와 탁구대를 비치해놓고 주민들의 생활체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복지회관의 옆자리는 일제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나지막한 이 산을 동산모퉁이라고 불렀다. 이곳엔 철따라 해오라기와 백로가 날아들어 서식했는데 겨울에는 매서운 삭풍을 막아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고 전해온다. 이 산 뒤쪽으로는 정확한 연도는 알수 없지만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약 60여년의 역사를 가진 홍천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홍천교회는 1987년 6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홍성본부 사무총장으로 홍성지역 민주화운동을 실제로 주도했던 최광섭(53) 목사가 담임목사로 시무하며 지역운동을 했다. 최 목사는 1984년부터 1988년 말까지 결성면 형산리 구수동교회와 홍북면 중계리 홍천교회 담임목사로 있었다.

홍천마을은 예로부터 마을공동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며 두레도 다른 마을에 비해 일찍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1985년 홍천마을회가 창설되어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반별로 윷놀이를 하며 마을의 큰 잔칫날이 되고 있다.

현재 홍천마을에는 최재만(63) 이장이 5년째 마을 일을 돌보고 있으며 1차마을의 이호철(84)노인회장과 2차마을의 방윤식(76) 노인회장이 마을 발전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 1. 고암 이응노 화백 생가지 2. 고암 이응노 화백 기념관 건설 현장 3. 홍천1차마을회관 4. 홍천2차마을 건강관리실 5. 홍천복지회관 6. 중계교 7. 홍천교회 8. 생활폐기물종합처리장 9. 쓰레기소각장

고암 이응노 화백의 시대정신 이어가는 홍천마을

홍천마을은 동양의 사의적 표현, 꼴라주, 문자추상, 군상 등 한국 현대미술의 독특한 발자취를 남긴 거장 고암 이응로 화백(1904~1989)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고암은 1989년 86세 일기로 끝내 고국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일생동안 일제 식민기, 광복과 한국전쟁, 80년대까지 민주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시대정신을 가지고 치열한 작품 활동을 했다.

이에 홍성군은 지난 해 3월부터 생가복원을 비롯한 기념관 건립공사에 착수했다. 오는 6월 준공을 목표로 오는 2010년까지 48억 여원을 투입, 홍북면 중계리 일원 1만1000여㎡에 건립하는 고암 이응노 화백 생가 및 기념관은 전시공간, 체험공간 등을 갖춘 홍성의 대표적 문화 중심공간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기념관 내 전시공간으로는 20대의 젊은 이 화백이 비바람 부는 대나무 숲을 통해 자연의 생력을 느끼고 화폭에 담은 사건을 시작으로 고암의 심상변화에 따라 구성한 마음의 방과 이 화백의 생애와 유품을 테마와 시대변화 중심으로 스토리리 라인을 구성한 세월의 방, 영상방, 유품의 방 등이 고암의 삶을 재조명 하게 된다.

특히 영상 전시실에서는 예술가로 살아가는 고암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통해 고난과 역경의 근·현대사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재조명하고, 고암의 미술세계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이 화백에 대한 이해를 돕게 된다. 이밖에도 죽사그림방을 통해 한국화, 서예, 판화 등 어린이를 위한 미술교육과 기획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고암 생가는 관련 문헌 등 자료를 토대로 안채와 헛간채를 기역자 형태로 배치하고 목재를 이용해 원형으로 복원하고 싸리나무와 탱자나무 울타리, 대나무 숲 등 도 조성해 고암의 생가를 그대로 재현한다. 또한, 야외에는 문자 추상의 조형물과 함께 문자 추상 기본형태 그려보기 등 흙 놀이와 함께 자연소재를 활용한 학습공간이 자리 잡게 된다.


<마을 주민들은 바란다>

홍천1차마을, 뒷산 밤나무 제거해 마을 소득에 기여할 수 있기를
홍천2차마을, 전천후 게이트볼장과 수질 및 도로포장에 대한 대책 마련


홍천 1차 마을 주민들은 마을 뒷산에 우거져있는 밤나무를 벌목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현재 홍천 1차 마을 뒷산에는 밤나무가 우거진 가운데 산 전체에 자연스레 고사리가 분포되어 고사리 밭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하지만 밤나무로 인해 고사리 채취가 어려워 그대로 방치되고 있으며 지난 해 마을 주민들이 소득창출을 위해 식재한 잣나무가 밤나무로 인해 제대로 자라지를 못한다고 한다. 또한 밤나무의 특성상 흙을 지탱하는 잔뿌리가 약해 장마나 홍수 등으로 옹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밤나무 벌목을 군에서 사업하고 있는 공공근로 일자리 창출로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과 함께 고사리 채취와 잣나무를 식재해 마을 소득창출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랬다.

홍천 2차 마을 주민들은 마을 건강관리센터 옆에 위치해 있는 게이트볼 장이 전천후 게이트볼장이 아닌 야외 게이트볼 장으로 이뤄져 주 이용층이 노인인 점을 감안하면 여름에는 내리쬐는 햇빛에 이용을 못하고 겨울에는 추위로 인해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현재 군에서 전천후 게이트볼장으로 제조성하기해는 면적이 좁아 불가능하다는 의견에 대해 마을주민들은 규격이 작아지더라도 전천후 게이트볼 장으로 재조성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마을 입구에서 우측으로 나있는 소향리로 이어지는 도로 4~500미터에 대해 도로포장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이 도로는 오래전부터 마을주민들이 홍성 5일장을 보러 가거나 읍내로 나가기 위해 지나던 지름길로 도로포장이 이뤄지지 않아 주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고 있다. 하지만 군에 건의해 본 결과 도로포장이 이뤄지려면 토지소유주에게 사용승낙허가를 받아야 되는데 현재 토지소유주 6명이 대부분 외지에 있는 사람들로 승낙서를 받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또 마을 상수도의 수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원천 2차 마을의 상수도관이 농로에 위치해 있다 보니 농사를 짓는 데 쓰이는 비료의 질소분이 유입되어 수돗물을 받아 놓으면 이끼가 생긴다며 식수로 사용하는데 부적격한 것 같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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