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령부터는 덕유산의 품 속이다
상태바
육십령부터는 덕유산의 품 속이다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홍성고 20회)
  • 승인 2010.05.04 0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7구간

최근에는 주 5일제 근무, 공무원들의 연가사용, 건강 지키기 등 수많은 갖가지 사연을 안고 휴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삼삼오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까닭이다. 옛 사람들은 산과 강이 서로를 넘보지 않는다고 여겼다. 비록 높은 산이 이웃해 있어도 사이에 물이 있으면 산줄기는 돌아갔고, 평야에서도 산맥이 흐르면 물줄기는 물러선다고 했다. 백두대간은 그렇게 산과 물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달린다. 특히 산꾼들에게 백두대간의 의미는 속이 더 깊다. 백두대간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민중의 한이 서린 지리산까지 거침없이 뻗어 내린 산줄기다. 금강산을 넘고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과 태백산, 속리산을 이어 달린다. 그 힘이 하도 세차고 맑아 한반도를 받치고도 남는다.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에 닿아서도 숨가쁨을 모른다. 그 장엄한 달리기에서 이 땅의 숱한 물줄기를 낳고, 평야를 길러낸다. 백두대간은 곧 이 땅이며 생명이다.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홍성고 20회)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한 산행기를 연재,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0년 4월 17일~18일
구 간 :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산-삿갓봉- 삿갓재-황점 
도상거리 : 19.95km
산행시간 : 8시간 50분 소요

 

 

 

 

▲ 남덕유산

화사하게 핀 벚꽃들의 환영을 받으며 잠실에 도착한다. 강화도에서 출발한 대원이 구제역 때문에 40여분 늦은 23시 40분에 잠실을 출발하여 03시경 육십령에 도착한다. 육십령 동쪽 함양고을 서상면의 피적래 마을은 육십령주변에 살던 주민들이 도적떼를 피하여 자리잡은 마을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일어난 논개의 의거로 장수를 잃은 왜군이 논개의 고향인 장수 대곡리에 사는 신안 주씨들을 심하게 박해하자 신안 주씨들이 화를 피하여 이곳으로 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틈만 나면 현해탄 건너려하며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부리는 도적놈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육십령이다. 03시30분 육십령을 향해 힘차게 출발한다. 육십령부터는 덕유산(1614m)의 품속이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덕유산

덕유산! 최고봉은 향적봉(1614m)이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하여 덕유산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설천면의 경계에 솟아 있으며 북덕유산(향적봉)과 남덕유산으로 나뉜다. 남덕유산은 경상남도 함양군과 거창군, 전라북도 장수군 경계에 솟아있다. 두 산봉사이의 약20km 구간에는 해발고도 1300~1400m의 소백산맥 주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으면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경계를 이룬다. 주봉우리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무풍면의 삼봉산(1254m)에서 시작하여 대봉(1300m), 덕유평전(1480m), 중봉(1594m), 무룡산(1492m), 삿갓봉(1410m)등 해발고도 1300m 안팍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있어 일명 덕유산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동, 서 비탈면에서는 황강과 남강 및 금강의 상류를 이루는 여러 하천이 시작되어 낙동강수계와 금강수계의 분수령 역할을 한다. 계곡은 총8곳이 있는데 특히 북동쪽 무주와 무풍사이를 흐르면서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으로 흘러드는 길이30Km의 무주구천동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다. 무이구곡을 비롯한 구천동33경과 칠련폭포, 용추폭포 등이 장관이고 안성계곡, 송례사 계곡, 산누리 계곡 등도 명소로 꼽힌다. 6월 초순에는 20Km의 능선과 등산로를 따라 펼쳐지는 철쭉군락이 볼만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구천동 계곡이 피서객들로 가득 찬다. 또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겨울에는 눈에 덮인 구상나무와 주목, 바람에 휘날리는 상고대가 장관이다. 1975년2월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번 대간길은 그중 육십령에서 할미봉, 서봉, 남덕유산, 삿갓봉 까지다. 육십령에서 할미봉(1026.4m)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덕유산의 남쪽을 지키고 있는 할미봉은 넉넉함이 미덕인 덕유산의 영역에서 제법 옹골찬 모양새다. 정상의 암봉은 막힘이 없어 주변조망이 일품이다. 북으로 남덕유의 우람한 두 봉우리를 올려 다 보게 되고 동으로 월봉산, 금원산, 황석산을 볼 수 있으며, 남으로는 갓걸이산, 백운산, 장안산, 왕산, 지리산 줄기가 조망된다. 서쪽으로는 무등산, 팔공산, 덕태산이 보이며 운장산도 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날이 밝지 않아 아득하게 가로등만이 길을 밝히고 있다.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계내면의 행정구역인 할미봉엔 기암 괴봉으로 이루어진 형제바위, 대포바위가 있고 이곳에서 서상면으로 흘러간 빗물은 남강 물길 따라 진양호를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되고, 장계면으로 쏟아져 내린 계곡물은 금강물줄기를 따라 용담호를 거쳐 군산앞바다로 들어간다. 할미봉아래는 성터가 있다. 할미봉의 이름은 이 할미성에서 연유한다. 옛날 어느 할머니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할미성이라고 했고 자연스럽게 할미성이 있는 산봉우리를 할미봉이라 했다는 것이다. 할미봉을 내려서는 길은 제법 까다로운 암릉길 이다. 특히 겨울에는 가파른 경사에 눈이 달라붙어 얼어있기 때문에 발바닥에 온 신경을 다써야하며 1시간씩 지체되기도 한다. 할미봉을 내려서면 능선은 비로소 부드러워 진다.

 

 

 

 

 

 

▲ 남덕유산

가파른 비탈을 조심스럽게 올라서면 헬기장에 도착(06:30)한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 준비한 음식들을 나누어서 아침식사를 맛있게 한다. 따끈한 커피한잔을 뒤로하고 가파른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오르면 서봉이라고 불리는 장수덕유산(1510m) 정상에 도착(07:10)한다. 서봉의 정상은 두 곳으로 되어있다. 국립공원에서 세워놓은 정상표시판이 있는 곳이 조금 높아 보이고, 함양군에서 세워놓은 정상석이 있는 곳은 넓은 평지로 되어있다. 단체로 기념사진 촬영 후 남덕유산을 향해 가파른 철계단을 단숨에 내달리면 우측으로 남덕유산을 끼고 대간길은 좌측능선으로 이어진다. 대간길에서 비켜서 있지만 남덕유산(1507.4m)은 북덕유와 달리 산사나이 기상으로 솟은 바위뼈대로 개골산이라고 한다. 산경치가 묘향산과 금강산을 닮아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남덕유산에서 가파른 철 계단으로 1시간 30분정도 내려가면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인 영각사가 있다. 876년(신라헌강원2) 심광이 창건하였다. 1770년(조선영조46) 상언이 장경각을 짓고(화엄경) 판목을 새겨 봉안한 곳이다. 상언이 이절의 승려들에게 절을 옮기지 않으면 수해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나 아무도 새겨듣지 않았는데 얼마 뒤에 큰 홍수가나 절이 무너졌다고 한다. 190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강용월에 의하여 곧바로 중창되었다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으며 1959년 법당을 중건하였다. 건물로 주락전과 화엄전,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석릉부재와 부도6기가 전한다. 부도는 모두 석종형으로, 절입구에 있는 해운과 용월의 2기만 주인을 확인할 수 있다.

 

 

 

 

 

 


백두대간 길은 여기서 동남쪽으로 월봉산(1279m), 금원산(1353m)~기백산(1330.8m)으로 이어지는 튼실한 산줄기 하나를 가지 친다. 이 산줄기는 함양과 거창의 울타리가 되니, 남덕유산을 지나면서부터 분수령 동쪽으로는 거창 땅이 펼쳐지게 된다. 거창을 둘러보자. 덕유산을 말할 때 고향이 거창 북상면 마학동인 갈천 임훈(1500~1584)을 빼놓을 수 없다. 1540년 생원시에 합격해 사직서참봉, 광주목사 등을 지낸 뒤 1582년 장예원 판결사에 임명되었으나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온 인물이다. 마학동에 서당을 열어 후학들의 학문을 갈고 닦는 전당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산청의 조식, 함양의정 여창이 경상우도의 영남학파를 형성할 때 거창유림의 전통을 세웠던 동계 정온이 바로 갈천의 제자다. 등산을 즐겼던 갈천은 나라의 여러 명산을 두루 답사 했는데, 덕유산을 오르고 쓴 글이 바로 <등덕유산 향적봉기>다. 2권 4책의 <갈천집>에 전해지는 이 기행문은 갈천이 52세 되던 해인 1552년 쓴 글로, 16세기 당시의 덕유산 정경과 주변의 풍물, 지명에 대한 유래 등이 소상히 적혀있어 덕유산의 옛 모습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덕유산의 동쪽 품엔 거창, 서쪽 품엔 무주 

백두대간 분수령인 덕유산에서 동쪽의 거창을 향해 흐르는 갈천, 월성천, 산수천, 분계천 등이 모여 위천이 된다. 이 물줄기는 위천면으로 들어서면서 구연폭포와 구연소를 만드는데, 물에 솟은 큰바위가 바로 수 승대다. 생김새가 거북을 닮았다고 해서 구연대 나 암구대로 불렸던 이 거북 바위의 원래 이름은 시름을 보낸다는 뜻의 수송대였다고 한다(네이버). 이어 백두대간 산줄기는 월성치에서 숨을 고르곤 다시 삿갓봉(1410m)에서 몸을 솟구친다. 삿갓봉부터 분수령 서쪽은 무주 땅이다. 즉 백두대간 길은 여기서부터 동쪽 품엔 거창을, 서쪽 품엔 무주를 안고 이어진다. 굽이굽이 봉우리 넘나들 때마다 덕유의 너른 품안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잃다보면 어느덧 삿갓봉에 오른다(11:10).

날마다 다른 날을 맞이하고 날마다 다른 일과 사건들을 접하면서 울고 웃고 슬픔과 기쁨사이를 널을 뛰다보니 어느새 육십평생이 훌쩍 넘어섰다. 그동안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더러는 영영 헤어지는 아픔도 겪으면서 어느새 내 앞에도 건너갈 수밖에 없는 다른 세상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어렵게 올라선 삿갓봉에서 내 인생 여정과, 주변과 내 안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아련한 아픔들이 몰려옴이 당황스럽습니다. 애써 먼데 산을 바라보며 그 사람들을 다독다독 감싸 안아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어쩌면 행복인지도 모릅니다. 시원한 물 한모금의 위안이 몸과 마음에 평정을 되찾게 합니다. 남덕유산 자락의 삿갓봉,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강력한 데자뷰(처음 보는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가 들게 한다.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삿갓봉을 비롯해, 포항 내연산 줄기의 삿갓봉, 마이산 줄기의 삿갓봉 등 조금 뾰족하다 싶은 봉우리에는 삿갓봉이라는 이름이 삿갓처럼 씌어져 있다. 남덕유산자락의 삿갓봉은 그러나 다른 삿갓봉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다음 대간길인 무룡산에서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 떡하니 머리를 얹고 있어 웬만한 명산에 뒤지지 않는 산세를 지니고 있다. 무룡산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서 사면 길을 따라 30분정도 걸으면 오늘에 목적지 삿갓골재에 도착한다.(11:50). 오른쪽으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아이젠 때문인지 곳곳이 패인 흔적을 따라 3분정도 내려가면 왼쪽으로 참 샘이 나타난다. 1200m의 높은 곳에 이렇게 시원하고 맑은 물이 솟아난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다. 참 샘에 목을 축이고 본격적인 하산에 들어간다. 갈림길이 없음으로 하산 길은 외길이다. 계곡 이쪽저쪽으로 다리를 네 번 정도 건너가다 보면 시원한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계곡이 약간 길기는 하지만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 힘이 적게 드는 편이다. 어느덧 날머리인 황점마을에 도착(13:10)한다. 버스를 타고 육십령에 있는 식당에서 때늦은 점심으로 김치찌개에 쇠주 두어 잔으로 피로를 덜어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