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고기 오색구름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듯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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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고기 오색구름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듯한 풍경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홍성고 20회)
  • 승인 2010.08.2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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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 유태헌의 전국 100대 명산 산행기 <3> 부산의 '금정산'②

 

금정산


눈 앞에 펼쳐진 경관이 장관이다. 북쪽으로는 거대한 영남알프스가 구름과 함께 신비롭고, 서쪽에 낙동강 굽이굽이 그 곁을 경북선 열차가 달린다. 동쪽엔 동해바다가, 또 남쪽으로는 태종대 앞 태평양 끝자락에 대마도가 어렴풋이 잡힐 듯하다. 때마침 구름에 덮여 있던 부산의 심장 백양산이 모습을 드러낼 즈음 낙동강 쪽으로 거대한 운해가 바다의 모습으로 변해버린다. 고당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뒤편에 노산 이은상 선생님의 시 한 수 읽어본다.

돌우물 금빛고기 옛전설 따라
금정산 산머리로 올라왔더니
눈앞이 아득하다 태평양물결
큰포부 가슴속에 꿈틀거린다

400여년 전 밀양사람인 박씨가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 범어사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신명을 바쳐 대중의 칭송이 대단했다. 이 보살은 큰 스님에게 "제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고당봉에 고로영신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 주십시오. 고당봉에서 수호신이 되어 범어사를 돕겠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화주보살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해마다 정월보름날과 단오날 두 차례 제사를 지냈더니 과연 범어사가 아주 번창한 사찰이 되었다. 한때 젊은 스님들이 당제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당집을 훼손했는데 그 뒤로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 다시 고모당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고모당의 신성함과 영험함을 알려주는 전설이다. 그래서 정상이 고당봉이며 지금도 한 평 남짓한 산신각이 정상에 있다.

때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친구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밥이며 반찬, 그리고 제철과일인 자두, 복숭아, 참외 등, 초등학교 동기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친구가 부럽다고 했더니 후배하고 살고 있는 네가 더 부럽다는 친구의 말에 우리들은 서로 비겼다며 껄껄껄 크게 웃었다. 웃다 보니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이 죽을 때 모두가 껄껄껄 하고 죽는다고 한다. 잘 살아서 껄껄껄 웃고 죽는 것이 아니라 후회하는 3가지 즉 첫 번째 껄은 용서할껄, 두 번째 껄은 베풀껄, 세 번째 껄은 재미있게 살껄 이란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게, 남을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고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한다.

잠시 후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그 색이 황금과 같아 금빛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고 하고 산 아래 절을 지어 범어사라 이름했다는 전설의 금샘에 도착한다(14:20). 금샘을 뒤로하고 세심정(洗心井) 급수대에 도착한다. 금정산을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하여 1993년 8월에 준공한 급수대로 마음을 씻는 우물이란 뜻이다. 세심정을 지나면 금정산성이 시작되고 북문이 우릴 기다린다(14:00).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 (숙종 29년)에 국방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해상을 방어할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 17km, 높이 1.5~3m, 면적은 8.212km²에 이르는 국내산성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성이다. 언제 산성을 쌓은 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대에 남해에 왜구의 침입이 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현종8년)에 통제사 이지형을 불러들여 왜구의 침략을 방어할 대책을 강의하는 가운데 금정산성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1701년(숙종 27년)에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로 이듬해에 성을 준공하였다.

북한산성도 숙종 때 준공된 것으로 보아 숙종이 강한 군주임이 틀림없다. 그 후 1807년(순조7년)동래부사 오한원이 동문을 준공하였고 이듬해 서․남․북문의 문루를 완성하였다.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74년 동․서․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 북문을 복원하였다. 북문을 지나 산성에 올라서면 좌측은 계명암과 계명봉을, 우측은 낙동강과 김해평야를 품고 남으로는 광안대고가 선명하게 보인다. 성벽과 나란히 가는 돌계단 능선을 따라 삼각점과 나무에 걸린 표지판(낙동정맥 원효봉 689m)이 있는 원효봉에 오른다. 원효봉 좌측에는 무명바위와 은벽이 나를 부른다. 조용한 산길에 때깔도 좋은 장끼 한 마리가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덤불속에서 기어나와 갑자기 날아오른다. 내가 더 놀랬다, 이노마! 나이가 들면 무서움을 덜 탄다더니 아직은 젊은가 보다.

잠시 후 의상봉에 도착한다(15:00). 신라의 고승인 원효와 의상이 661년 (문무왕1년)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당황성(남양)에 이르러 어느 무덤 앞에 잠을 잤다.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날이 새어 깨어보니 잠결에 마신 물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사물 자체에는 정도 부정도 없고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을 깨달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라고 대오했다. 원효는 그 길로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와 속세 속으로 들어가 괴질병 환자들과 생활하기도 하면서 파계승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원효스님을 성인으로 대우한다고 한다.

잠시 후 새롭게 복원된 성벽을 따라 제4망루에 도착한다. 좌측의 부채바위를 뒤로하고 주변경관이 뛰어난 제3망루에 올라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좌측의 나비바위, 동자바위, 거북이고추바위를 바라보며 동문에 도착한다(16:00).

유일하게 차가 지나가는 산성고개를 지나고 대륙봉을 지나 좌측능선을 따라 봉추사, 토굴암, 황용사, 광명사를 지나 오늘에 날머리 온천장 입구에 도착한다 (17:00). 친구는 집으로 차를 가지러 가고 18시 30분에 온천장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난 그 동안에 동래온천에서 목욕을 하기로 하고 그 유명한 허심청 온천탕으로 향한다. 30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온천시설이 놀랍다. 미끈미끈한 온천수에 샤워를 하고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가니 온몸이 녹는 듯한 기분에 피로가 확 풀린다. 약속장소에 와보니 친구는 베이지색 애마에 선글라스를 끼고 기다리고 있다.

내려오면서 예약한 산성막걸리가 유명한 산성마을로 향한다. 지금의 금성동을 속칭 산성마을이라 부른다. 산성에는 3개의 마을이 있는데 남쪽의 맨 위쪽이 공해마을이고 옛날 군관건물 식량창고가 있었다. 가운데 마을이 중성문이 있었던 중리마을이고 서쪽 방향의 아랫마을이 화살 만드는 대나무 산지인 죽전(竹田)마을이다. 또한 옛날부터 누룩생산이 유명했는데 그만큼 물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최초로 술을 만든이는 국 씨와 두 씨였는데 임진왜란 때 왜놈들한테 모두 납치되고, 철마에 살던 김 장사가 이주해 마을을 새롭게 일으켰다 한다. 이후 이 마을이 산성마을, 공해마을이라 한다.

미리 예약한 감나무집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친구의 오랜 단골식당이다. 겨울 같으면 염소불고기가 유명한데 여름이라 오리백숙을 미리 시켰단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가 돌아가는 모습은 30년전 왔을 때와 시설도 환경도 주변도 모두 똑같다. 준비해온 한상 가득 옛 맛 그대로다.

옛 맛 그대로는 또 있다. 바로 산성막걸리다. 16세기 금정산성축성 때 군졸들이 먹기 위해 만들었던 쌀 술, 즉 산성토산주(산성막걸리)는 78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지역 특산물로 양성화된 후 생산되기 시작하였으며 지하 182m에서 나오는 지하수와 이곳 누룩으로 생산한다. 이곳의 물맛이 뛰어나 다른 지역에서는 이 맛을 낼 수가 없다. 우리의 맛, 우리의 술, 그리고 전직 대통령이 즐겨 마셨던 술, 그건 비싸게 해외에서 들여 온 양주도 아니요, 알콜에 물을 희석한 소주도 아니다. 우리 국민이 힘들게 일한 후 시원하게 한 사발 들이키며 기분 좋게 일터로 나가게 해줬던 우리의 술, 민족주 1호 부산 금정 산성막걸리다. 더구나 요즘 막걸리 붐이라고 여기저기서 막걸리를 만들지만 우리 방식 그대로 우리 맛을 내는 막걸리는 산성막걸리 뿐이다. 막걸리 잔에 가득 채우고 친구와 둘이 건배를 한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지혜가 필요하다.

첫째 눈(目)을 즐겁게 하자
둘째 귀(耳)를 즐겁게 하자
셋째 입(口)을 즐겁게 하자
넷째 몸(身)을 즐겁게 하자
다섯째 마음(心)을 즐겁게 하자

즉, 이목구심신(耳目口心身)인 오감을 위하여 오늘 대자연의 경관에 눈이 즐거웠고 물소리, 새소리에 귀가 즐거웠으며 이렇게 맛있는 술과 음식이 있어 입이 즐거웠다. 금정산 산행에 몸이 건강해졌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마음이 즐거웠다. 다시 한 번 술잔을 부딪치며 오감을 위하여 건배!

친구와 함께 나눈 즐거운 추억들이 내일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정담을 나누고 산행을 같이 하며 술잔을 부딪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오늘 행복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해야 한다. 친구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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