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 당시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몸을 숨겼던 천혜의 은신처 '평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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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 당시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몸을 숨겼던 천혜의 은신처 '평천지'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 승인 2010.11.0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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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18구간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ㆍ홍성고 20회ㆍ손전화 010-3764-3344)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해 산행기를 연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0년 10월 16일~17일
구 간 : 은티마을-베너미평전-이만봉-공틀봉-백화산-황학산-조봉-이화령
도상거리 : 17.45km
산행시간 : 8시간 30분 소요 



야경이 화려한 잠실 석촌호수 주차장을 11시가 넘어서 출발한 뻐스는 휴게소에 잠시 머문뒤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어둠을 밝힌 채 꼬불꼬불한 도로를 달려서 새벽 02:00경 은티마을에 도착한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전리에 있는 은티마을은 초입에 서있는 노송들이 사열 하듯이 즐비하게 서있다. 또한 장승과 마을 유래비도 함께 서있다. 은티마을은 어느 산골마을처럼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 형세가 마치 여성의 성기 같은 여근곡(女根谷)이다. 이를 여궁혈(女宮穴)이라 표현하고 있다. 센 음기를 막기 위한 풍수의 하나로 남근석과 전나무들을 심어놓았다. 마을 유래비가 이마를 역사를 잘 말해준다. 대형 주차장 까지 마련해 놓았다. 희양산, 구왕봉, 마분봉, 악휘봉 등을 산행하기 위해선 이 마을을 통과해야 한다.

야간 산행을 위해 장비를 준비하고 02:20 힘차게 출발한다. 맑은 개울을 끼고 포장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개울을 건너 산기슭으로 올라 서기 시작한다. 가파른 능선 비탈길을 오르는 코스로 처음부터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물소리, 바람소리 벗 삼아 걷기를 한 시간여 만에 배너미평전에 03:20경에 도착한다. 먼 옛날 천지개벽 때 배가 올라 왔다는 전설이 있는 배너미평전은 능선 상에 분지를 이룬 특이한 지형으로 백두대간이 직각으로 꺾이는 곳으로 대간 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이어진다. 잠시 쉬었다가 출발하여 한 시간여 만에 이만봉(990m)에 도착한다.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에서 충북 괴산과 경계를 이루며, 가은읍 원정리 홍문정성골을 중간에 두고 희양산과 시루봉, 이만봉이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이만봉이란 산 이름은 옛날 임진왜란 때 이곳 산골짜기로 2만여 가구가 피난을 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설과 또 이만호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이 산에 들어와 살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만봉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면 정상석이 없는 곰봉(곰틀봉)에 도착한다. 옛날에 산속에 곰이 서식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은 곰은 보이지 않고 멧돼지나, 너구리, 토끼, 꿩 등은 아직까지 많다고 전해진다. 백두대간의 분수령의 모양은 거대한 용이 좌우로 몸을 틀며 기어가듯이 남동으로 향하다가 다시 동쪽으로 몸을 튼다. 아마 백화산을 지나면 어느 틈엔가 북서쪽으로 머리를 돌린 것이니 대간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풍경으로 신기하기 그지없다. 곰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일품이다. 동으로는 앞으로 가야할 백화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 이만봉 정상이 가깝게 건너다보이며, 오른쪽에 시루봉, 악희봉, 그리고 멀리 군자산이 시야에 와 닿는다.

곰봉을 내려서는 능선 길은 기암절벽으로 이어진다. 마치 톱날처럼 날카로운 바위지대를 지나 아기자기한 암릉 길은 지루하지 않아 좋다. 북진하는 대간 길은 계속 동쪽으로 향하여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가파른 고개라는 사다리재를 지나 981m봉을 넘어 평전치에 07:10 경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한다. 연풍 분지리에서 가은읍 상내로 내려가던 옛 고개로 천주교박해 때 신자들이 평전치로 올라와 백화산일대 대간 능선을 넘나들며 선교 활동을 펼쳤던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몸을 숨겼던 첩첩산중 천혜의 은신처였다고 전한다. 평전치에서 백화산 가는 길은 재의 이름에 어울리듯이 능선이 모나지 않아 다행이다.

따뜻한 햇살이 온 산을 비출 때 쯤 오늘 대간 길 중 제일 높은 백화산(1063.5m) 에 오른다. 문경 땅을 향해 살포시 내려앉은 봉황을 닮았다고 하는 백화산은 아마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화령과 시루봉으로 뻣어 내린 양 날개를 곱게 접으며 문경시를 향해 곤두박질치는 형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헬기장을 지나서부터 대간 길은 고도차 없는 낙엽 보송한 숲길로 변한다. 걷기에 참 좋은 돌 뿌리 하나 없는 부드러운 길이라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다. 두려움과 생사의 무서움에 덜며 지나온 문장대의 암릉 구간과 대야산의 아찔한 로프구간, 희양산의 암벽 구간 등 그 험한 구간에서는 결코 맛보지 못했던 걸음의 쾌락을 오늘 이곳에서 음미한다.

특별한 조망이 없는 황학산(912m)를 지나면 옛날 화전을 일구었던 평퍼짐한 마루금 사면에는 낙엽송이 울창하다. 낙엽송 너머로 문경시내도 보이고 주흘산과 멀리 부봉도 어서 오라 손짓하며 하늘에 닿는다. 멧돼지 가족의 샘터라던 작은 연못에는 멧돼지는 간데없고 연못 한가운데에 나무 한구루가 쓸쓸히 서있다. 이화령 거의 다 와서 부터 나타나는 낙엽송 솔밭 길은 마치 실크로드 같이 부드럽다. 그런데 이 아늑한 대간길이 지루하게만 느껴짐은 왜일까? 단조로운 숲길이라서 그런가. 그래도 대간 길의 마지막 자존심인지 몇 개의 작은 봉우리가 앞을 가로 막는다. 또 오르고 내리다 보니 어느 듯 이화령에 10 :50 경에 도착한다.

 

 

 



이화령에서 빠져나와 문경읍에서 3번 국도를 타고 점촌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면 진남교반(鎭南橋畔)이 반긴다. 문경새재를 적시고 흘러온 조령천이 영강에 몸을 섞는 이 일대는 산줄기와 물줄기가 어우러져 제법 빼어나다. 진남교반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조망처는 강가 벼랑에 세워진 고모산성이다. 삼국시대 초기에 세워진 이 산성은 위치로 보면 둘도 없는 철옹성이다. 성안엔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이었던 예천 삼강나루의 주막과 문경 영순 주막을 복원한 초가 두 채가 있다. 주막거리를 지나면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호위하고 있는 성황당이 나타난다. 당집 앞의 불에 탄 흔적이 있는 느티나무는 가은출신의 의병장인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 1858-1908)선생이 1896년 일본군과 고모산성에서 전투를 벌였을 때의 흔적이다.

문경시에서는 2000년 유교 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하나로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성과 석현성 등 마성면 일대에 밀집된 1500년전의 유적들이 10여년 만에 정비 또는 복원됐다. 고모산성, 석현성, 신라고분, 토끼비리, 조선시대 주막거리, 성황당 등은 모두 경북 팔경의 하나인 진남교반 일대에 밀집돼있어 풍광이 빼어난 종합 역사박물관으로 꼽힌다. 다양한 문화유적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경우는 진남교반 일원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문경온천에 들러서 산행의 피로로 풀고, 서울로 향하는데 마음은 벌서 조령산으로 달려가고 있다. 산은 언제나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무엇이 이리도 우리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지 오늘은 그 행복을 이화령 고개에 남기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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