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보다 높은 대야산, 탁트인 골짜기와 동서남북 막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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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다 높은 대야산, 탁트인 골짜기와 동서남북 막힘이 없다
  • 유태헌(서울본부장)
  • 승인 2010.10.2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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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16구간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홍성고 20회․손전화 010-3764-3344)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해 산행기를 연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0년 9월 18일~19일
구 간 : 늘재-청화산-조항산-대야산
불란치재-촛대봉-곰넘이봉
버리미기재
도상거리 : 17.49km
산행시간 : 10시간 30분 소요



금강산 남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조항산'

몸의 감각이 제아무리 무딘 사람이라 해도 늘재 부근을 지날 때면 맑고 밝은 분위기로 인해 한없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조선의 빼어난 인문지리학자인 이중환도 자신의 저서 '택리지'에서 이 일대를 일컬어 '금강산 남쪽에서는 으뜸가는 산수'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한편 희양산 남쪽기슭엔 한국 불교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봉암사가 터를 잡고 있거니와, 가은고을에서 견훤 흉을 봤다간 냉대를 받을지도 모르다. 견훤이 가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간 길은 이중환도 극찬한 구간이니 가슴 설렌다.

새벽03시경 늘재에 도착, 성황당에 있는 산신께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상쾌한 공기와 부드러운 마사토 흙길을 걷는다. 감촉이 너무 좋다. 미끈한 바위들이 어우러지고 그들을 비집으며 뿌리내린 분재소나무가 손을 잡아주고 당겨준다. '정국기원단' 제단 앞에 올라서면 문장대 구간과 속리산 주능선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캄캄한 밤이라 아쉬움이 크다. 잠시 힘들여 능선을 오르면 청화산(984m)이다(04시40분). 늘재의 잠룡이 승천하는 형국이라는 청화산은 부드러운 능선과 날카로운 암릉이 적절히 섞여있다. 정상부근의 바위에서 사방으로 탁 트인 주변 산하를 바라보는 일은 정말로 행복하다. 비록 풍수를 보는 눈이 뜨이지 않은 평범한 사람도 여기서는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 땅의 산하를 사랑한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 역시 청화산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다. "청화산은 내선유동과 외선유동을 위로 두고 앞으로는 용유동을 가까이 두고 있는데 수석의 기이함은 속리산보다 훌륭하다. 산의 높고 큼은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 같은 험한 곳은 없다. 흙으로 된 봉우리에 둘린 돌은 모두 맑고 깨끗하여 살기가 적다.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을 가린 곳이 없으니 거의 복지다. 이정도의 극찬이니 이중환이 스스로의 호를 '청화산인'이라 칭했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중환과 청화산의 인연을 아는 사람들은 이곳 어딘가에 이중환과 관계되는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청화산에서 갓바위재로 가는 길은 분수령 좌우로는 가파르지만 능선은 부드러운 편이다. 858봉에서 내려서는 작은 암릉길에서 갑자기 전망이 탁 트인다. 골산다운 풍채가 돋보이는 조항산의 모습이 산뜻하고 아름답다. 조항산에 오르기 전 흙과 바위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갓바위재에 도착한다(06시30분). 아침식사 전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목을 축이고, 식사 후 따끈한 커피로 피로를 푼다. 갓바위재를 지나 괴산군 청정면과 문경시 농암면에 팔을 벌리고 있는 조항산(951m)에 도착한다(07시50분). 멀리서 보면 갓바위봉으로 이어지는 정상부가 새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바위들이 울퉁불퉁 흘러내려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여쁘게 다가오는 조항산은 청화산인 이입에 침이 마르도록 상찬한 청화산의 미학에도 뒤지지 않는다. 산 정상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바위가 하나 있고, 그 앞에는 작은 정상석이 마귀할멈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가야할 마귀할멈통시바위와 손녀마귀바위 암릉과 좌로는 중대봉의 대습랩이 북한산의 인수봉과 도봉산의 선인봉에 뒤지지 앉는다. 조항산 동쪽의 궁기리는 후삼국시대 한반도의 한쪽을 맡아서 한세상 풍미했던 견훤이 활을 쏘며 야망을 키웠던 곳이다.

조항산 입구 삼송리에 수령 약 600년의 용송(천연기념물290호)이 있다. 소백산 줄기에 속해있으며 주변엔 선유계곡, 쌍곡계곡, 화양동계곡 등이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금강산 남쪽에서 가장아름다운 산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산사면이 광산과 채석장으로 파헤쳐져서 흉물스런 모습이다. 우리 인간의 몸을 저렇게 도려냈다면 고통소리가 하늘 끝까지 울려 퍼졌을 터인데 자연은 말이 없다. 이중환이 살아나와 저 모습을 보았다면 얼마나 가슴치고 통곡할 일인가?

조항산을 내려오면 고모치(고모령)다. 이곳은 경북과 충북을 잇는 12km가 되는 험준한 재로 옛날 이곳에 고모와 홀로된 질녀가 살았다 한다. 어느 날 질녀가 병사하자 고모가 이를 애달프게 여겨 식음을 전폐하고 고개에 오라 질녀의 이름을 부르다 쓰러져 죽자, 후세사람들이 고모의 넋을 달래기 위해 고모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고모의 아름다운 마음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바로 아래 있는 고모샘에서 약수한잔을 들이키니 물맛이 일품이다. 맛은 차고 부드러웠다. 이제부터는 고모샘의 물 힘으로 가야지... 계속되는 오름길, 멀리 마귀할멈 바위의 위용이 대단하다. 뒤를 돌아보면 나뭇가지사이로 언뜻언뜻 비쳐지는 마귀할멈이 여러 모양으로 변해 보인다. 오뚝한 코, 하늘을 향해 입을 쩍벌리고 드러누운 섬뜩한 모습 같기도 하다. 마귀할멈, 그것도 모자라 손녀마귀까지 합세하여 겁을 준다.

대야산 제일의 명소, 문경팔경인 용추 

09시40분 밀재에 도착하니 대야산과 중대봉에서 하산하는 산님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부터 대야산, 장성봉, 악휘봉까지가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하니 당연히 출입금지구역 이다. 또 죄인이 된다. 세상살이 자체가 죄의 굴레이고 인생 또한 그 가운데 있다. 급경사길, 있는 힘을 다해 오른다. 아슬아슬한 로프도 타고, 그러나 대야산은 오리무중이다. 중대봉의 대습랩이 멀리서 위압감을 준다. "대야산은 하늘보다 높은데 있는가 보다."

드디어 10시40분경 대야산(930.7m)에 오른다. 경북 문경시와 충북 계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대야산은 속리산 국립공원 안에 포함돼 있고, 시원한 계곡과 반석이 특징이다. 특히 용추의기묘한 모습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대야산의 용추와 외선유동 계곡은 경북 쪽에 있고, 충북 쪽으로 내선유동계곡과 화양동구곡을 두고 있어 여름철에는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대야산 제일의 명소는 문경팔경의 하나인 용추다. 거대한 화강암반을 뚫고 쏟아지는 폭포아래에 하트형으로 패인 소가 윗용추이며, 이곳에서 잠시 머물던 물이 매끈한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아래용추를 빚는다. 용추에서 20여분 오르면 월영대가 반긴다. 달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비친다 해서 월영대라고도 한다.

대야산용추의물은 문경외선유동 계곡으로 흘러간다. 선유동계곡에는 학천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숙종 때의 학자인 이재를 기리기 위해 1906년에 세운 것이다. 여기서부터 선유구곡이 시작된다. 옥석대, 난생뢰, 영귀암 ,탁청대 등의 음각글씨는 신리시대 최치원이 남긴 것이라고 전한다. 특히 문경선유동의용추는 늘 초록빛 투명한 물이 넘쳐흐르고 있어 신비감을 자아낸다. 주변 바위에는 옛날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용 비늘 자국이 있다. '대동여지도'에도 내외선유동으로 구분하여 적고 있으니 당시에도 제법 이름을 드날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두개의 선유동 가운데 칠성대와 용추가 있는 문경 쪽의 선유동 명성이 좀 더 높았던 것 같다. 상주 출신으로 조선에서 손꼽히는 예학자였던 우복 정경세(1563-1633)가 외선유동산수의 기묘함과 수려함에 감탄하여 이르기를 '가이완장운'이라했다. '골짜기가 탁 트여 창자가 시원하다'는 뜻이다. 현재의 완장 이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을 것이다. 또 전해오는 말로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지사로 종군했던 풍수가 두사충이 백두대간을 넘어 이곳으로 들어서다 선유동 경관을 보고는 창자가 시원하다며 '완장'이라 했다고 한다. 대야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동서남북 막힘이 없다. 오늘따라 운해가 받쳐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다음 구간인 장성봉과 파리가 앉으면 미끄러질 것 같은 암벽의 희양산도 보인다. 아래로는 촛대봉이 오뚝하고 가야할 곰넘이봉은 색안경을 끼고 우리를 주시한다.

 

 



그러나 감상도 잠시뿐 로프 구간이 기다리고 있다. 스틱을 접고 대체로 수월한 3개의 로프 구간을 내려선 후 아래를 내려다본다. 거의 직각에 매달려 있는 로프, 그 아래는 까마득한 절벽이다. 떨어지면 인생도 끝이고 대간도 끝이다. 부상이 아니라 사망이다. 그래도 겨울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조심스럽게 로프를 잡고 내려선다.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공포의 대야산은 그렇게 우리를 내쫓고 있었다. 마지막 로프를 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촛대재를 지나 촛대봉에 오르는데 어서와 하며 또 다른 로프가 손을 내민다. 몇 번을 오르내리며 불란치재에 도착한다. 옛 이름은 불한령이다. 춥지 않은 고개란 뜻이다. 옛날에는 통행량이 많았는데, 이제는 흔적만 남아있다. 미륵바위를 지나 곰넘이 봉에 오를 때까지 로프는 보이지 않는다. 정상부에는 넓은 너럭바위로 되어있고 작지만 위엄이 느껴지는 곰넘이봉(733m) 정상석이 서있다. 서둘러 정상을 내려선다. 3개의 위험구간을 지나면 오늘에 날머리인 버리기미재에 도착한다(13시30분).

경북 문경의 가은당과 충북 괴산의 선유동을 오가는 백두대간의 작은 고개인 버리미기재, 대체 무슨 뜻인가? 어떤 이는 '보리먹이'로서 '버리(보리)'와 '미기(먹이)'의 합성어라 한다. 보리나 지어먹던 '궁벽한 곳'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빌어 먹이다'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한 지명이라고 한다. '벌어 먹이든, 보리 먹이든' 어쨌거나 버리미기재라는 지명엔 궁벽한 산골에서 불 놓아 마련한 손바닥만한 다랑이 논에 질긴 목숨을 의탁해야 했던 화전민들의 신선한 삶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만 같다. 후미를 기다리며 시원한 계곡물에 찌든 땀을 씻어내고 소주 한잔씩 주고받으며, 이번 구간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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